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 안느브런 연작

2012.11.06 21:41

lonegunman 조회 수:1285





불면증은 마치 이렇습니다

머릿속에 어떤 방이 있어, 그 안의 사람들이 밤새도록 불을 켜놓고 무언가를 하는 거죠

어떤 때는 온 집안의 가구를 내던지며 고래고래 악을 쓰며 싸우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그저 조용히 누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그렇게 있기도 합니다

어느 때든 그 방안에서 스미는 희미한 불빛은 꺼지지 않습니다

벽을 통해 들리는 바스락거리는 소리, 내내 머릿속 한 켠을 아른거리는 그림자들

가장 고요할 때조차도 그것은 거기에 있는 겁니다, 밤새도록 불을 켜놓고


한 열흘간의 불면증을 거쳐 지난 이틀간 드디어 다섯시간 쯤 자고 나니 온 몸의 세포조차도 그 느낌이 다릅니다

기념으로 (뭘?) 올리는 안느 브런의 연작 뮤비예요

시점을, 관점을 다르게 하면 볼 때마다 다른 내용이 되지만

저는 주로 한 인간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전쟁, 불이 켜져 있는 방같은 것으로 생각하기를 좋아합니다, 아무튼 저는 주로 개인적인 인간이니까요.








언어로, 그녀를 그대 곁에 이끌어

운율로 그녀를 휴식케 하소서

언어로, 그녀를 떠나보내소서

어딘가, 시간의 저 너머로...


언어로, 그녀의 호흡을 잦아들게 하시고

저 마루에 부드러이 그녀를 뉘이소서

그러면 그 자리에 그녀가 머물러

어느 때보다도 귀기울여 들을 것입니다


밤이 오면 그녀의 창을 열어두어

도시의 불빛들이 그녀의 방 안을 채우게 하소서

도시의 그림자가 천장에 메우면

그녀는 마치 사람들이 창 밖에 가득한 듯 느낄 것입니다

그렇게 그녀의 고독을 치유하고

그녀를 편히 잠들게 하소서


나무 아래를 그녀와 함께 걸으소서

존재하지 않는 길로, 존재하지 않는 기억으로

그녀에게 나뭇잎 사이로 스미는 햇살이

어떤 형상으로 빛나는지를 보여주소서


언어로, 그녀의 세상을 변화시키소서

오직 단 한 줄의 문장으로

그녀를 별까지 가닿게 하시고

언제나 오직 사랑만을 제일 처음에 두소서


그리고 밤이 오면 커튼을 열어두어

도시의 불빛이 그녀의 방안을 비추게 하소서

그림자들이 그녀의 천장을 어지럽히면

그녀는 사람들이 창 밖에 가득하다 여길 것입니다

그 그림자들을 사람으로 여길 것입니다

사람으로 여길 것입니다









모든 것엔 시발점이 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로부터 시작되었다

무에선 아무것도 나올 수 없으니

태초에 무언가가 있었다


어디선가 이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이 모든 것을 유발시킨 무언가가 있다

무는 무엇의 시작도 될 수 없으니

태초에 무언가가 존재하였다


태초엔 모든 것이 말라 있었다

그때 한 방울의 이슬이 떨어져 내렸고

떨어지는 방울들이 어느새 비가 되어

마침내 거대한 홍수를 이루었다

홍수

그래, 거대한 홍수를 이루었지


우리는 모두 한 곳에서 왔다

무언가 우릴 촉발시킨 것이 있다

모든 것엔 시초가 있으니

그 하나로부터 우리는 만들어졌다


어디선가 우리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다만 하나였다

무는 유를 창출할 수 없으니

태초에 무언가가 존재하였다


태초의 완전한 침묵 위로

입술을 열고 혀를 움직여 숨을 불어넣은 것이 있으니

그 숨소리로부터 세계는 요동치기 시작하였다

하나, 둘, 셋, 소리가 더해지고

여전히 우린 그 위에 소리를 더하고 있어

더 많이, 얼마든지 더 할 수 있다

더 크게,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

우린 그 이상이므로


먼지가 바위를 만들고

공포가 분노를 만들고

심장박동이 시가 되어

이상은 혁명이 되리라

이상이 혁명을 부르리라

이상이 혁명이 되리라


어디선가 이 모든 게 시작되었다

아주 작은 하나로부터...

모든 것엔 시초가 있는 법

태초에 하나가 있었다

모든 것을 가능케 한 단 하나가








기억하나요, 늦은 아침

침대로 돌아가던 우리 둘을

우리는 세상에 나오던 모습 그대로

완전한 휴식에 빠졌었지요


난 기억합니다, 그때 이미

그것이 마지막이 될 것을 알았고 있었죠

최후로 취해보는 태초의 자세

그대가 내 것인 마지막 순간임을

 

기억합니까, 제가 보여드렸던 상처를

들려드렸던 이야기들을

그대가 진실만을 말할 수 있겠느냐 물을 때마다

몇 번이고 반복했던 '영원히'라는 대답을


기억하십니까,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향한 미소를 잃어갔는지를

서로가 오직 서로를 위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잊어갔는지를


기억하나요, 그 늦은 아침

다시 침대로 돌아가 누웠던 우리 둘을

세상에 나오던 모습 그대로 누워

온 몸의 근육을 쉬었던 그 날을


저는 기억합니다, 그때 이미 저는

그것이 마지막임을 예감했었지요

최후로 잡아보는 최초의 자세

최후로 가져보는 나의 그대








그대는 소중히 하지 않았어

그대의 삶을...

그대는 그대의 삶을 숭배하지 않았지


그대는 소중한 줄을 몰랐지

그대의 삶이...

그대는 인생을 경배하지 않았어


그대는 그저 멈춰선 채로

과거 속에 머물러 있었어

좋은 일들이 벌어지지 못하도록 막았지

좋은 일이 생기더라도, 그대가 온 몸으로 쫓았어

그대를 되돌리려 밝게 빛나는 저 빛이 보이지 않나?

나의 심장박동이 그대에게 빛이 되줄 수도 있어

그저 그 소릴 따라와


그대에겐 인생이 그리도 하찮은가

그대는 인생을 허비해버렸지


그대는 인생의 소중함을 몰랐어

삶을 찬양하지 않았어


그대는 과거에 멈춰선 채

그대로 석상처럼 굳어

다가오는 삶을 외면해버렸어

행운이 다가와도 쫓아버렸지

저 빛이 그대에겐 보이지 않아?

그댈 다시 부르고 있잖아

나의 심장 소리를 듣고 따라와

그게 그댈 구해줄지도 모르니


그 소리들이 그대의 삶을 찬양할 거야 

그대의 삶을 경배할 거야

그들이 그대를 대신해서

그대의 삶을 노래할 거야




words

one

do you remember

worship

all songs from ane brun

translated by lonegun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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