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2012.12.05 23:29

에아렌딜 조회 수:1042

안녕하세요. 타향에 온 지 어느 덧 반년이 다 되어가는 에아렌딜입니다.
햇볕이 불볕같은 계절에 여길 왔었는데 어느 새 창 밖에 눈이 내리는 날씨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계신 곳은 날씨가 어떠신지요? 서울도 많이 춥다고 들었는데 말입니다.
제 고향은 제가 태어나 죽 살았지만 눈이 쌓일 정도로 온 게 10번도 안 되는 곳이었던지라 이곳의 추위가 새삼 뼛속까지 스미는군요. 덜덜덜 ㅠㅠ
여러분 계신 곳은 포근하길 바라며 오늘도 잡문을 써볼까 합니다.


1.
여기 와서 전 지금 참 행복합니다. 물론 좋기만 한 건 아닙니다만...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천치같은 자기 자신에서 벗어나서 조금이나마 어딘가에 보탬이 되고 내 설 자리가 있다는 게 너무나 즐겁습니다. 쾌활한 직장 사람들도 더해서 정말이지 태어나 이렇게 마음이 편했던 적이 있던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여기 와서도 상심하고 울고 했지만 그래도... 지금껏 하루 하루가 가시나무 사이를 걷던 것 같았던 나날을 생각하면 지금은 그저 행복하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어 기쁩니다.
마냥 기쁘기만 하진 않습니다. 제 인생은 슬픔을 겪고, 살다보면 좋은 일도 있겠지 하고 생각하면 그 생각을 비웃듯 더 큰 슬픔이 찾아오곤 했었으니까요. 아주 잠깐 행복하다 싶다가도 그 행복했던 만큼 찾아오는 슬픔은 더 아프곤 했으니까요... 누구의 인생인들 그렇지 않겠습니까마는 지금 이렇게 행복한 나날이 계속될수록 언제 이 행복이 끝나서 고통이 시작될까 하는 생각에 마음 한 구석은 언제나 어둡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행복하니까, 웃어야지요.
그래도 지금은, 올 한해는 꽤 행복했다고 여길 수 있어서 기쁩니다.
제 인생에 이만큼 괜찮았던 해가 있었던가 싶습니다.


2.
여러분은 사랑에 대해 어떻게 여기시나요? 완전히 감정으로만 겪는 사건인가요?
저는 사랑이란 것도 결국 이성이 주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뭔가를 좋게 보기만 하면 다 좋아 보이고, 나쁘게 보기만 하면 끝도 없이 나쁘게 보이는 현상만 봐도 역시 사람은 이성이 주관하는 동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면 그냥 좋게만 보이고, 나쁘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나쁜 점만 눈에 속속 들어오더군요.
이 곳에 와서 누군가에게 반할 뻔한 적이 있습니다. 정말 뭔가가 찌릿 하는 느낌을 받은 건 처음이네요. 사실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이 없어서 이게 반한 것인지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왠지 자꾸 생각이 나더라고요.
왜인지, 너무나 긍정적인 한 마디를 그분이 하셨는데 그 순간 뭔가가 심장을 휙 하고 스쳐간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분은 잘생겼다고 하긴 힘든 외모인데 이상하게 너무 멋있어 보이는 거였어요. 허헛,
살다보니 정말 별 일이 다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살다가 내가 이런 생각을 다 할 때가 있구나... 하고.
하지만 호감은 호감이고 그냥 별 생각 않기로 했습니다. 사랑은 운명이라고 누가 말하던데 전 별로 그렇게까진 생각되지 않는군요...(전세계의 진지하게 사랑하시는 분들께는 죄송합니다만) 어쩌면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멀리하는 제 청개구리 기질 때문일지도 모르지요. 어차피 나를 좋아할 사람이 세상에 있을 리가 없기 때문에 그냥 피식 웃고 말아야겠습니다.
사랑이란 것도 참 사치같네요 저한테는.

3.
으으. 너무너무 춥네요.
이곳 사정이 그리 좋다고는 할 수가 없습니다. 춥지만 난방도 안 들어오고, 온수도 안 나와요. (손님이 투숙할 때만 나오죠) 상사님께서 빌려주신 전기난로가 아니었으면 전 동사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곳은 외딴 마을이라 차가 없고 국제면허도 없는 전 어디 나다니질 못합니다. 장 보러 가는 것도 민폐를 무릅쓰고 직원 분께 부탁해서 2주에 한 번 꼴로 갑니다.
에고, 여러분 해외 사실 때엔 꼭 국제면허를 취득해서 가세요. ㅠㅠ 저같은 꼴 나지 마시고...

해외 사시는 분들 고향이 그리우실 땐 어떡하세요?
전 지금 그저 그리움을 느끼고만 있습니다(외로울 땐 그냥 느끼고 있는다-by 골방환상곡)
흑흑. 사실은 겨울 되면 이곳도 잠시 문을 닫으니 고향에 돌아가려고 생각했었는데... 사장님이 바뀌면서 영업계획도 바뀌어서, 제 휴가는 물 건너 갔습니다. ㅠㅠ 덧붙여 투표 전에 돌아가려고 했는데 투표도 물 건너 갔네요.... 어허허.
음식도 너무너무 그립네요. ㅠㅠ 찜닭이랑 양념통닭이 너무 먹고 싶어요 흐흑...(넵 전 닭고기를 사랑합니다...) 잡채도 먹고 싶고 ㅜㅅㅜ....
고향 집 생각이 나고 어머니랑 오빠도 보고 싶고.... 내 착한 친구도 보고 싶고....
꿈에 자꾸 고향이 보이지만 전 향수만 느끼고 있습니다...


4.
겨울 좋아하시는지요.
전 옛날엔 안 좋아했는데 지금은 조금 좋아합니다.
예전에 제 친구와 나눴던 얘기였어요. 제가 추워서 싫다고 했더니 그 친구는 담담하게, '붕어빵이 맛있어지잖아' 하고 답해줬었죠.
그땐 정말 그 친구의 소박하면서도 긍정적인 면에 새삼 고개를 주억거렸었죠. 전 그 친구의 그런 면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소박하고, 먼 곳에 살지만 날 잊지 않아주고, 힘들다 소리 한 번 안하고, 씨익 웃어주던 친구. 그 친구 덕분에 겨울이 좋아졌어요.
고향 갈 때는 술 좋아하는 그 친구를 위해 일본 소주나 사 들고 가려 했건만.. 흑흑. ㅠㅠ 휴가가 멀어져서 언제쯤 다시 만날지 걱정이네요...
마음도 조금 추워지려 하네요.
쓰고 싶은 말, 하고 싶었던 말은 산더미같이 많았는데... 머리 속에서 뒤엉켜서 하나도 정리가 되질 않네요. 왠지 머리가 멍합니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고마웠다는 말을 하고 싶어지는 밤입니다.
전할 수는 없지만....


듀게 여러분께도, 고마웠습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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