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야그] 조선시대, 체벌이 사람잡다

2010.07.23 18:42

LH 조회 수:9619


옛날의 학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김홍도의 그림입니다. 훈장 선생님이 있고, 아이들이 있고, 그리고 방금 회초리를 맞아 울먹거리고 있는 아이.
그런 그림 덕분인지 서당에서는 회초리가 기본 아이템이었을 듯한 편견도 듭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조선왕조의 기본 처벌 중 하나가 회초리였지요. 꼭 학생들 뿐만 아니라 관리들이 시험에서 떨어지면 회초리로 치자는 이야기가 조선 초에 조금 나옵니다. (얼마나 시행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 회초리 치는 것을 초달이라고 하는데요. 재질도 다양하고 말도 많았습니다. 가시나무를 꺾어서 만들었대더라, 그렇다 해도 가시는 떼고 때리는 거라더라. 가시나무 혹은 뽕나무로 만든 회초리는 멍을 잘 풀게하고 기력을 좋게 해서 때려도 몸에 좋다더라 (응??) 라는 등등의 온갖 믿거나 말거나가 횡행합니다만.

결국 벌을 주되 사람은 다치게 하지 말자, 라는 게 원칙이었지요.

 

그런데 성종 때 체벌하다가 학생이 맞아죽은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삭녕군수를 지낸 김화라는 사람이 어쩌다 향교에 가서 학생들에게 책 읽고 풀이하기를 시켜봤는데, 그 중 셋이 낙제점이었댑니다. 그래서 당장 뽕나무 회초리로 체벌을 가했고, 이 중 한 사람이 덜커덕 죽어버린 거죠.

회초리 맞는 것 만으로 사람이 죽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겁니다. 한자의 미묘한 뜻 덕분에 이게 과연 종아리를 때린 건지 곤장을 친 건지 분명히 알 수가 없습니다. 적어도 분명한 것은 스물 다섯 대를 때렸고, 그렇게 맞은 세 사람 중 하나가 저 세상으로 갔다는 거죠. 게다가 김화는 이 사실을 보고하면서 자기가 때렸다는 이야기는 슥슥 감추고 병으로 죽었다라고 조작까지 해서 더 큰 일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뽀록이 나서 벌금에 귀양까지 가게 되는데... 문제는 그 다음. 이 사람이 집안이 끝장나게 좋았던 겁니다.
애초에 과거에 붙을 만한 실력도 아니었는데, 아버지가 대신 써줘서 붙었다는 둥, 온갖 말을 들었고. 또 이 아버지는 자식 사랑이 지나치다보니 아들의 막힌 벼슬길을 뚫어주려고 온갖 설레발을 다 칩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는데 미리 임금에게 "우리 아들에게 벼슬 줘서 감사 'ㅅ'"라는 말을 올릴 정도. 결국 갖은 반대에도 다시 관직을 얻긴 했지만... 그만한 물의를 일으킨 데다가 본인 역시 노력과는 담 쌓은 사람이라, 듣보잡 직책을 돌다가 또 귀양갔습니다.

 

성균관이나 사학, 그리고 향교에서 낙제점 받은 학생의 종아리를 치는 체벌은 의외로 정식 규칙이었습니다. 다만 규칙이되 실제로 얼마나 시행되었는 지는 알 수 없습니다. 성종 때 유별나게 엄한 대사성 한 사람이 학생들을 시험보고 종아리를 때리자 학생들이 들고 일어나 공부를 때려치고 성균관을 텅텅 비워버린 일도 있었으니까요.
이 때의 판결은 반반이었습니다. 학생들이 스승을 공경하지 않으니 문제가 있다. 하지만 덕으로 학생들을 보듬지 못한 대사성도 문제가 있다고 말이지요.

사실 선비들에게는 그깟 회초리 백 대 맞는 게 낫지, "너 님 과거 평생 금지 'ㅅ' " 조치를 받는 것이 훨씬 무서운 벌이었습니다.


끝으로 이건 중종님의 말씀.
 
