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까지 집근처 카페에서 일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골목길을 지나는데 갑자기 고양이 우는 소리가 크게 들리더라구요. 이어폰을 끼고있었는데도 잘 들릴 정도로요.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니까 구석에 고양이 한마리가 제 쪽을 보고 있었어요. 계속 울면서요.


여기서 잠깐 말씀드릴 것은 저는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없어요. 고양이와 개나 동물을 모두 좋아하긴 하고

어려서 할머니댁에 소, 닭, 개, 고양이, 염소까지 온갖 동물들이 많아서 접한 적은 많지만 같이 오래 집 안에서 살아본 적은 없습니다.

고양이 습성도 잘 모르고 (시골에서 길러서 집 안에서 함께 사는 것 하고는 많이 달랐거든요. 생선 구워먹고 남은 거 준다던지

헛간에 새앙쥐 잡아서 갖고놀라고 준다던지.. 제가 한 번은 멋모르고 새끼고양이한테 좀 큰 새앙쥐를 던져줬다가 새끼고양이는 기절할듯이 놀라고

그 이후로 한참을 원망섞인 눈빛을 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평소에는 길고양이들이 있어도 그냥 지나가곤 했었고요. 그런데 다른 길고양이들이 저를 경계하면서 지나치는 것과 달리

이 고양이는 제 쪽을 뚫어져라 보고있었어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몸을 굽혀서 눈을 맞췄는데

그 순간 고양이가 제 쪽으로 다가오더니 다리에 얼굴을 막 부비는 거에요.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줬더니 이 고양이가 계속 울면서 귀를 납작하게 깔고 

제 주변을 가까이에서 빙빙 돌더라구요. 제가 일어나지도 못할 정도로 몸을 부대끼면서 빙빙 돌다가 제 손이랑 무릎에 얼굴을 부비부비하기를 반복합니다;;

제가 잠시 일어서면(다리가 아파서;) 애처롭게 울면서 저를 쳐다보더니 바닥에서 마치 강아지가 예뻐해달라고 하는 것처럼

발라당 눕더라구요. 그래서 또 만져주면 데굴데굴 구르다가 쳐다보다가 하고요. 


그 때 주인이 있는 고양이인가 하고 자세히 살펴보니까.. 제가 예전에 본 적이 있는 고양이였던 거에요;


작년 초 그러니까 약 2년쯤 전 겨울에 그 골목길에서 약간 떨어진 골목을 밤늦게 지나가는데

고양이들이 싸우는 소리가 나서 들여다보니까 한 꽃집 옆 구석에서 까맣고 큰 고양이가 손바닥만한 새끼고양이를 노려보고 으르렁거리고 있었어요.

새끼고양이는 도망가지도 못하고 벌벌 떠는게 한 눈에도 보였고 큰 고양이는 제 기척을 느끼니까 저랑 새끼고양이를 번갈아서 노려보다가

제가 미처 어떤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큰 고양이가 새끼고양이를 물어뜯어버렸어요.

이 때 엄청 큰 소리가 났는데 주변이 주택가도 아니고 추운 겨울밤이라 길엔 아무도 없었구요.. 

솔직히 말해서 처음 상황파악이 되었을 땐 검은 고양이가 아주 뚱뚱하고 (그런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날렵하더군요; 고양이의 신비..) 

저를 노려보는 눈빛이 아주 사나워서 끼어들기가 무서웠습니다;; (저 이래봬도 어려서는 소싸움도 말렸는데...--;) 

근데 진짜로 달려들어버리니까 갑자기 눈에 뵈는게 없어지더라구요? 저도 모르게 막 소리지르면서 뛰어드니까 검은고양이가 진짜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노란 눈을 빛내면서 캬악 소리를 내더니 금세 도망가버렸어요. 새끼고양이는 한쪽 귀 끝부분만 뜯긴 것 같았는데 사실 이미 몰골이 말이 아니긴 해서

다른 곳도 다쳤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청 마르기도 했구요. 

암튼 걱정이 되어서 어떻게든 하룻밤이라도 집에 데려가고 다음날 동물병원에라도 데려가보려 했는데

제가 구부려앉아서 손을 내미니까 작은 구석으로 휘리릭 들어가버렸어요. 한참 기다렸는데 안나와서 더 기다리지 못하고 집에 들어갔습니다.


근데 그 때 봤던 그 새끼고양이였던 것 같아요. 귀도 한쪽이 잘려있었고 (다 아문 흔적만 있었어요) 

제가 고양이를 잘 몰라서 자세하게 구분은 못하지만 다른 부분은 고동색인데 앞발만 양말 신은 것처럼 흰색이었던 건 기억하고 있었거든요.


아무튼..

한 십분 정도 그러고 있다가.. 결국 그냥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기분이 정말 좋지 않아요. 죄책감이 마구 마구 들어요ㅠㅠ


저는 아직 학생이고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신세. 용돈을 타 쓰진 않지만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하지 못한 상태죠;

그리고 부모님은 동물을 집에 들이는 것을 매우 매우 싫어하세요. 집에 데려갔다간 난리가 날 거고 

(한번은 길잃은 강아지를 집에 데려갔었던적이 있어요. 근데 이 얘기도 기네요ㅠㅠ 생략합니다;;)

주변에 개나 고양이를 기르는 지인이 있다면 도움을 청하 제 주변엔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조차 없고.

게다가 제게 아주 중요한, 지난 9달 동안 준비한 일의 마감이 내일부터 몇 주 동안 있어서 요 며칠은 거의 폐인상태..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하려고 하는데 잘 안되네요.

아마 다른 분이었다면 바로 집에 데려갔거나 어떻게든 방법을 찾았을 것 같고.. 

내일 아침에라도 나가서 동물병원에 데려가야 하나

내일은 스케줄이 완전 꽉 차있는데 하루종일 뛰어다녀도 모자른데

등등 머리속이 복잡합니다 ㅠㅠ

그나마 이런 얘길 할 곳이 여기 뿐이네요;


그래서 결론은.. 없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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