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 심야상영을 참 좋아합니다. 

아무리 피곤에 지쳐 밤을 보내도 보고 있는 영화 말고는 아무 생각이 안 드는 시간이거든요. 

그리고 그 순간에는 참 재미난 이야기들도 많지요. 

그래서 심야상영과 관련된 몇 가지 잡담을 좀 늘어놓겠습니다. 


1) 2007년 부산국제영화제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가 '미드나잇패션'이라는 이름으로 심야상영을 돌입한 이후 두 번째 해였다.

당시 심야상영 첫 영화가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스키야키 웨스턴 장고>였고 두 번째가 흑백 애니메이션인 <필름누아르>였다. 

첫 번째는 미이케 다카시 특유의 발랄함 때문에 즐겁게 봤다. 

그리고 두 번째는 좀 지루한 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하드보일드의 끈적한 매력을 애니메이션으로 살린다고 살린 작품이다. 

그 덕에 관객 중 몇 명은 본격 숙면을 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제의 세 번째 영화가 시작하자 불편한 사운드와 충격적인 이미지가 이어졌다. 

돌이켜보면 세 번째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대략 3명의 여성이 울면서 나간 걸로 알고 있다. 

아주 어릴 적 부산 부영극장에서 <홀로코스트>가 상영할 적에 극장 앞 풍경과 유사했다. 

이 부문을 기획한 박도신 프로그래머는 "관객들이 방심할 적에 한 방 크게 칠려고 일부러 세번째에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이 영화 한 편 때문에 박 프로그래머는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어르신)들에게 엄청 욕을 들어먹고 결국 다음해 '미드나잇패션'은 비교적 심심한 영화들의 잔치를 이루게 됐다. 

2008년 박 프로그래머는 호러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로부터 엄청난 욕을 먹어야했다. 

2007년 관객들과 영화제 조직위원, 해당 프로그래머까지 공포에 떨게 한 이 영화는 프랑스산 호러영화 <인사이드>다.


2) 전주국제영화제는 최고의 트렌드 중 하나가 '불면의 밤'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심야상영이다.

13년째를 맞이한 전주영화제지만 매년 심야상영 첫 날에는 영화를 공부한 많은 대학생들이 찾아와 '불면의 밤'의 시작을 환호하며 맞이했다. 

전주영화제는 그래서 심야상영에 많은 공을 들인다. 

사소한 것이지만 간식이 아예없는 부산영화제, 첫번째 휴식시간에만 간식을 주는 부천영화제.

그리고 매 쉬는 시간마다 간식을 주는 전주영화제. 

어느 순간에는 간식 뿐 아니라 마스크팩과 입냄새 제거제까지 주곤 했다. 

날밤 샌 관객에 대한 배려가 눈부신 곳이다. 

그리고 전주영화제 '불면의 밤' 첫날 첫번째 쉬는 시간에는 영화제 홍보대사들이 직접 찾아와 간식을 나눠준다. 

다시 말해 2012년 4월 27일 밤 12시에 시작하는 심야상영 첫 영화가 끝난 후 쉬는 시간에 로비로 나가면 영화제 홍보대사인 임슬옹과 손은서가 나눠주는 간식을 먹을 수 있다. ....별로 메리트 없구나.

그러나 이런 부수적인 것들 다 제껴두고라도 전주영화제 심야상영은 분명 매력이 넘친다. 

부천영화제의 심야상영은 지나친 쌈마이의 향기를 안겨준다. 

부산영화제의 심야상영은 고퀄리티의 영화들이 많지만 때때로 졸음을 참고 볼 가치가 있는지 의심이 가게 한다. 

한 예로 작년 부산영화제 심야상영에는 배급사와의 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배치한 영화도 있었다. 

이 이야기는 잠시 후에...

어쨌든 전주영화제의 심야상영은 이 두가지를 아우르는 매력이 있다. 

물론 3개 중 하나는 매우 불편하거나 졸릴테지만 반대로 3개 중 하나 이상은 최고의 명작을 건지게 될 것이다. 

작년 전주영화제에서 필자는 꽤 침착하고 묵직한 뱀파이어 영화 <우린 우리다>와 <GTA>의 엔진으로 만들었다는 애니메이션 <트래쉬마스터>를 봤다. 

<트래쉬마스터>는 드럽게 지루하고 졸렸다. 

그리고 문제의 세번째 영화는 알렉스 드 라 이글레시아의 <슬픈 트럼펫 발라드>를 봤다. 

필자는 이 영화를 지난해 최고의 외화로 선정했다. 

재작년에도 <서바이벌오브데드>와 <발할라 라이징>, <포비아2>를 봤다. 

<발할라 라이징> 빼면 다들 괜찮은 영화였다. 

하지만 전주영화제가 처음부터 이렇게 끝내주는 심야상영을 갖게 된 건 아니다. 

지금도 기억하는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 대략 13년 전이다. 

당시 필자는 '로저 코먼의 밤'을 보게 됐다. 

기억하기로는 무려 로저 코먼이 직접 전주를 찾아와 관객들과 만남을 가졌다. 

그리고 당시 상영작 중 하나인 <기관총엄마>에서는 어마어마하게 젊은 로버트 드니로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전주영화제 초기 프로그램 중 가장 발랄한 심야상영 프로그램이었다. 

전주영화제는 기본적인 컨셉이 "세계 영화의 새로운 방향"이다.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고 영화사의 새로운 흐름을 찾아내는, 한마디로 미래지향적인 영화제다. 

그렇다 보니 실험영화도 많고 특이한 영화도 많았다. 

전주영화제는 그게 매력이긴 했지만 심야상영에서는 그게 마냥 매력일 수 없다. 

지금은 다 기억하기도 힘들지만 새벽 3시에 러닝타임 2시간 넘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도 있고(물론 졸았다), 말이 호러영화라고 하지만 당최 어디가 호러인지 알 수 없었던 영화도 있었다. 

오늘날 전주영화제의 발랄한 '불면의 밤'은 몇 년 전 전주영화제가 새로움과 대중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쫓겠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나름 멋있다. 

그래서 필자는 전주영화제 심야상영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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