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듯이 취미가 직장생활인 제가 메신저로 지인과 잡담 나누기에 몰두하던 어느날이었습니다.

갑자기 생각난 마봉춘의 신비한 TV서프라이즈(이하 서프라이즈)쪽으로이야기가 흘러가던 도중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만약, 아주 만약에, 박찬욱 감독이 서프라이즈의 에피소드 하나를 연출하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대화를 나누던 형님께서는[ 대체 박찬욱이 그걸 왜...]라며 의문을 표하셨지요.

그 의문이 시발점이 되어 저의 망상은 끝없이 뻗어갔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망상 입니다.

깐느박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한국영화계에서는 더이상 부러울것이 없는 명성과 필모를 구축해나가던 박찬욱 감독은 어느날

후배와 술자리를 같이 하게 됩니다. 젊은 시절, 함께 시네마 떼끄를 전전하며 영화에 목숨걸고 영화에 영혼을 바치겠다던 후배는 마봉춘 예능국에 들어 앉아

재연배우들을 데리고 날림으로 만드는 재연 프로그램이나 찍고 있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합니다. 

(서프라이즈가 이미 400회를 돌파할 만큼 마봉춘의 효자 프로그램이라는 현실은 이야기 전개상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후배의 자학이 이어지자 깐느박은 위로의 말을 던지며 그가 만드는 프로그램의 장점들을 특유의 언변으로 칭찬합니다. 그리고 '좋은 이야기, 사람의 호기심을 끌고

결말을 궁금하게 하는 이야기'를 만드는일이 작가에게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지를 설명합니다.(여기서도 실제 박찬욱 감독이 서프라이즈를 한번이라도 봤는지 안봤는지는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줄어드는 제작비와 열악한 제작환경, 재연배우들을 끌고 다니며 3류 프로그램이나 만든다는 손가락질을 받는 울분을 토해 내던 후배는 결국

'깐느까지 갔다온 영화감독이 저같은 3류 TV감독과 술을 같이 해주신다니 영광입니다'라며 자학드립을 치기 시작합니다.

JSA이전 까지 가망성 없어보였던 인내의 시간을 보낸바 있는 깐느박, 그리고 '복수는 나의 것'으로'악평도 나의 것'을 경험했던 깐느박은 순간 분노합니다.

후배를 달래도 보고 호통치며 혼내보려고도 해보지만 그의 자학드립은 이미 맨틀까지 뚫을 기세입니다.

"형이 내심정을 알아? 내 비참함을 아냐고? 발음도 제대로 못하는 재연배우들 데려다 놓고 일본인인척, 중국인인 척 연기 시킬수 있겠냐고! 스웨덴애들 데려다 놓고 

프랑스인이라고 연기시키고, 여의도공원가서 센트럴파크인척 하고 도산공원가서 베르사유의 정원인척 할수 있냐고?! 형은 할수 있겠냐고?!"

화가난 깐느박은 술기운과 후배에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지난 무명시절의 설움이 한데 뒤섞인 사자후를 토합니다.

"멍청아, 왜 못해?! 카메라만 있으면 세상을 무대로 삼고, 노숙자를 배우로 삼아서라도 영화를 만들수 있는게 영화감독이다! 

그!것!이! 영.화.감.독.이다!"(이부분 대사의 열혈도가 지나치게 오글거려도 그냥 넘어가 주시는게 예의 입니다.)


다음날 숙취가 오대수의 망치처럼 머리를 때려대는 아침을 맞이한 깐느박은 인터넷뉴스에 탑으로뜬 기사를 읽고 경악합니다.


"박찬욱 감독, 신비한 TV서프라이즈 스페셜 에피소드 연출한다."


지뢰밟은 이병헌 처럼 그자리에 굳어 있던 깐느박은  오후가 되어서야 겨우 정신을 차립니다. 이미 뉴스를 본 동료들의 전화 떄문입니다.

- 너 돈 필요하냐?

- 형 왜그래요? 영화 엎어졌어?

- 박감독님의 의도된 일탈은 고립된 텍스트에서 벗어나 다양성의 추구를 통해 관객의 지평을 넓혀가려는 긍정적인 시도입니다. (이건 정성일)


그리고 마지막으로 걸려온 전화는 그 후배의 전화였습니다.

