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전업 11년차입니다.  아들이 내년에 초등 3학년이 되죠. 

 

  요즘 취업 자리를 알아보다가 역사 체험 교사(역사 문화 해설사라고도 합니다) 수업을 받고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 일을 생각했던 이유는 전공이기도 했고, 주말에만 일을 하니 평일에는 아이를 돌볼 수 있을 것 같아서였죠.  보수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생계형 맞벌이를 찾아야 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그다지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면접을 보니 생각과는 좀 다르더군요.  일단 1주일에 1번씩 세미나, 1달에 1회 전체 회의, 부정기적이지만 잦은 지방 답사, 교재 개발 등으로 평일에도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기본급 없이 4대 보험을 제하면서 처음 수당은 한 번 수업 나갈 때마다 5만원씩 준다고 하더군요.  수업이 주로 주말이니 토, 일 하루 2회씩 수업을 다 한다고 하면 1달에 80만원인 거죠.  여기까지는 여타 역사 체험 업체들도 비슷할 것 같은데 문제는 이 회사가 사회적 기업이라는 거죠.  그래서 1주일에 한번씩 저소득층 지역에 공부방 수업을 나가야 하고 페이는 1회 수업에 6만원을 준다고 합니다.  또 6개월이 지나면 우리사주를 사야 하고 회사 관련 사이트에 매달 회비를 내는 회원 가입을 하라고 하네요. 

 

  솔직히 전적으로 아이만 키우면서 간간이 회사 모니터 아르바이트 정도만 하다 이런 일, 쉽게 말하면 돈은 적고 주말 뿐만이 아니라 상당한 시간을 정해진 규칙도 없이 사용하게 될 일을 하려니, 처음하곤 마음이 같지 않더라구요.  내키지 않는 이유는 내년부터 아이 학교에서 시험을 칩니다.  아직 학교 시험을 한 번도 제대로 쳐 본 적이 없는 애를 두고 나서려니 걱정 됩니다.  과목도 늘어나는 것도 마음에 걸리구요.  전업으로 있다가 잠시 일하러 나갔더니 아이가 금새 변하더라는 말들도 겁이 나구요, 아이가 외동이고 겁이 많은데 제가 공부방 수업 등으로 아예 늦는 날이야 할머니 집에 맡긴다 하더라도 그냥 늦어지는 날엔 어떻게 혼자 집에 있으라 할지 막막합니다.  또 솔직히 이 일이 생각보다 더 일에 비해 수당이 적고, 거의 봉사 정신으로 해야 하는 일들이 많은 것 같아 저한테 맞는지 이제서야 의구심이 생기네요.  그래도 아쉬운 것은 30대 후반인 제 나이에 다시 아이를 핑계로 주저앉으면 아예 주저앉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예전에도 영어독서지도사 공부를 하다가 결국 취업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아이 공부만 시키고 끝난 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아이 문제를 넘지 못해 결국 사회 진출을 못하게 될까 두렵네요.  저 자신에 대한 자신도 없구요.  그런데, 회사에서는 면접 합격했다며 다음 주에 근로 계약서를 쓰고, 2월 20일부터 심화 교육을 하자고 해요. 

 

  1주일동안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면서 주변에 많이 물어봤습니다.  제가 전업이라 제 주변도 거의가 전업이죠.  전업 엄마들은 한결같이 아이가 아직 어리고 중요한 때인데 나가기에는 너무 이르고, 돈이 너무 적다고 합니다.  방과 후 교사, 과외, 중학교 역사 선생님을 하는 제 친구한테도 물어봤죠.  다들 똑같이 이야기하더군요.  그래서 좀 더 쉬었다 해도 되나보다 회사에 전화해 볼까 하다가 직장생활하는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이 친구는 맞벌이고 아이가 하나 있지만 친정 엄마가 키워주고 계시죠.  그 친구는 좀 다르게 이야기하더군요.  경력을 만들기까지는 힘든데 계속 애 핑계대고 눌러앉아 버리면 무슨 일을 하겠냐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동안 이 공부, 저 공부해서 결국 취업과 연결시키지 않으면 너 아들만 좋은 거다라고 합니다.  원래 그런 일인 줄 알았으면 밀고 나가야 한다라며, 아이들은 다 익숙해지게 마련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아이에게 내가 너무 매여 있는 것 같냐고 하니 솔직히 그래 보인다고 하면서 동창 중에 너만 직장 없다라고 하는데 솔직히 좀 충격이었습니다. 

 

  저는 여성사이트들을 들락거리는 편인데, 그 곳에서는 주기적으로 직장맘과 전업맘의 다툼이 일어납니다.  솔직히 그런 싸움이 지겹고, 또 나름 다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솔직히 말한다면 제가 전업이지만, 직장맘이 더 힘든 것 같고, 아이를 돌보는 건 전업맘이 좀 더 잘한다고 생각합니다.(이건 분란을 일으키려는 의도가 아닌, 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 기분나빠하지 말아 주세요.)  제 친구들 중에는 입주 도우미를 데리고 아이를 키우는 맞벌이, 친정 엄마께 아예 아이를 맡기고 초등생이 되어도 여전히 주말과 아침 저녁에만 아이를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랑 통화한 친구도 친정에 아예 맡기고 주말에만 데리고 오더라구요.  초등학교에 들어가도 애를 데리고 오면 회사 생활에 지장이 있기 때문에 일단은 계속 친정에 둘 생각이라는데 거기에 대해 뭐라 할 생각은 없습니다.  일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실제로 외할머니가 아주 잘 키워주시고 친구 본인은 승진도 빨리 하는 케이스도 있더라구요.  그런데, 나름 친한 친구라 생각했는데 오늘 저에게 한 말은 모두 맞는 말이긴 하지만, 왠지 전업인 저의 처지를 좀 거시기하게 보는 것 같아 우울합니다.   그 친구 눈엔 제가 열심히 산 게 아니라 그냥 아줌마 생활에 젖어 일하기 싫어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저의 괜한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전업맘이 아이에게 몰두하면 거기에 대해서 비판이 많죠.  그렇다고 아이를 두고 자기 생활을 했는데 아이 성적이 잘 안 나오거나 하면 집에서 뭐 했냐는 말을 들으니 전업도 쉬운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아이 학교 보내고 이것 저것 수업 듣는 사람도 있고, 운동 다니는 사람도 많은데 대부분 사람들은 커피점에 앉아 수다 떠는 아줌마들 이미지만 생각하더라구요.   나름 그런 '아줌마들' 세계에 너무 젖지 않으려고 열심히 노력한 것 같은데 아무래도 하루 대부분을 열심히 일하는 직장맘 친구의 생각과는 아무래도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여전히 고민입니다.  이 회사를 어쩌는 게 좋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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