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않고 있자니 일도 손에 안 잡히고 불안해 아는 사람 하나 없는데 휘적휘적 갔습니다.

철거현장에 가 본 것은 처음입니다.

집회라봤자, 광우병집회 때 대여섯번? 철거현장은 .....전혀 달랐습니다.

 

 

내 옆으로 100킬로그램은 훌쩍 넘어보이는 웃통 벗은 용문신 사내가 지나다닙니다.

쥐도 새도 모르게 그에게 맞을 수도 있다는 공포. 생생한 공포입니다.

 

하지만 용역과 학생은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깁스를 하고 안경을 쓰고, 용역들이 입는 흰 옷 대신 연두색 티를 입은 청년.

다친 학생인 줄 알고 안쓰럽게 쳐다보았는데 눈빛이 이상합니다. 후에 알고보니 그 중 제일 악질인 용역이라고 합니다.

 

지나가는 여학생들에게 듣기만 해도 며칠밤 잠을 못 이룰 것 같은 더러운 욕도 합니다. 온몸을 훑어 사진을 찍어댑니다.

태어나 부모아닌 사람에게 맞아본 일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아마 저또래의 사람들 대개 그럴지 모릅니다. 폭력은 영화에만 등장하는 것이죠.

 

그런데 그 현장에 앉아 있다는 이유로 나는 그에게 머리끄댕이채 도로에 내던져질수도 배를 차일 수도 있습니다.

경찰은 근처에서 바라봅니다. 수 명의 사람들이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리고, 소화기에 맞아 기절하고, 소화기 용액을 마셔 쓴 침을 토하고 나니 그제야 와서

때린 사람을 지목해보랍니다. 자기 옆의 여자아이를 내리치는 각목에 맞선 사람은 용역과 함께 연행되어갔답니다.

 

어제 있었던 일입니다. 저는 이 상황이 벌어지는 동시에 도망치듯 지하철을 탔습니다. 기나긴 3호선에 앉아, 배터리가 떨어진 핸드폰 화면만 바라보며 아무 것도 못했습니다.

 

 

그들이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때리기 전에

마리는 아름다웠습니다.

끈적하고 습하고 더럽습니다. 낡고 먼지가 날리고 칙칙합니다.  당연하지요.

가운데가 뻥 뚫린 드럼, 나무가 다 부서진 기타들이 쌓여 있습니다. 초라한 시체 같습니다.

 

그런데

음악이 울립니다.

제대로 된 장비가 없어 메가폰을 통해 울리는 보컬, 베이시스트가 빠진 밴드. 그런데 그렇게 아름다운 음악은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긴장과 두려움으로 오그라든 어깨 위로 흐릅니다. 멜로디가.

관객은 용역입니다. 마리 안에 앉아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언니, 저 중에 레나타 수이사이드 팬이 있어서 사진 찍고 따라부르면 너무 웃길 것 같지 않아요?"

후배가 농담을 합니다. 상상을 합니다. 그들이 나와서 춤추고 노래하는 겁니다. 그루브 있는 멜로디에 고개를 까닥하는 용역을 본 것도 같습니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아니나다를까

소파를 던지고 각목으로 사람들을 때리고 노인을 들어 메다꽂기 시작합니다.

멜로디가 사라진 자리에 비명이 들립니다.

 

그 광경을 뒤로 하고, 겁에 질려 얼른 가자고 하며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후배를 보내고

차를 탑니다. 얼마전 본 <그을린 사랑>의 차량 폭발신이 떠오릅니다.

새벽까지 트윗만 보다가 오늘도 아무 것도 못하다가 이제야 글을 써 봅니다. 정연하게 잘 쓰고 싶지만 안 되네요.

머리가 깨지고서도 자기들끼리 농담을 건네는 그 아이들이 너무 예쁘다는 생각을 합니다. 웃음을 잃지 말자고, 하지만 두렵고 떨린다면 그저 바라보자고.

많은 시일이 지나 우리가 다 지더라도

"나는 봤어요."

라고 증언하자고, 말할 참입니다. 역사의 한가운데 있네요.우리는.

 

 

 

 

마리 상황 볼 수 있는 방법

: 트위터에  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언론이 사망했으나 사람들은 새로운 언론을 만들어내는군요.

 

저는 겁많아서 놀이기구도 못타는 사람입니다. 아는 언니가 "순둥이가 거길 갔냐...시대가 엄하긴 엄하구나.."하시더군요.

무섭고, 아는 사람 없어 가기 민망해도 그냥 가서 멀리에라도 서 계세요. 그냥 보세요. 두 눈 뜨고 봐 주세요. 그게 그렇게 힘이 된다고들 합니다.

외롭지 않다고 합니다. 친구랑 가서 근처에서 커피 마시며 수다라도 떠세요. 그리고 그게 '보는 사람' 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악착같이 살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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