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가입 후 첫 글입니다.

반응을 보고, 생산적인 논의가 이뤄지고 제가 조금이나마 기여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되면 앞으로 이따금 글을 써볼까 합니다.

지금 생각으로는 장하준 관련 6~7, 우석훈 관련 1회 정도 쓰고, 그 뒤로는 그 때 그 때 이것저것 주마간산하고 싶습니다. 독창적인 내용은 안 되고, 단편적인 소개 정도로요.

 

 

1.     제가 생각하는 주류 경제학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간명하게 규정해 보겠습니다.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각국 대학의 경제학과에서 사용하는 특정 과목 (미시, 거시, 게임이론, 산업조직론 등)의 교과서는 거의 일치합니다. , 85% 정도의 미시경제학 강의에서 대동소이한 3~4권의 교과서 중 하나 이상을 사용할 것입니다. 한국에서 많이 사용하는 이준구의 [재정학] 교과서를 외국에서 사용하는 경우는 없겠지만, 이 경우도 사실은 같은 교과서라고 봐도 됩니다. 대부분의 참고문헌을 영어로 읽는 대학원 과정에서는 이준구와 같은 예외가 거의 없어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준구에 대한 폄하가 결코 아닙니다.) 대학원 과정의 세미나 수업에서 읽는 논문들(수업당 25개 내외)로 범위를 확대하면 과목명이 동일할 경우 약 70% 정도가 겹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 교과서 및 논문의 참고문헌들(References), 교과서의 저자들이 쓴 다른 논문의 참고문헌들, 그 참고문헌의 저자들이 쓴 논문의 참고문헌들. 저는 이 참고문헌들의 상호 인용 체계를 주류 경제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귀납적 정의의 결과 그어진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선이 무엇인지 요약할 수 없다면 이상의 정의는 사실 정보량이 없는 동어반복일 것입니다. 앞으로 관련 글을 계속 쓰게 된다면, 그에 대한 어설픈 요약을 전달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만, 지금 단계에서는 위 정의의 정보량으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위 정의에서 70~85%의 수치는 주류 경제학의 경계에 대해 상당한 정도로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보다 중요하게는 방법론에 의해서, 덜 중요하게는 연구 주제와 결론에 의해서.

 

또 한 가지는, 이와 약간 모순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주류 경제학은 상당히 폭넓은 결론을 수용 내지 포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조금 더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할 텐데, 대학원세미나 수업에서 한 학기에 대충 7~8가지 주제에 대해서, 각 주제에 대해서 3~4 편의 논문을 읽는다고 할 때, 3~4편의 논문이 동일한 주제에 대한 경쟁적인 설명들을 묶어놓은 경우가 매우 흔합니다. 대립적인 설명을 모두 검토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죠. 그리고 대립적인 입장들은 서로를 대화 상대방으로 가정하고 있습니다. 상호 인용 체계에는 반박을 위한 인용도 포함되는 것이죠. 구체적인 정책 수준의 논의에서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는 점도 이런 정황으로부터 충분히 유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1.        주류 경제학과 장하준

 

대부분의 사람이 장하준을 주류 경제학자로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 장하준 스스로도요.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것입니다.

장하준이 주류 경제학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히 대다수 경제학자들이 장하준의 결론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만이 아니라,

대다수 경제학자들이 장하준을 진지한 반론 제기의 대상으로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을 포함합니다.

 

어떤 이는 이를 두고 주류 경제학의 한계와 폐쇄성을 읽을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장하준이 주류 경제학자들에 의해서 진지한 반론의 대상으로 고려되지 않을 정도로 이상한(awkward) 얘기를 많이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류 경제학 안에는 과반수의 학자들이 반대하는 주장들도 아주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장하준은 더 중요하게는 방법론에서, 덜 중요하게는 결론에서 그 안에 들어올 자격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고 저는 그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미리 밝히자면, 저는 수업 읽기 과제로 [주식회사 한국의 구조조정]을 먼저 읽었고, 다른 수업 읽기 과제로 [Kicking Away the Ladder]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는 장하준 책을 읽을 필요를 못 느껴서 안 읽었습니다. 전자는 괜찮았는데 후자가 너무 구렸고, 그 후에 나온 책들이 대체로 그 구린 후자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나쁜 사마리아인들] 출간 전후해서 이런 저런 기사들을 접할 수밖에 없었는데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2.     저의 수준

 

어설픕니다. 학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국내 석사과정에서 잠깐 공부했었습니다.

그러니 국내외 명문 대학에서 박사 공부를 한 수많은 사람들에 비해 전문성이 떨어집니다.

 

그렇다고 현실 경제나 시사에 밝은 것도 아닙니다. 예를 들어 폴 크루그먼 (Paul Krugman) 매니아들은 그의 (대중적) 저서를 다 읽고, 그가 주요 현실 이슈들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 밝히 알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의 논문 서너 편, [Accidental Theorist] 한 권 딸랑 읽었습니다. 평소에 TV나 신문도 안 보니 말 다했죠.

 

한 마디로 이도 저도 아닌 어중이 수준입니다.

