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넥센 팬이고요, 양승호 감독 좀 까겠습니다.


양승호 감독이 이끄는 롯데는 오랜만에 1승을 추가함으로써 3일째 잠실 구장을 가득 매운 롯데 팬들의 성원에 모처럼 보답했습니다.

송승준 선수의 호투도 좋았고 부진에 허덕이던 조성환 선수의 맹타로 롯데는 순위싸움 합류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이 정도라면 오늘의 승장 양승호 감독은 당연히 칭찬받아야 하겠죠. 만약 오늘이 롯데의 시즌 첫 게임이라면 저도 양승호 감독의 경기 운영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렸을 겁니다.

근데 아시다시피 프로야구는 일년에 한두번 하는 게임이 아니죠. 한 시즌동안 한 팀이 133게임을 소화해야 하는게 우리나라의 프로야구 입니다.


제가 양승호 감독을 비판하려고 하는 것은 양승호 감독의 고원준 선수 운용 부분입니다. 


오늘 고원준 선수는 롯데가 앞서고 있던 6회말부터 선발 투수 송승준에 뒤를 이어 등판했습니다.


요새 야구를 챙겨보시는 분이라면 의아해 하시겠죠. 저도 처음에 저희팀 야구를 보다가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고원준이 6회 등판이라고?

현재까지 알려진 고원준 선수의 보직은 마무리 투수죠. 마무리 투수는 말 그대로 그 팀의 경기를 마무리 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6회는 경기의 마무리 부분이 아닙니다. 중반부입니다.


고원준은 3과 1/3이닝을 소화하는 동안 1피안타 1볼넷만 내주면서 무실점으로 요새 한창 분위기 좋은 LG 타선을 틀어막았습니다.

9회 강민호 선수의 어이없는 실책까지 포함하면 고원준은 말그대로 환상적인 투구 내용으로 롯데의 승리를 책임졌습니다. 사실상 오늘 경기의 MVP는 고원준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죠.


고원준 선수의 활약은 눈부시지만 사실 제가 볼 때 이런 식의 선수 운용은 문제가 많습니다. 현재까지 고원준 선수의 스탯을 살펴보죠.


고원준 선수는 롯데가 총 13경기를 소화한 현 시점까지 7경기에 등판해서 11과 1/3이닝 동안 1세이브를 올렸고, 평균 자책점 0.00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11이닝 소화한 선수가 평균 자책점이 0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프로야구 투수중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는 선수가 고원준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냐고요? 고원준이 7경기를 소화하면서 거둔 세이브가 1개라는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이 말은 양승호 감독은 세이브 상황이 아닌 상황에서도 고원준을 계속 써먹었다는 뜻입니다.


최고의 구위와 컨디션을 보이고 있는 선수를 이기는 경기 지는 경기 할거 없이 올리고 있는 겁니다.

오늘같은 경우도 컨디션이 나쁘지 않는 김사율 선수를 거치면서 고원준 선수의 투구 이닝을 줄일 수 있었죠.

하지만 양승호 감독은 '젊은 투수라 자신감을 주기 위해 3이닝 세이브를 시켰다'고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사실 이건 아무 의미없는 단순 숫자 계산이긴 한데, 이 페이스 그대로 간다면 고원준 선수는 올시즌 70경기에 등판해서 110이닝을 투구하게 됩니다.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 던진다고 해도 그 정도 공을 던지면 고장이 나겠죠. 하지만 고원준은 아직 구원투수 보직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신인급 투수입니다.

오승환 선수도 그 완벽하던 모습에서, 선동렬 감독 하에서 나름 철저하게 관리받으며 등판하면서도 4년 정도 꾸준히 던지고 나서 난조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요새들어 부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아직 예전같은 활약을 보여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상태입니다. 선발에 비해 불펜 투수는 훨씬 쉽게 소모되는 보직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양승호 감독의 고원준 운용에 대해서 두 가지 문제점만 지적하겠습니다. 남의 팀 감독이라 조심스럽지만,

작년까지는 우리 선수라 생각하던 선수의 일이라 가슴이 아파서 이렇게 오바하며 씁니다.


