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밤길 운전 때의 에피소드

2012.08.16 16:28

가드너 조회 수:3228

비가 무지하게 많이 오는 날이었어요.

경기도 화정에서 집 방향으로 오는 길인데요.

처음 운전해보는 길이었어요.

밤이었고요.

비가 무진장 쏟아져서 와이퍼 속도를 최대치로 올렸습니다.

차선이 제대로 보이지 않더군요.

네비가 알려주는 길을 가긴 하는데 설설 기어갔습니다.

차안에는 운전하는 저,뒷좌석에 7세 남아(아스퍼거증후군 추정되는-이것에 대해서는 제가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가 타고 있구요.


애가 운전하는 중간중간에 네비를 보더니

"엄마,지금 차선을 변경해야 할 것 같은데요"

차선변경을 못하고 그대로 갔더니 네비가 어김없이 경로재탐색 들어갑니다.

재탐색된 경로로 또 설설기어갑니다.

넓은 길이 나타나는데 중앙선이 안 보여요.


어어? 느낌이 이상해요.

내가 지금 역주행하고 있는 건가?


역주행하고 있는 것 같아요.아이에게 거의 울듯하면서 말합니다.

"철수야,엄마가 지금 중앙선이 안 보여!"

역주행의 느낌이 확 오는 게 길 중간에 보면 노란색으로 빗금 쳐져있는 길있죠.바닥이 울퉁불퉁하고.

바닥을 지나는 데 울퉁불퉁한 느낌이 와요.

재빨리 길 안 쪽으로 붙긴 했는데 아이가 조언을 해줍니다.


"엄마,사이드미러로는 선이 보일 꺼에요.보이죠?"

손가락으로 가르켜줘요.

아,그래! 사이드미러! 왜 나는 이걸로 선을 볼 생각을 못했지? 아이가 알려줘서 중앙선에 대한 감을 잡고

계속 운전합니다.

한편으로는 소름이 끼쳐요.사이드미러로 바닥선이 보인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다행히 역주행할 때 마주오는 차가 없었어요.

곧 이어 중앙분리대가 나오더라고요.

그 길로 계속 갔으면 중앙분리대건 마주오는 차건 어디에건 부딪혀 박살났을 거에요.

뉴스에 나왔겠죠.


순간 아이에게 너무 감사하더라고요.아이가 역주행하고 있다는 걸 알려준 건 아닌데

운전에 도움을 준 건 확실해요.

10분정도 더 차를 모니 이제 몇 번 지나본 익숙한 길이 나오는데 그때 긴장이 풀리고 닥쳐오는,

온 몸을 휘감는 안도감이라니.


와서 아이한테 고맙다고,중앙선 보는 방법 알려줘서 고맙다고 몇 번이고 인사하고 감싸안아주고 칭찬해줬더니

"더워요"하더라고요.


집에 와서 남편에게 물었어요.

"당신 혹시 아들한테 사이드미러로 보면 중앙선 보인다고 알려준 적 있어?"

"아니"

또 놀랍니다.


얼마전에요.

애랑 같이 EBS프로를 보는데 예약시청 알림이 떠요.

1분후 예약한 프로가 방영되는데 채널이동하겠냐고 TV가 물어봐요.

이거 누가 설정했니?

철수가 해놨어요.

저도 TV에서 그런 게 되는 줄 그때까지 몰랐거든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디지털TV는 채널안내라는 간단한 TEXT를 받아와요.

리모콘에 채널안내 눌러보신 분 있으신가요.

채널안내 누르면 간단한 방영스케쥴이 나오고 거기서 프로그램 시청예약을 할 수 있어요.


"혹시 그럼 얼마전에 철수한테 TV예약시청 뜨게 하는 것도 남편님이 알려준 거 아니었어?"

"아니.내가 알려준 거 아닌데.애가 그렇게 하데."


애가 글을 읽을 수 있으니 리모콘으로 조작해서 이것도 보구,저것도 보고 싶으니깐

예약시청을 걸어놓은 거죠.어쩐지 전에부터 예약이라는 게 뭔지 계속 물어보더라고요.

콜택시가 "예약"싸인을 켜놓고 달리는 걸 봐서 그런 가보다 생각했어요.

우왕 이런 조작을 할 수 있다니.


여기까지 읽으시는 분들은 아들 자랑을 왜 길게 써놓냐고 할 지 모르겠습니다만

요약하자면 우리 아들은 그런 겁니다.기능은 되나 사람과의 뭔가는 안되는.

아는 동네 아저씨가 놀이터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어요.담배갑을 바위위에 올려놓으면

아들이 주워서 읽습니다.

"담배에는 폐암 및 블라블라" 읽는 속도도 넘 빨라요.

(엄마들 책 읽어주기 귀찮을 때 대충 읽어주는 속도)

근데 왜 담배를 피우는 건지 궁금해하는.

정작 담배피는 아저씨가 그걸 챙피해하는 건 잘 모르는 거고.

앞으로 얘 인생이 어떻게 풀릴려는지.

어린이집에서는 얘가 특이한 걸 아니까 얘가 말할때마다 애들이 빵빵터지는데

얘는 "비웃어서 기분이 안 좋다,나가야겠다"하고 방을 나간데요. 

애가 애 같지가 않은 현상을 자꾸 접할 때마다

부디 사회나가서 좋은 사장님 만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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