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거짓말쟁이 친구

2012.08.08 14:51

jake 조회 수:7212

대학교 1학년때 만난 친구사이입니다.

그녀는 특별히 예쁘거나 눈에 띄게 매력적인 사람은 아니었지만, 전 아마 처음 만났을때부터 그녀를 좋아했던것 같습니다.

그녀는 엄청나게 자신만만해했고, 뒤에서 화염방사기를 든 살인마가 쫓아와도 절대 뛰지 않을것같은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하는편은 아니었지만,

왠만한 중산층에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LP판 모으는게 취미인 피아노를 무척 좋아하는 아이로 보였습니다.

남자동기들중에도 그 아이에게 관심을 가진 사람이 꽤 있어보였죠.

누구랑 특별히 사귀지도 않았지만 아무나하고나 말도 잘하고 잘 지냈습니다.

 

1학년 축제때 밤늦게까지 놀다가 가까운 그녀의 집에 좀 재워달라고 했었죠.

그녀는 흔쾌히 OK하더니, 축제날 갑자기 집에 공사를 한다고 했던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 이유로 저를 집에 데려가지 않았습니다.

무지 미안해하는 그녀에게 괜찮다고 말하고 고등동창네 집에 가서 잤습니다.

우리는 곧 과내에서 보도사진부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벼르고 벼르다가 니콘 FM2를 샀는데, 그녀도 제 것을 보고 곧 살것처럼 굴더니 졸업할때까지 사지 않았죠.

아니, 졸업할때쯤 카메라를 들고 다니긴 했는데, 어디서 샀는지는 물어도 별 대꾸를 안 했어요.

명랑하고 자신만만하던 아이가 어느날부터 말수도 적어지고 힘들어하더니

대학교 3학년때는 등록은 해놓고 학교를 거의 안 나왔어요.

집으로 전화하면 그 아이 할머니가 받았는데 그냥 지금 집에 없다...라고만 하셨어요.

그 리고  그녀는 학교내 총여일도 잠깐 했다가

어느날은 구사대를 한다고 파이프도 들고 다니다가 했지만

한번도 제대로 어떤 조직에 묶였던 적이 없었어요.

그녀와 면식이 있던 사람들에게서 들었던 그녀의 인적사항은 새아버지랑 산다고 했다가,

어머니가 정신병력이 있다고 했다가, 그녀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산을 어떤 형식으로 물려받는다고 했다가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들뿐이었고,

한동안 그녀가 학교에 나오지 않는동안 어떤 놈이랑 동거를 했다더라, 애를 가졌다가 중절을 했다더라며

선배들이 짜증나는 얼굴로 읊어대는 것을 들었습니다.

한번은 그녀가 과수업에 갑자기 들어왔는데 얼굴이 온통 반창고 투성이었습니다.

그런 얼굴로 일주일정도 학교를 다녔는데,

나중에 반창고를 뗀 얼굴에는 별다른 흉터나 상처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이복오빠가 밤중에 자기방에 들어와 성폭행하려 했다고 그래서 얼굴을 하도 많아 맞아서 그랬었다고 분노에 가득차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녀가 좋았습니다.

때때로 그녀의 허세나 가식이 느껴져도 그녀를 사랑했죠.

그녀도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만난 친구가 저라며 무척 의지했어요.

우리는 대학생활이 끝나고 비슷한 분야의 공부를 더하며 일을 찾았어요.

그녀는 가끔 저를 깜짝 놀라게 할 작품을 하룻밤새 뚝딱 만들었어요.

주위사람들은 모두 그녀가 곧 잘 나갈거라고 생각했어요.

얼마후 그녀의 작품이 표절 아니 도작시비에 휘말리고 고소를 당했어요.

그리고 그녀의 다른 작품도 부분표절이라고 주위사람들 저에게 알려주었어요.

그녀는 한동안 힘들어했고,

그러다 저와도 물리적 거리도 생기고 하며 소원해졌습니다.

저말고는 연락을 하던 동기도 없었기때문에 그녀의 소식은 아무도 몰랐어요.

그러다 10년만에 그녀를 만나게 되었어요.

두 아이를 둔 전업주부인 그녀는 예전보다 훨씬 안정되고 편안한 얼굴이었어요.

차를 마시며 그녀는 친구인 내게 거짓말을 너무 많이 했다고 그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고 사과를 했습니다.

자기를 용서해달라고 했습니다.

나는 괜찮다고 웃는 낯으로 대답했습니다.

그녀는 정말 예전보다 편안하고 행복해보였습니다.

하지만 난 이제 그 아이가 정말 싫어졌습니다.

다시는 연락도 하지않고 만나지도 않을것 같아요.

 

불안한 천재같아 보이고

불행한 예술인 같아 보이던 그녀,

야심만만하고 하고 싶은것을 위해 무슨짓이든 할것 같아보이던 그녀,

남들이 싫어했다하더라도 뜨겁고 위태위태했던 그녀를

저는 아마도 많이 좋아했던것 같아요.

 

그녀의 행복해보이지만 맥빠진 그 얼굴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습니다.

왠지 계속 화가 나고 짜증스럽고

울고 싶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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