"스승이 비록 가르쳐주고 싶어도 유생이 스스로 즐겨 배우지 않는다면, 이는 종아리를 때리고 겁을 주어서 될 일도 아니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학창 시절 공부한 것은 맞는 게 싫어서가 아니었고, 또 내가 아니더라도 급우들이 엎드려서 펑펑 소리 나도록 맞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써늘해지는 경험이 참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스승이 학생들을 바로잡기 위해서 때리는 건지, 아니면 그 날 짜증나는 일이 있어 학생을 패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건지는... 그 어린 나이에도 충분히 알 수 있었으니까요.

 

뱀발 이야기 하나 더. 옛날이나 지금이나 막장 선생이 있고 꼴통 학생이 있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촌지 받고 시험 붙여주는 선생이야 놀랄 일이 아니지만,
성균관에서 교장 선생님 방에 쳐들어가서 성적 정정을 요구하는 용자라던가,
선생 머리채를 잡고 질질 끌고 다닌 학생 이야기는 좀 쇼크였습니다. 그것도 서슬퍼런 꼰대 정조의 시대에 벌어졌으니까요!
옛날에는 선생님 그림자도 안 밟았다는 말은 거짓말입니다. 선생 패는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이황이 "요즘 애들은 선생을 봐도 공손히 인사를 안 하고 벌러덩 누워 흘깃 보다 말아!" 라고 써놓은 글은 꽤 재미났습니다. 율곡 이이도 "선생님을 보면 인사를 하지 도망가지 말 것." 이라고 학칙을 적어둔 듯 하니... 어째 모교에 찾아갈 때 마다 듣는 이야기랑 많이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이거 소소하게 재미있는 이야기는 고구마 덩이줄기 같이 쑥쑥 나오는데, 이어나가자니 끝이 없어서...
어느 선에서 잘라야 깔끔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지 고민입니다.
 

건 그렇고... 배 고픕니다, 아흑.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6496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5055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4178
126220 [넷플릭스바낭] 나름 신작 & 화제작 & 흥행작이네요. '프레디의 피자가게' 잡담입니다 [1] new 로이배티 2024.05.16 70
126219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아담 드라이버 - 메갈로폴리스 티저 예고편 [1] new 상수 2024.05.15 79
126218 삼식이 삼촌을 5화까지 다 봤는데 <유스포> [1] new 라인하르트012 2024.05.15 182
126217 '꿈처럼 영원할 우리의 시절', [로봇 드림]을 영화관에서 두번 보았어요. new jeremy 2024.05.15 77
126216 프레임드 #796 [2] update Lunagazer 2024.05.15 42
126215 술과 모임, 허세 catgotmy 2024.05.15 97
126214 몬스터버스에서의 인간의 기술력 [2] 돌도끼 2024.05.15 119
126213 [왓챠바낭] 짧게 쓰기 도전! J-스릴러의 전형, '유리고코로' 잡담입니다 [2] 로이배티 2024.05.15 134
126212 프레임드 #795 [2] Lunagazer 2024.05.14 42
126211 그린데이 Dookie(1994) catgotmy 2024.05.14 83
126210 에스파 선공개곡 Supernova 뮤직비디오 상수 2024.05.14 124
126209 매콤이라 쓰고 핫이라고 해야한다, 신기루를 인터넷에 구현하려는 노력들(오픈 AI), 상수 2024.05.14 137
126208 요즘 본 영화들에 대한 짧은 잡담... [5] update 조성용 2024.05.14 403
126207 <혹성탈출:새로운 시대> 줄거리 요약 짤 (스포) 스누피커피 2024.05.14 234
126206 (정보) CGV아트하우스 [에릭 로메르 감독전]을 하네요 [4] jeremy 2024.05.13 193
126205 [넷플릭스바낭] 태국산 월세 호러... 인 줄 알았던 '집을 빌려 드립니다' 잡담입니다 [6] 로이배티 2024.05.13 323
126204 에피소드 #89 [2] Lunagazer 2024.05.13 44
126203 프레임드 #794 [4] Lunagazer 2024.05.13 44
126202 고지혈증 예방등 catgotmy 2024.05.13 165
126201 [넷플릭스바낭] 시간 여행물은 아니고 과거 변경물(?) 정도 됩니다. '나락' 잡담 [2] 로이배티 2024.05.13 26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