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극장에서 본 네 편의 영화...

2012.11.24 12:00

menaceT 조회 수:1588

1. 늑대소년

'남매의 집'을 재밌게 봤고 '짐승의 끝'은 예고편 보고 기대 많이 하다가 시간이 안 맞아 못 봤었어요. '늑대소년'은 조성희 신작이란 말을 듣고 기대 많이 하다가 최근 평들을 읽고는 '그냥 제낄까...' 하던 중이었어요.

그런데 여자친구가 너무 보고 싶어해서 지난 주에 큰 맘 먹고 보러 갔습니다. 기대감을 미리 많이 낮춰둔 터라 초중반까진 묘한 엇박자 개그에 꽤 웃기도 하면서 재밌게 봤는데... 후반 가서는 많이 힘들었습니다. 특히 그 마지막 에필로그 부분에선 불판 위의 오징어가 된 듯한 기분이었어요. 옆에서 여자친구는 통곡을 하고 있는데 저는 혼자 뚱해 있으려니 그것도 좀 미안하긴 했습니다만...ㅜㅜㅜ

조성희가 애초에 철저한 상업영화를 목표했다 하니 그 목표는 달성한 것 같은데, 이미 이런 류의 영화는 많고 그 중 '늑대소년'보다 잘 빠진 것도 많지 않나요? 굳이 조성희가 자기 고유의 매력을 놓아가면서까지 다른 감독도 만들 수 있는 이런 영화를 만들어야 했나 싶었습니다.


2. 아르고

며칠 전에 뒤늦게 대한극장 가서 봤습니다. 정말 후줄근한 소형관에서 하고 있더군요.

영화는 깔끔하고 좋았어요. 너무 미국 중심주의 아니냐는 말도 있는데, 소재상 이 정도는 어쩔 수 없지 않나 싶기도 하고 영화 스스로도 프롤로그 부분을 통해 나름 공정해 보이려는 시늉은 하던데요... 그래서 저는 크게 거슬리진 않았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 넘쳤어요. 그와는 별개로 가짜 영화와 실제 상황, 그 기저에 깔린 누군가가 또다른 무언가를 연기하는 진짜 영화랄 만한 상황들이 뒤섞인 채 진행되었던 실화를 다시 배우들이 연기해 이 영화가 완성되었고, 다시 그 밖의 현실에서 관객들이 그 영화를 보는... 이런 식의 연쇄로 현실과 영화 사이 경계를 흐리는 듯한 느낌도 좋았어요.

3. 당신은 아직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

어제 오랜만에 광폰지 가서 봤어요. 굉장히 흥미로운 영화였습니다.

영화는 내내 영화 속 세계를 분할시키면서 동시에 이 작업을 영화 밖 현실 세계로까지 확장시켜 현실과 극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그 위에 '에우리디스'라는 극을 더합니다. 극중에서 배우들을 불러모으는 앙투안이라는 인물 자체가 오르페우스가 되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나아가 직접 생과 사를 통과하며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데, 이 질문들이 극중 배우들에 의해 '에우리디스'라는 극이 각각 쪼개져 나온 여러 개의 세계 속에서 다른 판본으로 재연되는 과정에서 공명을 일으키며 확장되고 영화 밖의 실제 공간에까지 뻗쳐 나와요. 영화를 보고 나오는 관객들이 스스로 그 두 질문을 반복케 하는 게 영화의 목적이 아니었나 싶더군요.

4. 라잇 온 미

어제 KU 시네마트랩에서 뒤늦게 보고 왔어요. 굉장히 섬세하게 감정의 결을 따라가는 영화여서 말 그대로 영화에 푹 젖어있다 나왔습니다.

극중에서 폴은 주인공 에릭에게 '너와 어두운 데 있기 싫다'며 '불을 켜 두라'고 말하죠. 원제 'Keep The Lights On'은 그 대사에서 따온 듯 해요. 저는 이 영화 자체가 에릭의 입장이었던 감독이 지나간 옛 사랑, 10년이라는 세월을 관통한 그 사랑에 조심스레 빛을 비춰두기 위한 시도처럼 보였어요. 극중 에릭의 다큐멘터리 작업이 꼭 이 영화를 감독이 만들어가는 작업 과정과 겹쳐 있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고요. 영화의 장면장면마다 '내가 사랑했던, 그러나 끝끝내 알 수 없었던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때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와 나의 관계는 무엇이었을까' 이런 질문들이 조심스럽게 묻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늑대소년'만 별로였고, 나머지 세 편은 참 좋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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