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는 왜 살아야하는 걸까요? 지나가는 가을 쳐다보고 있노라니

 살아있는 매순간이 아쉽네요 

 

 그간에 살아온 일들도 다 바보같아서

 

 저를 만난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저에 대한 기억들이 모두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생각이 들 때 사람들은

 

 살아온 나라를 떠날 것을 결심하는 건가요? 홀연히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2.

 

 어제는 일 때문에 공부 잘하는 여고생 한명을 만나고

 선배가 운영하는 마켓에 들러 피클도 사고

 

 옥상바에서 혼자 버니니 두 병을 마시며 가을 지나가는 걸 쳐다보았습니다

  

 가을 지나가는 걸 쳐다보다가 오랜만에 동네선배를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나탈리 포트만을 닮은 어떤 사람이 벼룩하고 남은

 짐 나르는 걸 도와주기도 하고

 

 제가 선배의 마켓에 들르는 건,

 어제의 방문이 마지막이 될 것 같아요

 

 3.

 

 실은 그 사람 한번 더 보고 싶어서 마켓에 들렀는지도 모르겠네요

 정작 그분이랑은 이야기도 못나눠봤지만

 

 아마 앞으로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는 없을 것 같지만 뭐 어때요

 

 4.

 

 인연이라는 게 인생이라는 게

 억지를 부린다고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래도 가끔은 억지를 부리고 싶어질 때가 있죠 억지를 부리고 나면

 하염없이 쓸쓸해지고요

 

 5.

 

 누군가가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으신가요?

 

 저는 어제 어떤 분이 저를 대하는 태도를 보며 속으로

 '아, 저분이 나를 좋게 보시나?'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실제로도 저를 좋게 봤다고 술자리에서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누군가가 자신을 미워한다는 것도 예민하게 감지할 수 있으신가요?

 

 어제 저는 그간에 저를 좋아한다고 여겼던 사람이 어쩌면 그간에 저를 좋아한만큼

 저를 미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저를 아꼈던 마음이 어쩌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클지도 모른다는 걸 느끼기도 했고요

 

 마음이 좋지 않더군요 어쩔 수 없죠 그간에 너무 자주 만났다면

 이제 보지 않는 수 밖에

 

 6.

 

 30퍼센트의 수수료를 지불하고 오사카 항공권을 취소했어요

 충동적인 발권이었는데 지금 이 시기에 여행을 떠나면 저에게 제가 돌보아줘야 어떤 사람들이

 섭섭해할 거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네요

 

 이주 후에 떠나는 걸로 다시 일정을 잡았는데, 댓글로 교토와 오사카 정보를 주신 분들을 위해서라도

 꼭 다녀와야겠네요

 

 호들갑만 떠는 인간인 것 같아서 스스로가 못마땅하지만 제 생김이 이러하니 이것도 뭐 어쩔 수가 없네요

 

 7.

 

 가끔 길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노숙자분들과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어제는 귀가길에 아주 말끔하게 생긴 어떤 분이 길에 웅크리고 앉아 계신 걸 보았어요

 

 밤늦게 왜 여기서 이러고 계시냐고 여쭈었더니

 

 첫차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분은 정신지체 3급의 장애를 가진 분이었어요

 어릴 적에 부모님에게 버림을 받은 뒤

 교회 사람들을 따라 일산으로 올라와서 폐지 줍는 일을 하는데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도 있고 자신을 이용하는 나쁜 사람들도 많다는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어머니가 보고 싶지만 자신이 일도 못하고 부모님에게 폐만 끼쳐서 뵈러 갈 수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제가 가지고 있는 현금을 좀 드리면서 내일 아침에 교회로 가지 말고

 터미널로 가서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가라고 말씀드리고

 지하철까지 바래다드렸는데

 

 부모님 계신 곳으로 가셨을지 잘 모르겠네요

 

 그분 말씀을 들으면서 조금 울었어요 그분의 삶이 안타까워서

 

 저도 엄마가 보고 싶어서

 

 8.

 

 제가 어릴 적만 해도 저희 할머니가 계셨던 저희 아버지 고향은 굉장한 산골이었어요

 마을버스도 한시간에 한대 밖에 안다니고 그마저도 터미널에 늦게 도착하면 끊겨버리는 산골

 

 어릴 적에 어머니와 할머니댁에 가기 위해 터미널에 도착했는데 시간이 너무 늦어버려서  

 산골길을 걸어갈 수 밖에 없었어요

 

 그때 하늘에 별이 엄청 많아서 저는 별보고 걷느라 신이 났는데

 스산한 바람소리가 들릴 때마다 어머니께서는 깜짝깜짝 놀라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엄마, 무서워?'라고 여쭤봤더니

 어머니께서는 조금 무섭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저는 그때 '아, 어른인 엄마도 무서운 게 있구나'라는 걸  처음 알고 깜짝 놀랐죠

 

 그래서 저는 '내가 노래 불러줄게 무서워하지마'라고 이야기한 후 엄마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며 길을 걸었어요

 

 어제 자기 전에 문득 그 기억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때 엄마 손 잡고 걸으면서 본 밤하늘이 너무너무 예뻤는데

 

 9.

 

 돈을 벌고 돈을 쓰고 술을 마시고 금주를 결심하고

 담배도 태우고 일기도 써보고 항공권을 발권했다가 취소하고

 

 뭐든 다 해봐도 정작 제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해도 아무 것도 하고 싶은 게 없네요 그래서 그냥

 

 하릴없이 지나가는 가을 쳐다볼 수 밖에 비 오는 가을 쳐다보는 수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네요

 

 10.

 

 요즘 다시 자주 술을 마시는데 언젠가 술 때문에 인생을 망쳐버리게 될 것만 같아서 두려워요

 

 이미 술 때문에 지나온 제 인생의 어느 부분이 망가졌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요

 

 11.

 

 오늘은 청소를 좀 해볼 생각이에요 집안을 잘 정리한 뒤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면 기분이 좀 나아질까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요즘 누군가가 죽었다는 기사를 자주 접하는데 그런 글은 잘 읽지를 못하겠어요

 쓸쓸하고 급작스럽게 죽어간 사람이 혹시 저인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에

 

 저는 살아서 이미 죽어버린 것은 아닐까하는 두려움에요

 

 여러분들은 다들 살아계시는 거죠?

 

 12.

 

 저 같지 않고 멋진 듀게회원님들은 모두 마음 속에 밝고 아름다운 것들만 기억하고 담아두면서

 즐거운 한주 맞이하셨으면 좋겠어요

 

 진심으로 그랬으면 합니다 늘 두서없고 우울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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