<진상> 을 읽고.

2022.06.27 19:58

thoma 조회 수:419

미야베 미유키 작, 헤이시로가 주인공인 세 번째 소설입니다. 

<하루살이>도 상, 하 각 370페이지 넘었는데 이번 책은 상, 하 540페이지가 넘어가서 읽다가 헉헉거리는 기분이 들기도 했네요. 

헤이시로 시리즈의 이전 두 소설에 비해 중심 사건이 꽤 묵직합니다. 오랜 세월 묵혀 온 사건이 출발점이 된 내용이라 쌓인 세월만큼 관련 인물들도 많네요. 곁가지 작은 사건들이 있어서 그 인물들 사연까지 더하니 분량은 더욱 늘어납니다. 분량이 길어지는 것은 이 작품의 서술상 특성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는 독자에 따라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있는 것인데 소설에 대화가 매우 많습니다. 중심 사건, 곁가지 사건 할 것 없이 각 잡고 앉아서 대화와 자백과 해명과 강의?로 수십 페이지 넘어가는 장면들이 많아요. 저는 소설 속의 대화를 좋아하는 편인데, 좀 지루했습니다. 특히 미소년 유미노스케가 소집해서 진상을 풀어놓는 100페이지에 달하는 하권 시작 부분은 그 대화들이 소설에서 갖는 중요성과 상관없이 즐기기엔 재미가 부족했어요.     

이 시리즈 외에는 별로 본 게 없어서 작가의 전반적인 특징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전 작품도 그렇고 이 작품도 마찬가지로 인물들이 거의 다 인정미 있고 성의 있고 바르네요. 바르지 않은 소수의 인물은 서술자가 주인공 헤이시로나 마사구로의 눈으로 보며 서술하는데 삐뚫어진 심성을 지닌 짜증나는 인간으로 묘사되고, 이게 좀 단순하게 느껴집니다. 선량함과 비열함을 드러내는 서술 방식이 단순해서 읽고 있자면 일일 드라마 필이 나는 겁니다.  

이런 작품 성향의 단순함이나 평평함이 에도 시대라는 세계와 세계관이 그렇기 때문에 그리 표현되는 것인지 작가 자체가 그런지 잘은 모릅니다. 이번 소설에서 사랑의 감정에 휘둘리는 무신이 중요 인물이라서 몰입이 덜 되는 면도 있었고요. 사랑의 대상이자 또다른 인물에 대해서는 사랑의 주체이기도 한 인물이 열 다섯밖에 안 된 소녀라는 점도 이입에 방해가 되더군요. 애초에 열정적인 사랑에 관심이 멀어진 독자인 제 탓도 있고요. 

하지만 시대물로, 풍속물로는 <진상>은 시리즈 첫 소설 <얼간이> 못지 않은 읽을거리입니다. 의원과 약방이 범죄의 무대라 그 시기에 그 분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구경할 수 있고 떠돌이 행상, 복권 판매, 매춘, 집안의 차남들의 위상 이런 것들을 아는 재미가 있습니다. 특히 장남을 제외한 차남들은 그렇게나 살아가기 난감했나 싶지요. 집마다 사정은 조금 다르겠으나 일반적으로 차남들은 성장하면서 살기 막막해지고 부모와 장자 등의 구성원들은 그들을 어딘가로 처분해야 할 짐으로 여기는 것 같았어요. 농어업 같이 입 하나가 노동력으로 바로 연결되는 경우는 달랐을까요. 이 소설은 상업이 활발하던 에도가 배경이라 인물들이 주로 상업 아니면 기술자, 장인 같은 전문직 종사자입니다. 이들을 '조닌'이라 부르더군요. 이 직업들이 가업을 잇는 직종이기 때문에 차남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 두드러지는 것 같았습니다. 

 

다른 얘기인데, 제가 <진상>과 <이름 없는 독>을 같이 주문해 받았는데 문득 책의 질이 다르다는 것에 눈이 갔습니다. 전자보다 후자가 종이 질이 매끈하고 하드 커버고 책배도 말끔하게 잘라져 있어요. 페이지 수에 따른 책값의 차이는 없어요. 같은 출판사인데 <진상>은 2013년에 1쇄가 나오고 제가 받은 건 21년 3쇄입니다. <이름 없는 독>은 17년이라 더 오래 전이고 그밖의 조건(용지 회사, 인쇄사 등) 다 같은데 제본사만 다르네요. 그래서 제본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다 싶지만 종이질의 차이는 왜 생길까. 매끄러운 종이가 좋은 거 아닌가. '진상'이 뭘까. 문외한이 모르는 사정이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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