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프라이드 영화제가 성수 영화관에서 열렸습니다. 늘 그렇듯이 보고 싶은 영화는 많은데 시간도 없고 해서 딱 두 편만 보았네요.

어디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상영한다고 하는데 저는 못 본 앤디 안 감독의 '파이어 아일랜드(2022)'와 개봉 때부터 보려고 했는데 기회가 없다가 복원판을 상영한다기에 갔던 임순례 데뷔작인 '세친구(1996)'입니다.


프라이드 영화제 기간에는 영화관 로비에서 관련 부스를 차리고 상품이나 정보를 제공하느라고 복닥되는 좋을 분위기에다가 '파이어 아일랜드'는 연소자 관람불가라고 입구에서 굳이 신분증을 검사하는 바람에 첫 영화는 기분좋게 봤습니다.


'오만과 편견'을 뉴욕 근처에 있다는 게이들의 섬 파이어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현대물로 각색했고요. 저는 잘 모르는 아시안 아메리칸 코메디언 둘이 각각 엘리자베스와 제인 역을 그럴듯하게 소화하는 가운데, 마가렛 조가 다섯 딸을 시집(;;;)보내려고 혈안인 베넷 부인 역을 맡아서 감초역할을 합니다. 미스터 다시 역도 잘 모르는 배우이긴 한데, 근육질 백인 부자들 그룹에 유일한 아시안으로, 척 보기에도 사회적 지위가 떨어지는 베넷 집안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역할을 잘 맡고 있습니다. 저처럼 '오만과 편견'을 좋아해서 온갖 각색물들-전설의 BBC 미니시리즈, 조 라이트의 영화, 브리짓 존스 영화들, 오만과 편견과 좀비 등등을 다 본 사람에게는 좋아하는 원작의 새로운 각색물이라는 의미에서 더욱 관심이 가는 영화였고요. '오만과 편견'의 주요한 내용인 계급 갈등이 현대 게이물에서 새롭게 해석되어 나타나는게 큰 재미였습니다. 영화가 끝난 다음에는 감독인 앤디 안과 관객과의 대화도 흥미로웠고요.


그러나 그 바로 다음에 본 '세친구'는 예상한 것보다도 더 우울한 영화였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세 친구-무소속, 삼겹, 섬세가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한다는 줄거리는 대충 알고 있었는데요. 현실세계에 있다면 저보다 몇살 어린 이 청년들이 90년대 청년 아지트인 싸구려 중국집과 비디오방을 전전하면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는 무력감에 시달리는 모습은 정말 침침했습니다. 특히 무소속이 대표하는 반항아가 학교 교사와 군대 선임이 휘두르는 폭력에 좌절한다는게 너무 상징적이면서도 현실적이라서 속이 꽉 막히는 느낌이었습니다.  

섬세는 게이인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프라이드 영화제에 출품이 된 것같은데 그쪽 세계도 좀 부정적으로 묘사된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근데 이 영화가 1996년에 나왔다는 걸 생각하면 또 이 정도면 무난한 결말인 듯도 하고요.


집에 가서 <세친구> 개봉 20년후 세 주인공 인터뷰를 찾아보았습니다. 이 정도면 현실에서는 괜찮은 결말을 맺은 것 같지만 이것도 2016년, 즉 코로나 이전 이야기라서요. 이들이 영화 속 인물은 아니지만 영화 속 세 친구들이 결국 미래의 희망을 잡지 못한 듯 해서 영 마음이 안좋았습니다.  


<세친구>를 먼저 보고 <파이어 아일랜드>를 봤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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