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 무협소설 좋아하세요?

2012.10.15 17:51

turtlebig 조회 수:4507

제가 김용 작품을 처음 접한건 초딩때 외가댁에서...

 

오랜만에 만난 사촌들하고 서먹해서 막내삼촌 학창시절에 쓰던 방에서 뒹굴거리는데 책꽃이에 '아 만리성!'이라는 책이 있었어요. 그거 뽑아서 읽고 거의 미치광이처럼 식음을 전폐... 고려원판 영웅문 뒷표지에 '몰아의 지경으로 몰고가는 재미'어쩌구 있는데, 진짜 나 자신을 잊을 정도로 충격적이더라구요. 아 물론 아 만리성이 뭘 번역한건진 아시겠죠.

 

그리고 귀가해서 동네 대여점엘 갔더니 보물창고더군요. 초딩이 만화방에서 만화는 안빌려보고 책장이 누렇게 변색된 이상한 소설책을 주야장천 빌려다 읽었죠. 거기서 월녀검을 제외한 전 작품을 다 봤네요. 윤지평이 소용녀를 !@$@!$!하는 장면에서는 너무 충격받아서 한 사흘간 밥맛을 잃기도...진짜로요

 

우리나라에서는 영웅문으로 출간된 사조삼부곡가 히트했지만(뜬소문으로는 영웅문이 수십만부가 팔렸다고도 하고 또 의천도룡기는 드라마로 워낙 유명하니) 저는 개인적으로 소오강호와 천룡팔부, 협객행을 최고로 꼽아요.

 

소오강호는 다른 작품보다 좀더 무협스멜(?), 청소년의 로망이 있다고 할까.. 도입부도 지금 생각하면 참 신선해요. 잘나가는 공자가 어느날 집안의 비급을 노린 흉수에 의해 일가가 구몰되고 복수를 다짐...까지 읽으면 주인공이 임평지인거 같은데, 뜬금없이 휙 장면이 바뀌더니 술좋아하는 한량이 등장하죠. 그래서 번역판 중에는 맨 앞부분 임평지 집안이 전멸하는 부분을 생략하는 만행을 저지른 판이 있다고도 어디선가 본거 같기도 해요. 그리고 이 소설은 영화 동방불패 때문에 안읽어본 분들에게도 친숙할거에요. 영화에서는 중성적 매력을 막 분사해대는 청하누나가 청년들을 잠못이루게 했지만, 원작의 동방불패는 완전....; 그래도 바늘 한개 들고 무술 고수 네명을 가지고 노는 장면은 간지폭발. 솔직히 저는 영화는 별로였어요. 소설 읽으면서 상상했던 멋진 장면들이 별로 그럴듯하게 영상화되지 못한거 같았거든요. 임청하누나 하나 보고 가는거죠 영화는.

 

천룡팔부... 무협소설의 종합선물세트. 김용 소설을 굳이 한작품만 꼽으라면 전 이거에요. 등장하는 무술도 기상천외하고 뭔가 아이디어가 반짝반짝 샘솟는듯한, 그리고 호걸형 주인공의 끝판왕 소봉도 멋있구요. 소요파라는 문파가 등장하는데, 아마도 김용 월드에서 가장 신비롭고 불가사의하게 묘사되는 일파일거에요. 말 그대로 신선같은 느낌..근데 그런 신선들이 고작 치정문제로 악다구니 쓰다가 '아 우리가 다퉜던 그이가 좋아했던건 우리 둘다 아니었어 히히'라면서 멘붕하고 죽는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네요.

 

근데 이 작품에는 대필이라는 치명적인 흑역사가 있죠; 구체적으로 어느 부분이 대필인지까지 얘기가 나올 정도니..

 

협객행... 짧은 편인데 단숨에 잘 읽혀요. 김용 작품중에 사조삼부곡이 좀 우직한 정통소설(?)내지는 역사물 같은 느낌이라면, 협객행은 주로 짜릿한 아이디어가 빛나는 그런 소품같은 느낌이었어요. 읽으신 분이 생각보다 많지 안더라구요. 10년마다 돌연 나타나서 '우리 섬에 와서 팥죽 먹을래 아니면 일가친척이 다 몰살당할래?'라고 택일을 강요하는 상선벌악사자라니.. 그리고 드래곤볼류의 파워에스컬레이션(-_-) 소설이기도 하죠. 당대의 고수들을 한수 밑에 놓는 사연객을 가볍게 제압하는 상선벌악사자 따위는 수십명의 제자중 말석에 두는 협객도 도주 두명을 기진맥진해서 죽게 만드는 석파천!

 

근데 이 할배가 말년에 개작을 엄청나게 했는데, 그게 하나같이 너무 멘붕오는 것들이라 아쉽기도 해요. 심지어 김용 광팬인 제 친구는 '이 노인네가 노망이....'라고 화낼정도; 윤지평 고친건 후손들 반발때문이라니까 이해는 가지만. 하긴 그 후손들은 정말 화났겠죠. 멀쩡한 도가의 역사적 실존인물인 조상님을 찌질한 강간범으로 만들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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