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셉션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징조 정도로 번역하면 될까요. 영화상에서의 인셉션은 그만큼 번역 뉘앙스를 맞추기 어렵고, 그래서 차라리 번역해두지 않고 고유한 개념(흡사 마법의 캐스팅 워드처럼)으로 놓아 둔 선택은 적절했다고 봅니다. 영화 내내 인셉션이란 행위는 꿈에 간섭하는 여러 가지 행위로 설명되다 마지막에 가서는 주제를 드러냅니다. (딱히 반전 같지는 않습니다. 그냥 이해의 외연이 넓어진다 그 정도?)


- 영화 자체는 굉장한 몰입도를 자랑합니다. 저는 영화 도중 시계를 보고 러닝타임과 비교하는 (나쁜) 버릇이 있는데, 이쯤 되면 영화 전개상 어디쯤이겠다 하고 짐작하는 겁니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대개 상영 시작 1시간 남짓 지나면 슬쩍 시계를 봅니다. 그런데 인셉션을 보면서는....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무중력 씬'이 끝나갈 때쯤 보았으니 말 다한 거죠. + 영화 시작하면서 웬 거구의 여자 분이 옆좌석에 앉던데, 덜 마른 빨래감마냥 습한 곳에서 세균이 번식하며 내뿜는 특유의 냄새랑 함께 진한 체취가 같이 섞여서 코끝에 신맛이 확 풍겨오더군요(....) 그런데 그걸 영화 내도록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가 마지막 장면 되어서야 다시 깨달을 정도였습니다,


- 영화의 주제는 동양인에게는 그다지 낯설지 않은 소재라고 생각합니다. 예고에도 누누히 나와 있는 내용이지만... '장자지몽'을 모티브로 한 SF 영화입니다. 서양 애들이야 우와! 이런 상상력이! 라고 하겠지만, 이미 노장사상에 익숙한 우리네로서는 그렇게까지 새로운 내용은 아닐 겁니다. 이건 뭐 매트릭스도, A.I.도 마찬가지겠죠. 하기사 미국에 베트남 반전+히피 붐을 타고 노자가 상륙한 지도 어언 30~40년이군요. 엄격한 청교도사상이 무너진 잔해 사이에서 필사적으로 정신의 안식처를 찾던 미국 문화가 상당히 강력한 대안을 찾은 듯한 느낌입니다. 원래 서양에서는 '마음'이 어디 있는지를 찾는 것이 학문의 주요 테마 중 하나였을 텐데, 그 바탕에 정신에 관한 동양적 아이템이 합체되니 이런 강력하고 놀라운 결과물들이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하는군요.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정신 관련 소재 내지 배경으로 꼭 일본이 등장하는 게 좀 탐탁찮습니다. 니네들이 그렇게 열광하는 소위 "ZEN", 그거 우리나라 선 사상이거든. 이래 놓고 나중에 한국 문화 접하면 일본 짝퉁이라고 오해하겠지?

뭐, 역설적으로 이 영화에서는 그 MR.사이토오가 지나가는 단역이나 대놓고 악역 같은 평면적 관계가 아니라서 오히려 인정할 만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동양과 정신의 이미지가 "일본의 탈을 쓰고 소비"되는 게 싫습니다.)


- 영화 속 탈것에 대한 잡담. 혹여 눈치채셨나 모르겠지만 현대차가 참 많이 나오더군요.


- 딱히 아이맥스로 안 봐도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의 재미는 액션도 액션이지만 기본적으로는 놓칠 수 없는 긴장감에서 온다고 보기에... 이를테면 스릴러 형식에 가깝다고 봅니다. 물론 큰 스토리는 어느 정도 짐작이 가고 큰 반전도 없지만 적어도 자잘한 소품들이 어떻게 큰 스토리에 모두 엮여들어가서 해결편을 제시하느냐 - 이걸 긴장 떨어뜨리지 않고 갖고 가는 것도 참 대단하다고 보여집니다. 전반적으로는 소품집이 극대화되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느냐를 잘 보여주는 작품 같습니다. 대학 영화과 졸업하던 친구들이 한두 편씩 만들어보거나 단편 시나리오식으로 탈고해 본 '소품'에 가까운 모티브같아 보입니다. 그런 소소한 상상의 재미가 있는 주제를 이런 '대작' 수준으로 깊이감있게 그려낸 것도 참... 허허.


- 얼마 전 듀게에 올라온 엘런 페이지 사진에 누가 '임신이라도 했나요?'란 글을 적어놓은 걸 봤는데... 오늘 영화 본편에서도 앨런 페이지는 의외로 똥배(?)가 좀 있더군요;; 디카프리오도 새삼 좀 중년의 사나이가 되었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마이클 케인은... 나오자마자 마음 속으로 딱 한 마디를 외쳤습니다. "신성일이 왜 저기 있어?" (......)


- 오늘 왕십리 아이맥스관 K열 18분에 앉은 분이 누군진 모르겠지만, 영화 중간에 스마트폰 켜고 딴짓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시인성 낮은 텐시오제 전자시계도 - 흡사 특전사가 소총 손잡이 안에 담배꽁초 넣고 빨듯 - 방해될까봐 손으로 가리고 슬쩍 보는데... 그 밝은 스마트폰으로 띡띡띡 하면 뒷사람은 정말 시각공해입니다;;; (그 외에는 거슬리는 게 전혀 없었습니다. 워낙 영화에 빨려들어가다 보니.)


- 뭐 이래저래 두서도 없는 잡설인데 영화 본편 내용을 최대한 줄이고 쓰자니 이렇게 되어 버렸네요; 여튼 영화 좋아하는 사람은 필견이고, 영화 러닝타임 내도록 액션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꿈이라는 비현실감 때문에 오히려 관객은 착 가라앉아서 관조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액션에 광분하기보다는 그 상상력에 경악하게 됩니다. 예고편은 그야말로 예고편에 불과합니다.


- 그런데 진짜 그 무중력 씬은 어떻게 찍은 거야... orz


+

영화 마지막 장면은 참... 감독이 악취미(?)더군요. 그걸 거기서 끊어서 열린 결말로 만들어버리다니.;; 뭐 저는 영화상에서 제시한 결말로 이해하고, 굳이 열린 결말로 만들어서 다시 해석하진 않으려고 합니다. 그랬다간 머리에 진짜 쥐가 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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