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글에는 방영중인 드라마의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다량 숨겨져 있을 수 있습니다. 




애런 소킨을 유명하게 해준 드라마인 웨스트 윙(The west wing)은 정치 드라마의 교과서적인 존재라는 별칭을 갖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정치인을 응원해야 하는지. 어떤 것이 좋은 정치인지. 그리고 실제 정치와는 어떻게 접합을 해야 하는지를 애런소킨은 그 드라마. 7시즌의 100여개가 넘는 에피소드를 통해 매력적으로 보여주었죠. 


그것은 소킨의 드라마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결점과도 연관됩니다. 계몽주의죠. 시청자들을 가르치려는 태도와. 무지불식간에 캐릭터들이 슈퍼맨 처럼 모든 것을 다 알고 있고 정확한 판단을 내린다는 것. 이것은 실제 정치에서 구현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실제로 웨스트 윙에서 나오는 백악관 스텝들은 왠만한 전문가들 빰치는 상황 인식능력과 판단 능력을 보여주었죠. 그것도 해당 사안에 대해 얼마 알지도 않은 순간에! 말이죠.


이것 만큼 비현실적인 것은 없습니다. 소킨은 물론 웨스트 윙의 캐릭터가 한 말 -예를 들어 극 중 대통령인 조사이어 바틀렛(마틴 쉰 분)은 이런 말을 합니다. 사려 깊고 헌신적인 소수의 시민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잊지 맙시다. 왜냐하면 그들만이 세상을 바꿔왔기 때문입니다. - 을 빌려 자신의 태도를 굳이 감추려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실속에서 사려 깊고 헌신적인 소수의 시민들은 그야말로 소수이며 그들이 현명하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애론 소킨의 생각은 자칫 잘못하면 엘리트 주의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그가 웨스트 윙 이후에 내놓은 드라마 스튜디오 60이 실패한 이유도 그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웨스트 윙의 세계관에서 소킨의 캐릭터들은 일정부분 정당성이 있었습니다. 정의로운 대통령과. 뛰어난 머리를 가진 참모진의 조합은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이었지만. 또는 도달하고 싶은 이상이기도 하였죠. 그랬기에 시청자들은 웨스트 윙에서 나온 일종의 계몽주의를 기꺼이 용납할 수 있었죠. 


반면 SNL-미국의 유명한 풍자 토크쇼-를 빌려쓴듯한 스튜디오 60에서는 애런 소킨의 그런 태도가 오히려 독이 되었습니다. 소킨의 화려한 말빨과 치밀한 구성력은 여전했으나. 대중들은 코미디언한테서, 그리고 쇼 호스트한테서 계몽주의를 기대하지는 않았죠. 뒤늦게 소킨은 애정 라인을 추가하는 등 대중에 접근하려는 태도를 보였으나 결국 실패했습니다. 


이달 1일부터 hbo와 손을 잡고 시작한 애런 소킨의 드라마 '뉴스룸(The newsroom)은 언론인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스튜디오 60과도 그리고 웨스트 윙과도 일정부분 연관성을 가집니다. 어떤 이들은 뉴스룸이 방송사의 뒷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스튜디오 60을 떠올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언론인의 특성상 대중을 이끌고 선도해간다는 점에서 웨스트 윙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소킨은 제대로 된 자신의 놀이터를 고른 셈입니다. 


그리고 저같은 언론계 종사자의 입장에서 뉴스룸은 또 다른 가치를 지닙니다. 


뉴스룸의 시작은 시청률에 목매달아 왔고 불편부당한 태도를 지녀왔던 앵커 윌 맥어보이가 어느 순간 열받아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드러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이 논란으로 3주간의 휴가를 지내야 했던 맥은 돌아온 방송국에서 자신을 버리고 떠난 동료들과 마주합니다. 그리고 그는 파혼당해 떠나보냈던 프로듀서 매킨지와 다시 일하게 되는 상황에 처합니다. 매킨지는 자신이 왜 윌 곁으로 다시 돌아왔는지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정보가 없거나 잘못된 정보가 제공될때 끔찍한 결론이 나올 수 있어 윌, 그래서 내가 뉴스를 만드는 거야. 유권자들에게 완전한 정보를 제공해야 돼" 


그리고 매킨지를 다시 기용한 사장 찰리는 극 말미 이렇게 말하죠. 


"앵커가 주관이 있다는 것은 이제 새로운 것도 아냐. 머로우도 그랬고 덕분에 매카시가 끝났지 크롱카이트도 그랬고 덕분에 베트남전은 끝났지" 


사실 이것이 언론의 존재이유입니다. 언론인이 필연적으로 계몽주의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이 주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론인에게는 높은 도덕 수준과 윤리가 요구되는 것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정보가 너무 많아져. 사람들이 수동적으로 변하고. 정보의 질이 낮아지는 현대 사회에는 더욱더 중요한 가치입니다. 정보를 제공하는 것만이 언론의 사명이 아니라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를 판단해야 하는 것이 언론의 사명이어야 하는 시대입니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중심에 있는 것을 중용이라고 부르고 중도라고 불러왔습니다. 과연 그것을 우리는 객관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언론이 자신의 사명을 드러내고 정확한 정보로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진정한 중도와 중용은 아닐까요.


저에게 있어 뉴스룸은 그래서 더 특별합니다. 이런 드라마를 제작할 수 있는 애런 소킨의 힘과, 그리고 그런 제작을 하고도 별 피해를 입지 않고 오히려 수익을 걱정(?)해야 하는 미국의 풍토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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