어떻게 된일이냐는 질문에 후배는 별 대답없이 내일 아침에 아이템 회의가 있으니 일산으로 오시라는 말만 전하고 전화를 끊습니다.

깐느박은 잠시 멍한 정신을 수습하고  해당 언론사에 정정을 요청하는 메일을 씁니다. 그리고 보내기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형, 정말 고마워.형 때문에 나도 용기를 얻었어. 도와주겠다니 정말 고마워. 이번 기획안 없었으면 나 잘릴뻔했어.]

라는 후배의 문자가 옵니다.

깐느박은 중얼거립니다.

"Zot됐다...."


대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깐느박은 일산 마봉춘 드림센터로 갑니다.

다시 시작된 파업은 여의도와 일산 드림 센터앞으로 노조원들을 내몰게 만들었습니다.

어디로가야할지 몰라 경찰과 노조원들 사이에 서있던 깐느박은 후배에게 전화를 겁니다. 그러자 곧 노조원들 사이에서 후배가 손을 흔들며 웃으며 걸어나옵니다.

"뭐야, 파업중?"

얼떨떨한 얼굴로 서있던 깐느박을 알아본 노조원들이 점차 모여들더니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합니다.왜 지르는지 이유는 모르지만 하여간 지릅니다.

다음날 이 모습이 찍힌 사진은 '진보신당, MBC파업지지'라는 헤드라인 밑에 걸립니다.

한나라당에서 MBC의 파업은 국민의 시청권을 담보로한 불순한 세력의 정치적 목적을 지닌 파업이다.라는 논평을 냅니다. 얘네는 원래 자기네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잘 모르는 애들이니 그냥 넘어갑시다.

그리고, 변...그...누구였죠? 하여튼 이름이 잘 기억안나는  잉여하나는 '좌빨감독에 좌빨방송국, 천생연분이다. 라는 제목으로 논평을 쓰지만 여전히 관심 가져주는 곳은

듀게밖에 없습니다.

좌우지간 아이디어미팅을 위한 회의실로 끌려온 깐느박은 파업중이라 모든 프로가 외주제작 체제로 돌아간다는 설명을 듣고 후배가 했던 말과 뭔가 미요하게 다르단걸 

눈치 채지만, 지금 눈치채봤자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미팅에 참석한 작가들중 몇명은 깐느박을 직접 알현하게 된 감격에 겨워 혼절해버렸으니까요.

아이디어 회의는 400회를 이어온 프로 답게 일사천리로 진행되지만 여전히 뭔가 재미있고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갈망하는 작가들의 욕심으로 점점 길어집니다.

애초에 10분 내외의 짧은 재연 에피소드 하나만 하는줄 알았던  깐느박은 회의가 끝나자 50분짜리 스페셜 에피소드 하나를 통째로 맡게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경악하게 됩니다. 후배를 다시 찾아가 항의해 보려하지만 이미 소용 없습니다. 일산에는 깐느박이 마봉춘 파업지지를 위해 달려왔다는 소식을 듣고 보도진이 

이미 몰려든 상태고 연예부기자들은 깐느박의 신비한 TV서프라이즈의  연출 소식을 취재하기 위해 몰려 든 상태입니다.

로비에서 김태호 PD를 잠깐 만나 '다음에 무한도전 스페셜도 한번 같이 하죠' 라는 제의를 정중하게 거절한 깐느박은 씨네 21로 부터 연락을 받습니다.

다음주에 [신비한 TV서프라이즈 깐느박 스페셜]을 위해 50P특집을 준비할 터이니 인터뷰 날짜를 잡자는 것이죠. 깐느박은 마봉춘 일산 드림센터의 화장실에서 

소리죽여 눈물을 흘립니다. 

이런 절망감은 '복수는 나의것' 시사회를 하고 난다음 CJ관계자들과 허름한 중국집가서  미지근한 맥주 마시며 밥먹을때 이후로 처음인것 같습니다.


여기쯤 쓰다보니 내가 왜 방청소 하다말고 이런 소리를 진지하게 늘어놓고 있나 회의가 들기 시작합니다.

세탁기가 다 돌았군요.빨래를 널러가겠습니다.

이 망상의 뒷이야기는 (기대하시는 분은 없겠지만) 나중에 시간날때 더 늘어 놓죠.(하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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