1. 최소한 지는 게임에서는 고원준을 내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무리 야구를 잘하는 팀도 10번하면 3번은 지는게 프로야구입니다. 프로야구에서는 이기는 게임 뿐 아니라 지는 게임도 어떻게 지느냐가 중요합니다.

이 부분도 약간 조심스러운 부분이긴 한데, 저는 현재 한화가 이 고생을 하는 이유도 몇 년동안 '지는 게임을 잘 못져서'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김인식 감독 재임시절 1년에 한명씩 한화의 불펜 에이스는 아작이 났습니다. 윤규진--마정길-양훈-허유강 등의 투수는 모두 한 때 한화에서 가장 컨디션이 좋은 불펜 투수들이었죠.

김인식 감독은 그 컨디션이 좋은 투수들을 사랑한 나머지 너무 자주 경기에 등판시켰습니다. 이기는 게임, 지는 게임 할 거 없이요.

그러다보니 제가 위에서 언급한 선수들 중, 현재 부활해서 그 시절과 같은 구위를 보여주는 투수는 마정길 밖에 없습니다. 마정길은 현재 한화가 아니라 넥센 투수죠.

마정길 선수가 구위를 회복한 이유는 단순합니다. 넥센은 질 때 지더라도 어제 많이 던졌다 싶으면 오늘은 마정길을 내지 않습니다.


고원준 선수도 이런 식으로 운용하다가는 그 구위를 오래 지속한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마무리 투수는 우리팀 승리를 마무리 짓는다는 뜻이지 패배를 마무리한다는 뜻은 아니죠.

동점 상황이나 박빙 상황에서 올린다면 모르되, 지고 있는 상황에서 고원준을 자꾸 기용하는 것은 결코 제대로 된 마무리 투수 활용법이 아닙니다.



2. 고원준의 불펜 의존도를 낮춰야 합니다. 이건 고원준 뿐 아니라 롯데 투수진 전체를 위한 조건입니다.


현재 롯데에서 승리조 불펜이라고 부를 수 있는 선수는 임경완-김사율-고원준 정도입니다.

다른 불펜이 안정된 팀들에 비해서는 승리조 불펜 투수가 적은 편입니다. 또한 승리조와 승리조가 아닌 불펜 투수들간의 성적도 큰 차이를 보이고요.

그러다보니 양승호 감독은 이기고 싶은 게임에서는 이 투수들만을 가지고 경기를 운영하려 합니다.

그 중에서도 구위가 가장 좋은 고원준 선수에 대한 의존도는 갈수록 높아지는 것이고요.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고원준 선수의 피로도는 누적이 됨과 동시에 다른 불펜 선수들의 성장은 더디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공을 잘 던지더라도 패전처리나 긴장감없는 상황에서 등판한 선수와 결정적인 상황을 이겨낸 선수의 성장 속도는 차이가 나게 되죠.

고원준에게 너무 의존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다른 젊은 불펜 투수들이 갈수록 성장하기 어렵게 될 것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제가 이렇게 흥분해서 양승호 감독이 전혀 볼리 없는 듀게에 글을 쓰는건, 롯데 팬의 입장이라기 보다는 고원준 선수의 팬이기 때문임을 고백합니다.

작년 한 해 너무도 사랑했고 고마웠고 미안했고 안타까웠던 선수가 비록 더 이상 우리팀은 아니지만 앞으로 오래도록 멋있게 야구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양승호 감독이 저보다 야구를 잘 아니까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잘 해주시겠죠.



마구마구 흥분해서 글을 쓰긴 했지만, 양승호 감독이 제가 걱정한 것처럼 무책임한 지도자는 아닐 것입니다. 제 걱정은 분명 기우일 겁니다.

제가 그러한 만큼 그리고 롯데 팬들이 그러한 만큼 양승호 감독이 고원준 선수를 사랑하길 바랍니다. 그러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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