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화요일도 끝나가는 마당에 주말이나 빨리 왔으면 해서 지난 주말 썰 풀어 봅니다.

1.
토요일엔 홍대에서 친구와 술 약속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번에 듀게에서 어떤 분께서 도나타 벤더스 사진전을 추천해 주셨던 게 생각나서, 일찌감치 나가서 사진전 보고 갔어요.

정말 좋았어요! 도나타 벤더스의 사진들 그 자체로도 매력적이었지만, 남편 빔 벤더스의 '피나'의 연장선 상에서 바라봐도 재밌더라고요(전시 구성이 피나 바우쉬와 부퍼탈 단원들 사진 위주였다 보니...).

빔 벤더스는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흑백을 죽음, 비인간성, 황폐의 이미지로 사용한 바 있는데, 도나타 벤더스에겐 흑백이 오히려 내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장치더군요. 삶, 본질로서의 흑백이었어요. 더불어 빔 벤더스가 '피나'에서 피나가 만든 안무들과 피나의 정신을 이어받은 부퍼탈 단원들의 솔로 댄스들을 3D라는 장치까지 동원해 가며, 인간 내부에서 소용돌이치는, '동'적인 감정의 질곡들을 '동'적인 방식으로 그려냈던 반면, 도나타 벤더스는 흑백 사진 안에 그들의 모습들을 담아 내면서도 사진이 번져 보이는 듯한 효과 등을 이용해서 마치 '정'이 '동'을 끌어안고 있는 것처럼 내부의 감정을 끌어내는 것도 흥미로웠어요.

같은 것을 앞에 두고도 이렇게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는 벤더스 부부의 일상이 어떨지 괜히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리고 괜히 또, 나중에 예술가와 결혼하게 된다면 나는 어떤 결혼 생활을 꾸려 나가게 될까 하는 뻘상상도 해 보았습니다...ㅜ


2.
일요일엔 극장 나들이 가서 '서칭 포 슈가 맨'을 봤습니다. 별 정보 없이 보러 갔고 큰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엄청난 감동을 안고 극장을 나섰습니다ㅜㅜ

로드리게즈라는 라틴계 이름 때문에, 혹은 알 수 없는 그 밖의 이유로 업계 거물들에게 인정받는 음악성에도 불구하고 처참히 망한 채 잊혀져야만 했던 그의 모습에선 음반 산업의 아이러니를 몸소 느꼈어요. 그 뒤로도 아무렇지 않게 막노동판을 전전하면서(그것도 엄청난 자부심과 함께!) 아이들에게 예술의 가치를 알려주며 양육해 온 로드리게즈의 모습에선 보기 드문 현인의 위엄과 위대한 아버지의 모습을 동시에 보기도 했습니다. 어려운 형편에서도 자기 자신의 삶에 자부심을 느끼며 살고, 그 자세를 아이들에게 그대로 물려주는 그 모범적 자세ㅜㅜ 저도 좀 배우고 싶어요...

그렇게 망한 음악이 어떻게 어떻게 남아공으로 흘러가 사회 운동에 힘을 더하며 국민적 사랑을 받은 걸 보면서, 음악이 그 자체로 생명을 가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세상을 바꾸는 음악의 힘에 순수하게 감탄하게 되기도 했어요.

미스테리의 진실을 추적해 가는 듯한 영화의 구성도, 애니메이션 등으로 빈 공간을 메운 시도도 다 맘에 들었어요. 게다가 그 위로 흐르는 로드리게즈의 음악은 어찌나 아름다운지... 98년 남아공 공연 장면에 이르러서는 거의 울 뻔 했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꽤 오래 영화의 잔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어요. 유튜브에서 앨범 곡들을 찾아 듣고, 이 영화를 통해 미국에서 재조명된 뒤로 로드리게즈가 온갖 방송에 출연해 선보인 라이브들도 찾아 보고, 98년 요하네스버그 공연 실황 녹음도 들었습니다. 노래 진짜 좋아요ㅜㅜㅠ

이 영화 벌써부터 극장가에서 슬슬 자취를 감춰 가는 듯 하던데, 내리기 전에 주변 사람들이 많이들 봤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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