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숲속 사람들

2012.12.13 00:53

흐흐흐 조회 수:1274

빌딩숲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매끈한 피부에 넥타이를 매고 있는 사람도 있고 고운 화장을 하고 단정한 유니폼을 입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구는 또각또각 구둣소리를 내며 어딘가를 바쁘게 걷는가 하면 손목에 찬 시계를 보고는 화들짝 놀라 딱딱딱딱 뛰는 모양새를 내기도 합니다. 식사시간이 되면 삼삼오오 모여 맛있는 밥을 먹지만 그 누구도 큰소리로 웃거나 떠들지는 않습니다. 식사시간이 되면 누군가는 도덕책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를 하며 성인군자인 척 하기도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재미없게 식사시간이 끝납니다. 누구도 행복이나 사랑을 이야기 하지는 않습니다. 빌딩숲은 고요합니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바람소리가 나거나 찬 바람에 옷깃을 여미는 검은옷 사내들의 떨림만이 들릴 뿐입니다. 빌딩숲속의 사무실에서 울려퍼지는 소름끼치는 전화벨 소리나 마우스 클릭하는 소리는 바깥에서는 들을 수 없습니다. 빌딩숲은 바깥에서 보면 참으로 멋있는 곳입니다. 로마에 입성한 검투사들은 콜로세움의 장엄한 모습을 보고 인간의 위대함을 찬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콜로세움에서 잔인하게 죽어가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찬양했던 인간의 위대함을 뒤로한 채. 요즘에는 많은 청년들이 좌절을 한다고 합니다. 검투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데 그것도 쉽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검투사들은 행복이나 사랑을 이야기 하지는 않습니다. 가끔은 죽느냐 사느냐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긴 합니다.
 
오늘은 사람들이 사무실에 앉아 불안해 하였습니다. 사장님이 말씀하길 원래 그 자리는 너희들 자리가 아니고 빌딩 주인 자리인데 회사에서 임대료를 주고 너희들에게 준 자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회사에 도움이 안 될 사람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열심히 일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장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무실에 앉아 불안해 하였습니다. 이곳에서는 법을 어기지만 않는다면 실적이 좋은 사람이 가장 사랑을 받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양심을 팔기도 합니다. 그래도 상관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법을 어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여기선 양심이라는 것에 절대적인 척도란 없습니다. 누군가에겐 양심에 찔리는 일이 또 누군가에겐 아무렇지도 않은 일 일 수 있습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이곳에서는 그 누구도 행복이나 사랑을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양심은 버린지 오래 입니다. 이 곳 빌딩숲에서 가장 양심이 있는 건 배고플 때 구구구구 우는 비둘기 입니다. 빌딩숲에는 먹다만 와플이나 도너츠 조각들이 많아서인지 비둘기들은 평화롭고 양심적으로 사는 것 같습니다.
 
가끔은 [서로 양심도 없는 사람들끼리] 술 한잔 하며 우리가 남이가를 외칩니다. 사장님은 [바람직한 부하직원] 이라는 주제로 열심히 말씀을 하십니다. 모두들 경청하는 듯 보이지만 아무도 귀담아 듣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술자리마다 나오는 이야기지만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나만 안 듣는 것이 아니었구나 라는 것을 증명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건배사는 매번 똑같고 재미 없습니다. 가끔씩 말미를 달리하여 위하여를 세 번 외치기도 하지만 그게 한 번이든 세 번이든 다섯 번이든 상관은 없습니다. 짝수이면 상관이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전부터 한 번도 없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장님은 예전에 없었던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집에 들어와 강철로 곱게 만들어진 가면을 벗었습니다. 가면에는 오늘 누군가가 나에게 휘두른 칼자국이 몇 개 있었습니다. 철갑에 윤기를 낸다는 값비싼 기름을 칠해 보지만 그것이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닦아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밤을 새 닦을까도 생각해보지만 그러기엔 너무나 어두운 밤입니다. 주렁주렁 달려 있는 별들이 깊은 밤이 왔음을 알려줍니다. 사람들은 오늘도 사랑과 행복을 이야기 하지 못했습니다. 내일이 되면 참새가 울고 푸르른 아침이 올 것입니다. 조용한 빌딩숲으로 사람들이 몰려올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졸린 표정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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