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싸이월드 미니홈피.

2010.07.28 20:15

로이배티 조회 수:3078

0.

방학 맞이 집 청소와 밀린 빨래를 해결해 놓고 자꾸 듀게에 바낭을 토하고 있습니다. -_-;;

 

1.

홈피에 나와 있는 미니홈피 생성일을 보니 무려 2000년에 만들어 놓았군요. 10년이라...

제대하고 학교에 복학을 했더니, 컴퓨터완 아주 거리가 멀었던 옛날 학번 선배들이 동아리 클럽을 만들었다며 가입하라고 첨 듣는 이상한 사이트 이름을 알려주더군요. 왜 다음, 프리챌(그 당시엔 잠깐 반짝 했었죠) 같은 사이트가 아니고 이런 희한한 곳이냐고 물었더니 '아는 친구가 만드는 데 참여했는데 돕는 의미에서' 라는 대답을 들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싸이트에 가입했고. 미니 홈피라는 걸 '이용하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3년 후의 일이었습니다. 이유야 뭐. 졸업한 친구, 선 후배들과의 친교가 목적이었죠. 다들 그런 이유로 시작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2.

'온 국민의 스토킹 도구'로써의 싸이의 효용성을 처음으로 인식한 것은 장난 삼아 설정해 본 히트 수 이벤트 덕택(?)이었습니다.

누군가 당첨이 되었는데 아무 말도 없이 사라졌길래 당첨자를 확인해 보니 (그 당시엔 당첨되면 선택의 여지 없이 주인에게 알려졌었죠) 기억나지 않는 이름이었고. 누군가 싶어서 이름을 클릭해서 넘어가 봤더니 1년 전에 소개팅을 했던 분(...) 안 그래도 이미 충분히 민망할 것 같아서 아무 글도 남기지 않고 그냥 창을 껐습니다.

 

헤어진지 6~7년이 지나서 시집가고 애까지 낳고 살고 있던 전 여자 친구의 미니 홈피를 가열차게 방문하던 친구의 찌질한 에피소드가 덩달아 생각이 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제게 전활 해서 "야, 싸이 이벤트가 뭐냐?" 라고 묻더라구요. 말을 듣는 순간 바로 어떤 상황인지는 짐작이... -_-;;

세 번이나 당첨이 되었다고 하길래 "야이 찌질한 xx야!! ...그러게 애초에 로그인 하지 말고 갔어야지(?)" 라고 유용한 조언을 해 주었으나 이미 그쪽의 싸이 내용은 전부 1촌 공개로 바뀐 상태였고. 자존심이 상한 제 친구는 복수-_-를 하겠다며 본인 싸이를 조회수가 하나 올라갈 때마다 무조건 이벤트 당첨이 되도록 해 놓고 의지를  불태웠지요.

 

물론 목표(...)는 걸리지 않았습니다.

저번 달에 장가 갔으니 이젠 정신 차리고 잘 살겠죠. 그 녀석.

 

그리고 얼마 후, 이벤트에 당첨 되어도 본인임을 알리지 않을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된 것을 보니 참 웃음이 나왔었어요. 이건 뭐 대놓고 스토킹하라고 부추기는 것도 아니고;

 

3.

교사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계약직이라서 담임은 맡지 못 했고, 애들이랑은 친해지고 싶고. (신임 교사 특유의 심대한 착각이죠. -_-;;) 해서 싸이에 찾아오는 아이들의 방명록에 일일이 답글을 달아 주며 애들이 자기 싸이 와 보라고 하면 가서 방명록도 달고. 퍼 가라는 사진도 퍼가고 그러고 지냈습니다. 한동안 그러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게 된 사건이 있었지요. 학생 한 명이 자기랑 찍은 사진을 퍼가라고 해서 건너갔는데... 그 사진 리플에 어떤 학생이 '난 이 인간 은근히 재수 없어서 싫던뎈ㅋㅋ' 라고 남겨놓은 것을 보고 잠시 헤롱거리다가. 이렇게 학생들의 사적인 부분에 대해서 아는 것이 선생 입장에서든 학생 입장에서든 전혀 좋은 게 아니구나... 라는 걸 뒤늦게 깨닫고 일부러 미니홈피를 멀리하기 시작했지요.