 

제가 듀게 평균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대충 말해서 교과서 10, 논문 150편 정도 읽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이 어떻게 논증, 논쟁하는지 비교적 잘 알고, 경제학 전공자들이 무엇을 어떻게 배우고 읽는지 잘 아는 정도입니다. 이게 알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요. 적어도 경제학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면서 손 쉬운 댓글로 그것을 싸그리 무시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보다는 일단 들어보는 게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3.     이 글을 쓰게 된 계기

 

혹시 [나쁜 사마리아인들]도 베스트셀러였나요? 당시에 꽤 주목을 받았던 것은 기억나지만 그 때는 제가 책을 안 읽어서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순위권에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23가지]가 베스트셀러죠. 꽤 오래 1위를 유지하기도 했고요.

 

저는 장하준의 책을 불량식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베스트셀링이 한국 독서인구의 경제학에 대한 표준적 이해가 [23가지]에 의해 형성되는 것을 의미한다면, 이는 공동체적으로 대단히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매우 해로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학과 시장에 대한 오해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해로운 것은 논증의 규범을 위반하는 참고문헌으로 자신의 선입견을 강화하는 습속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세상에는 제가 어찌할 수 없는 불행한 일들이 날마다 일어나고 있는 것을요. 어중이가 어버버해봤자 욕이나 먹기 십상인 것을요.

장하준에 대한 비판 또는 비판의 준거들에 대한 소개를 시도하려면, 매우 열정적이거나 시간이 많거나 해야 할 텐데 저는 둘 다 아니기 때문에 사실 별다른 관심이 없었습니다.

 

훨씬 개인적인 계기로 시작되었습니다. 최근에 저와 매우 가까운 친구 넷이 각자 독립적으로 [23가지]를 읽었습니다. 그 중 한 명을 제외하면 이 친구들은 평소에 이런 책을 거의 안 읽는 친구들입니다. 제가 좀 신기해서 왜, 어떻게 읽었냐고 물었더니 베스트셀러 중에 그럴싸해 보이고 경제라는 분야를 조금은 알아야 될 것 같아서, 그냥 재미있게 막 읽었다고 하더군요. 그러자 다른 친구가 마찬가지라고 하면서 이 책에 대한 제 생각을 물어봤습니다. 그 친구가 마구마구 졸라서 제가 예시도 하고 짧은 번역도 하면서 조금씩 글을 쓰고 있습니다. 책을 안 읽은 친구들도 관심을 보이고요. (올해 어떤 모임에서 처음 만난 두 분도 이 책을 읽고 있거나 읽고 싶다는 얘기를 하더군요, 제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이게 상당히 힘든 일입니다. 전혀 문외한인 친구들이라서요.

어찌됐든 일단 제가 진행하고 있는 작업을 가감해서 듀게에 다시 올리는 데 드는 추가적인 노력 (marginal cost)는 상대적으로 작은 데 비해, 더 많은 분들과 나누는 데서 기대할 수 있는 편익이 더 크지 않을까 싶어 시도해 봅니다. 반대로 듀게에서의 논의가 친구들과의 논의, 나아가 제 생각을 심화시키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친구 덕분에 저도 오랜 만에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발전경제학(Development Studies) 분야에서 상당한 논의가 진행된 것 같기도 하고요. 현재까지는 제 생각에 변화가 없는데 마지막에 읽을 책에 따라 바뀔 가능성도 열어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우 괴로운 일이 되겠지만, [23가지]를 읽어볼 마음의 준비도 하고 있습니다ㅋ

 

 

4.     첫 소개:

 

송원근 ∙ 강성원, 계획을 넘어 시장으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 대한 자유주의자의 견해, 한국경제연구원 보고서

PDF 다운로드 링크:

http://www.keri.org/jsp/kor/research/report_type/report_view.jsp?url=&boardSeq=805&page=&masterCode=K001010&sa=v&dsa=researchCommon&selYear=&selMonth=&selDay=&year=&month=&day=&searchMasterCode=&mainsearchkey=

 

자료 소개가 참신하지가 못합니다. 이미 몇몇 언론에서 소개되었고, 지금 보니 지난 한 주 동안 반론들이 기사화되기까지 했네요. 하필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에서 나왔다는 사실도 신뢰성이 떨어지는 이유(discount factor)로 작용할 것 같고요.

 

상당히 두툼하고 내용이 비교적 충실합니다. 보고서의 모든 논지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금융위기에 대한 설명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 외에도 더 강하게 짚어야 하는 내용을 데이터만 소개하고 넘어간 부분도 있고, 대중의 이해를 고려하여 더 완곡하고 쉽게 설명해야 하는 내용을 지나치게 원론적전문적으로 설명한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보고서의 참고문헌들이 주류 경제학 내부에서 선별되어 나왔다는 점에서, 그리고 [23가지]의 논지 중 (지엽적인) 일부 - 예를 들어 아동 노동 에 대해서만 말싸움 벌어지기 딱 좋은 식의 비판이 아니라 주요 논지 전반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아주 좋은 출발점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참고로, 저는 이 보고서의 참고문헌 저자들 중 절반 이상에 대해 논문을 직접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한국의 독서 인구가 [23가지]와 이 보고서를 비교/대조하면서 비판적으로 읽어본다면 훌륭한 학습이 될 것 같습니다.

 

너무 장황했네요. 용두사미로 끝나면 안 되는데;;

관심 있는 분의 많은 댓글 부탁드립니다. 보고서 내용에 관한 질문도 환영합니다. 저도 틈나는 대로 이병천 등의 반론 투고를 읽어 보겠습니다. 제가 답변할 수 있는 것들은 시차가 생기더라도 댓글을 달겠습니다.

 

다음에 또 쓰게 되면 (저명한) 경제사학자의 [Kicking Away the Ladder] 서평 번역을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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