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잠시 가는 평화의 길 입니다
죽은 이의 평화

 

   진은영

 

 

 

신선한 보릿단 위에 앉아

금화더미에 앉은 도둑처럼, 모리배처럼

나는 흐뭇해지리

 

호명할 수 없는 기억들로

잔뜩 취해 달은 엎질러진 은빛 술잔 같다

 

이끼와 산딸기의 장난스런 발가락이

내 것 아닌 세월들로

나의 동그란 백골을 두드리리

 

덩굴손들이 자색 향기와 열매를 가득 들고

서둘러 심부름 가는 아이마냥,

내 적막한 침묵을 지나쳐 다른 계절로, 또 다른 술가게들로 들어간다

 

성품이 온유한 안개의 느린 암소만이

축축한 혀로

말라죽은 나무와 건물의 불결한 창을 핥는 거리

 

아무도 기억할 것 없는 골목들이,

기록도, 통곡도 없이 어둡게 늙어가는 벽의 주름진 입가,

 

희미한 어제와 그제들, 가루처럼 바스러진 해[年]들의 뼈다귀, 바지의 해진 무릎이,

다 스미어

 

밤은

살찐 흑인 나부처럼 아름답고 부드럽다

나는 가벼운 손을 뻗어

그녀 품에서 죽어가는 이의, 아직 따듯하고 취한 몸속으로 들어가리

 

너의 입술이

겨울의 한가운데로, 고장 난 창문처럼 활짝 열린다면

 

나는 죽음의 신선한 보릿단 위에 누워

금화더미 위에 누운 도둑처럼,

진실의 모리배처럼 흐뭇하리

 

폭풍에 날아가는 빨간 지붕처럼 활짝 열린다면

                                무방비의 하늘은 내 얼굴 위로 천천히 내려오고

다만, 너의 입술이…

 

 

 

                               —《미네르바》 2011년 봄호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6449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5031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4072
126212 게시판 이제 되네요. [10] poem II 2012.06.26 17353
126211 나이별 경기도지사 지지율 [1] 그림니르 2010.06.02 12797
126210 경기도민, 오늘 투표하고 왔어요.. [2] 화기치상 2010.06.02 10434
126209 방송3사 출구조사는 감격, YTN 출구조사는 불안 [2] Carb 2010.06.02 10111
126208 경남 도지사 초박빙 alan 2010.06.02 9319
126207 [불판]개표방송 [13] 20100602 2010.06.02 9165
126206 구로구, '오세훈' 기표된 투표용지 배부...-_- [7] look 2010.06.02 10810
126205 근데 왜 비회원도 글 쓰게 하셨죠? [2] 비회원 2010.06.02 9476
126204 결코 인간편이 아닌 스티브 잡스,.. [7] 자연의아이들 2010.06.02 10654
126203 파이어폭스로 잘 되네요 [4] anth 2010.06.02 7379
126202 유시민이 이기는 이유.jpg [7] 그림니르 2010.06.02 12563
126201 개표방송 보는데 떨려요. digool 2010.06.02 6479
126200 [서울]한명숙 1% [22] 스위트피 2010.06.02 9578
126199 절호의 찬스! [1] 얏호 2010.06.02 5982
126198 옛날 종교재판이 판치던 시대 과학자들의 심정을 [1] troispoint 2010.06.02 6693
126197 노회찬씨에게 해주고 싶은 말 [8] 그림니르 2010.06.02 8844
126196 현재 무소속 후보의 득표율은 어떻게 되나요.. [1] 장외인간 2010.06.02 5815
126195 잘가라_전의경.jpg [5] 댓글돌이 2010.06.02 9026
126194 계란 요리 드실 때, 알끈도 드시나요?? [14] 한여름밤의 동화 2010.06.02 8704
126193 좀 의아스러운게.. [5] 장외인간 2010.06.02 705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