 

그러고 보니 그 전엔 이런 일도 있었군요.

교생 실습을 나오셨던 분이 저와 다른 남자 선생님의 사진을 찍어 올려놓고 제 홈피를 찾아와서 퍼가라고 하셨더라구요.

그래서 넘어갔더니 거기 리플 중에 "학교 밖에만 나가면 찌질한 취급 받을 놈들이 여학교 선생하면서 지들이 인기 많다고 착각이나 하곸ㅋㅋ" 라는 게 있더라구요. 남긴 사람은 그 분 말고 다른 동료 교생이었습니다(...) 저는 찌질이지만 저를 찌질이라 부르는 건 용서할 수 없었기에 애들도 찾아와서 리플달고 있는 곳에 저런 내용을 다 적나... 싶어서 한 마디 할까 했지만, 찌질이에게 잔소리 듣고 기분 상하실까봐 그냥 참고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덕택에 그 사진에 함께 찍힌 동료 교사와는 지금도 시시때때로 '우리 같은 찌질이끼리 이러지 마셈ㅋㅋㅋ' 이러고 놉니다. 앞으로도 30년은 더 이러고 놀 수 있을 테니 오히려 그 분에게 고마워해야 할 지도. ^^;

 

어쨌든 요즘에도 들어가긴 합니다.

메신져를 네이트를 쓰다 보니뭐. 방명록에 뭐가 올라오면 확인하라는 메시지가 뜨잖아요. 그러면 들어가서 쓱 확인해 보고.

또 이젠 3남매가 다 집을 떠나 따로 살다 보니 가족과 관련된 사진 같은 걸 찍으면 싸이에 올려놓고 각자 퍼가라고 하는 쪽이 편해요. 그래서 그런 사진들만 아주 늦게(...) 올려놓고 가서 퍼가라고 글 남기고. 그런 식으로 사용하지요.

애초에 '친교질'을 주목적으로 만들어진 서비스이니, 그런 용도로 사용하기엔 여전히 나쁘지 않은 서비스인 것 같습니다. 자기 홍보 목적으로 사용하면서 목숨 걸고 매일매일 시간들여 관리하시는 분들은 좀 웃기기도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그걸 비웃을 필요까지 있나 싶기도 하구요. 다 한 때 재민걸요.

 

4.

갑자기 와이프에게 보여주고 싶은 옛날 사진 생각이 나서 오랜만에 사진 폴더를 뒤져봤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싸이 미니 홈피는 검색 기능이 참 거지 같아서... -_-;;

'대략 이 때쯤?' 같은 식으로 찍어서 일일이 뒤져보는 노가다를 하다 보니, 5년전 사진에 남겨진 학생 리플 하나가 눈에 띄더군요.

제가 처음으로 담임을 했을 때 맡은 학생이었고, 2년 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난 아이였거든요.

 

설마 하면서 이름을 클릭했더니. 싸이는 여전히 살아 있었습니다.

떠나기 한 달 전까지도 계속 글을 올리고 있었더군요. 사진도 찍어 올리고, 방명록에 리플도 달고. 일촌평엔 친구들의 응원 메시지와 작별 인사들이 빼곡히 적혀 있고...

게시판이나 방명록에 광고글이 하나도 없는 걸 보면 가족들이 관리를 하고 있는 모양이더군요.

 

음...

 

자세한 걸 적긴 그렇지만. 암튼 뭔가 참 울컥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냥, 그 홈피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남아 있어도 별로 쓸 데는 없겠지만. 그래도. 

 

5.

결론 같은 게 있으면 바낭이 아니지요.

암튼 뭐. 무심 & 시크의 전당인 듀게이니만큼 이 서비스를 이뻐할 분은 거의 없겠지만.

싸이 미니홈피란 것도 그렇게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기도... 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적은 글일 겁니다. 아마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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