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회복을 위해 영화를 봤는데, 다크나이트였습니다. 


볼 때마다 주의깊에 보는 장면이 있는데, 막판에 조커가 시민들이 탄 배, 죄수들이 탄 배 두 개 띄워놓고 먼저 스위치 누르는 쪽만 살려준다고 하는 부분입니다.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그런 상황을 가정했다는 것 자체가 유치하다는 생각에서, 또 이어지는 상황이 현실의 군중들의 행동과 괴리가 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특별히 집중해서 보게 됩니다. 


모르죠. 평균적인 미국의 시민들은 영화에서처럼 그렇게 행동할지도.




1. 

전 정말 박근혜당선인이 뽑힐 거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독재자의 딸'이라는 단 하나의 타이틀만으로도 다른 네거티브가 필요 없을 정도고, 대한민국 국민 가운데에서 대통령 피선거권이 있는 사람 가운데에서 가장 네거티브에 취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가족, 재산, 능력 등등 모든 면에서요.


결과를 보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으로서의 결격사유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 건가 싶어서 다시 한 번 충격이었습니다.




2.

문재인의원이 후보가 되고 언론에 노출빈도가 높아지던 시기에 작은 우려가 생기더군요. 


대화와 타협, 통합 등의 가치를 강조하면서, 또 네거티브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고 실제로 끝까지 그런 자세를 유지하는 것을 보면서 걱정스러웠던 게, 대통령이 되어서 상대진영에 너무 끌려다니게 되지 않을까,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강력한 리더십을 보이기에는 너무 온유한 사람이 아닌가라는 것이었습니다.




3.

문재인대통령이 제대로 정국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일단 검찰을 휘어잡고, 그동안 쌓이고 쌓인 권력형비리, 언론비리, 재벌비리를 집권초기에 확실히 정리하고, 보궐선거를 통해 새누리당의 과반의석을 무너뜨리지 않으면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정권에서 법과 절차가 망가진 정도가 너무 심각하다는 생각에, 마치 프랑스의 드골처럼 정계를 휘어잡고 정치지형을 기초부터 다시 쌓아주길 바랐습니다.




4.

비판할 거리가 너무 많아서 뭘 먼저 내세워야 할지 고민스러운 분이 당선인이 된 걸 보고, 많은 분들이 여러 가지 분석을 하십니다. 


그중에 '보수는 하나만 잘 하면 되고, 진보는 하나라도 잘못하면 안된다'는 소리가 특별히 남습니다.




5.

이틀 사이에 넷상에 적극적으로 당선인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소위 SNS학원 수강생이라는 분들의 고삐가 풀렸기 때문일 수도 있겠죠. 그게 아니라면, 이전엔 침묵하던 당선인 지지자들이 당당하게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왜 전엔 조용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적극적으로 나섰을까... 자신과 같은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이 소수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겠죠. 


일베 이전과 이후가 다르듯, 이번 대선 이전과 이후도 많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특히 인터넷 커뮤니티가요.




6.

대선 전에는 제 목소리를 내지 않던 사람들이 대선이라는 계기를 갖고 달라졌다. 일베 전에는 제 목소리를 내지 않던 사람들이 일베라는 계기를 갖고 달라졌다... 그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선 왜 이전에 제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가부터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 그 이유가 부끄러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재니 인권이니 공공의 선이니 하는 것들엔 무관심하고, 직접적인 이해가 얽힌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생각... 이게 부끄러운 생각이라는 걸 은연중에라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독재정권에 의해 개발이익을 본 대부분의 사람들도 독재가 나쁘다는 것 알고있고, 독재에 의한 피해자에 대한 연민이 전혀 없지 않을 겁니다. 다만, 자신의 이해가 거기에 앞서는 거죠. 그들이 얻은, 혹은 기대하는 이익이라는 게 허수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그게 낯 모르는 이들의 피해보다 더 가치있는 겁니다. 낯 모르는 이들의 피해는 쉽게 부정하고 회피할 수 있기도 하죠.




7.

이번 대선 결과에 이정희의원이 한몫 했다는 평도 있습니다. 맞는 말일 수도 있죠.


하지만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팟캐스트에 당선인에 대한 네거티브성 음원들 많죠. 그것들이 공중파에서 제대로 방송이 됐어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전 오히려... 제대로, 지독한 네거티브전으로 갔으면 과연 당선인이 버틸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8.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누구나 이기심도 있고, 염치도 있죠. 물론, 이성의 영역을 벗어난 감성도 있습니다.


공주마마를 받들어야 한다는 노예근성, 불쌍하다는 감정 등등은 물론, 당선인을 지지하는 게 자신의 이해에 맞다는 계산적인 생각 등등도 모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지지하는 게 도리에 벗어난다는 판단을 하게 되면 주저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9.

모을 수 있는 만큼, 그 한계까지 모았다면, 이제 저쪽을 깎아낼 수밖에 없지 않나요? 


회유할 수 없다면, 차마 부끄러워서 지지한다는 소리를 낼 수 없게라도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10.

어쨌거나, 국민 다수의 생각이, 이번 대선을 계기로 바뀔 것 같습니다.


자신만 이기적이고 몰염치한 게 아니라, 과반수의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요.


이번 대선을 계기로, 좀더 황당하고, 아전인수의 괴이한 논리가 합리화 되는 꼴을 훨씬 더 많이 접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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