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간 이런저런 사정으로 무리를 했더니 골이 빠개질 것 같습니다. 추적추적 비도 오고 마침 방사능 바람도 분대니 기회는 찬스다 싶어 불을 끄고 창문도 닫고 커텐을 친 후 생각을 곱씹고 있어요. 배불뚝이 소가 와도 새끼를 놓지 않고 닭도 꾸르륵 소리만 내며 달걀도 안낳을 것 같은 심란한 우리집구석에 누워서 침만 줄줄 흘리며 천장의 희미한 곰팡이무늬를 헤고 있습니다.
황해를 극장에서 보며 한 번 울었어요. 구남이가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멍하니 벽을 보는 장면이었는데, 벽의 곰팡이무늬가 세상에나 곽희의 조춘도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겠어요. 루벤스의 그리스도의 하강을 보며 죽음을 맞은 네로처럼 벅찬 기분에 눈물을 뚜욱뚝 흘렸었는데요. 지금 천장의 곰팡이무늬를 보니 그 때와 똑같은 기분이 듭니다.
요즘 종종 별 일도 아닌 것에 신경이 예민합니다. 어젯밤엔 분명 고독에 씌인 사람처럼 우울하게 시내 한복판을 휘젓고 다녔으면서 카톡 알림 소리는 징그럽게 짜증납니다. 닭이 웃는 얼굴로 뚝배기 안에 들어앉아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거나 돼지가 행복한 표정으로 불판 위에서 뒹구는 음식점 간판을 볼 때 마다 인간의 자기합리화같아 유난히 서글픕니다. 이런 때는 사람을 만나지 않고 게시판도 들어오지 않는 것이 좋은데, 듀게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없을 때를 제외하고는 틈틈이 들어오게 돼요.
여의도, 신촌, 시청, 용산, 종각, 사당 근처에 이런 날 책 읽을 만한 데 어디 없을까요? 도서관도, 카페도, 공원도 좋습니다. 아끼는 장소를 공유해 주시면 애정을 듬뿍 담은 핫멜트를 하나씩... 이 아니라 행복을 기도해 드릴게요.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