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게임 중독이 문제라고 셧다운이니, 쿨링다운이라니, 잘 모르는 제가 들어도 참 뭐 쌈싸먹는 같잖은 대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게다가 학교 폭력이 게임 때문이라면서요?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리 말아요. 게임을 억제하겠다면 일단 어르신들 댁에 있는 화투부터 어찌 하셔야 할 겁니다. 여긴 투전 놀음에 미쳤던 이들의 후손이 사는, 노는 게 제일 좋은 뽀롱뽀롱 뽀로로의 나라인걸요.

그리고 학교 폭력은 당연히 있는 거지요. 에너지가 빠골빠골 넘쳐나는 젊은 것들을 그 좁다란 교실에 밀어놓고 공부공부 하니까 당연히 치고받고 우당탕하게 되죠, 그게 잘하는 짓인 건 아니지만 굳이 게임 탓 안 해도 애새끼들은 싸우니까 너무 그러지 말아요. 현대사의 학생 폭력 이야길 다룰까 하다가, 좀더 시계 바늘을 앞으로 돌려 옛날 이야기를 해보죠. 조선시대 때여요, 소동이 벌어진 건. 조선 최고의 명문대학... 이라기 보단 그거 말곤 없긴 했던 성균관 학생들이 패싸움 벌이다가 얻어터지는 사건이 벌어졌답니다.
이렇게 말하면 일방적으로 맞은 거 같지만. 솔직히 말해 맞을 짓을 해서 맞은 것이긴 해요.

 

조선 이전, 고려는 불교의 나라였지요. 곳곳마다 사찰이 있고 돌부처도 있고, 탑이 세워져 있었어요. 해서 각종 비리라던가가 벌어지긴 했지만, 어쨌거나 불교는 사람들 생활 깊숙히 파고들어있었지요. 그런데 조선이 들어서고 나서... 유교의 나라가 되고 나니, 불교는 이럭저럭 탄압을 받게 되었죠. 뭐 그렇다 해도 저기 구라파에서 화끈하게 종교탄압했던 거에 비하면야 아주 얌전한 정도였지만요. 근데 이 탄압 중에서는 젊은 유생들이 와서 치는 사고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엉덩이에 뿔난 유생들은 자신들이 이단 퇴치의 역사적 사명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고 엣헴 내가 나쁜 불교를 물리쳤다능 >ㅅ< 이라는 초딩 인증이나 하고 다녔고요. 그런데 이게 무슨 제대로 된 반발이나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사찰 가서 깽판 치고, 승려들 두들겨 패고, 금불상이나 옷감 같은 게 있으면 쓱싹해서 나오는- 유생의 두껍을 쓴 날강도였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심지어 불까지 질렀어요. 이런 와중 각종 문화재들이 피해를 입었고 태조 이성계의 추억이 깃든 회암사에도 고의적인 방화가 벌어지곤 했습니다.

 

사태가 이러하다보니 세종은 "유생들 출입금지!" 라고 사찰에 써놨습니다만. 그게 제대로 먹히겠어요? 영화관에서 성인 영화는 18세 미만 출입금지지만 맘만 먹으면 초딩 6학년 짜리도 다 보고 온다고요. 게다가 유생들이 문제를 일으키면 이걸 담당하는 관리들이 모두 유생들의 선배님이자 유학자들이다보니 우리가 남이가 하면서 알음알음 모른체 해줬어요.

그래서 불교 쪽이 차곡차곡 울분을 쌓아가고 있던 와중. 세종 24년인 1442년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유생들 26명이 뚤래뚤래 북한산의 덕방암이란 절에 깽판 출사를 나갔지요. 헌데 이 첩보를 미리 입수한 승려들이 주변 다른 승려들과 힘을 합쳐 매복해 있다가, 유생들을 급습했습니다. 갑작스런 기습에 혼비백산한 유생들은 사방팔방 달아났고, 그 중 제대로 도망 못 간 두 어 명이 떡이 되도록 맞았습니다. 불교계에서는 덕방암 대첩이라고 해도 될 법한 일이죠.

 

그런 일이 있은 뒤, 승려들은 유생들이 깽판을 놨다고 고소를 합니다. 또 이 소식은 세종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고, 사건을 일으킨 유생들은 물론 성균관 교관들도 애들 교육 잘 못 시켰다는 죄목으로 줄줄이 감방신세를 지게 되죠. 헌데 유생들은 아주 당당했습니다. 자기들은 옳은 일 했다 이거죠. 그러면서 임금인 세종에게는 "임금님은 불교만 좋아하지요? 임금님 미워!" 라고 쏘아댔습니다. 당연히 세종은 기가 차 했지요.

 

"어떻게 된 것들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나쁜 이론을 이기겠단 생각은 안하고 중들을 패면서 이단을 물리치는 거라고 하냐?"

 

이런 지극히 상식적인 정론을 펼친 세종이었습니다만, 세상에 어떻게 그런 사람들만 있겠어요. 유생들도 유생들이지만 그들의 선배인 신하들 역시 후배사랑에 똘똘 뭉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주워섬기며 후배들을 옹호해댔습니다.

 

"말썽 피운 애들은 아주 쪼끔 일부일 뿐이어요."
"그네들 혼내면 역사에 오점을 남기실 거임."
"이래서 유교가 쇠퇴하고 불교가 유행하면 어쩌겠심?"

 

이렇게 구질구질하기가 청계천 물이끼 같은 궁색한 변명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자, 세종은 황당해했습니다. 그도 말년에 불교에 좀 기대긴 했지만 이 땐 그 정도까진 아니었거든요. 게다가 사안이 사안이잖아요. 유교 VS 불교라는 프레임만 딱 들어다 옆에다 놓고 보면 이건 결국 천둥벌거숭이 아새끼들이 남의 집에 가서 깽판 치려다가 역습 받아 얻어터진 거니까요.

 

"야, 니들 감쌀 걸 감싸라. 쟤들은 공부 안 하고 놀러다니며 사고친 애들이잖아!"

 

무턱대고 감싸주는 신하들이 얼마나 답답했으면, 세종이 이렇게까지 말했겠어요. 그럼에도 몇 달 동안 임금님, 애들 봐주세요- 란 신하들의 끈질긴 조름이 이어졌고, 여기에 세종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지그시 화답하는 일이 이어졌습니다.

 

결국 한 달 뒤 말썽 피운 유생들 중 다섯 명이 곤장 60대에 처해졌습니다.
이 정도면 엄하게 받았다 싶지만 폭행에 가담했던 승려 두 사람은 80대에 처해졌으니 피해자가 오히려 고생당한다 싶네요. 이리하여 또다시 유생들 사찰 출입금지 명령이 내려집니다만. 앞서 말했듯이 힘이 넘쳐나는 애새끼들이 어떻게 가만히 우리는 친구 하하호호 하고 있겠습니까. 나중엔 유생들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싸워댔습니다. 야단도 치고 바로잡고 교화도 해서 나름 말썽쟁이들 사람 좀 만들어 내보내면 또다시 어린 것들이 리뉴얼되는 무한 루프. 그래서 이후로도 학교 폭력의 역사는 계속해서 업데이트 될 지니, 학교의 사건 사고는 이후로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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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 좀 안 좋은 일이 거듭되다 보니,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냅다 질러서 썼습니다.
모두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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