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의 웃음 코드라는게...

2013.01.20 10:43

turtlebig 조회 수:4799

본방 놓쳐서 다시보기로 봤는데 밑의 글에서 '무도의 포인트를 몰라서 재미가 없다'라는 댓글 기억나서 유심히 봤습니다

저야 무도가 스튜디오 들어간 이후로 (군대시절 빼면) 거의 한번도 빼지않고 본방사수한 무도빠라 이번 회도 깔깔 웃으면서 보긴 했는데...

확실히 '왜 재밌는지 모르겠다'라는 다른 극단에서의 반응이 나오는게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물론 이번회는 기획 자체가 별로 재밌는 기획은 아니었습니다만

그냥 채널 죽죽 돌리다가 딱 걸려서 봤을때(=저같은 충성파 시청자나 무도코드에 익숙한 시청자가 아닐 때) 바로 눈길을 사로잡긴 힘든 모습이 되긴 한거 같아요.

초창기의 목욕탕 물퍼내기같은 어처구니없는 도전 컨셉이나 스튜디오에 앉아서 거꾸로 말해요 게임할때는 그냥 그 자체로 웃길 수가 있었죠. 좀더 원초적이잖아요

워낙 고정멤버로 오래 한 방송이기도 하고 또 고정된 포맷없이 여러가지 기획을 시도하는 프로그램이다보니 이게 매회가 독립되서 그 한회로 완결된 웃음을 추구하기보단

계속해서 이어지는 스토리와 맥락 안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뻔하고 다들 하는 얘기지만..;

어찌보면 생판 안보다가 갑자기 봤을때 따라잡거나 적응하기가 연속극 드라마보다 훨씬 더 힘이 들게 되버렸어요.

연기자들의 캐릭터라는게 '박명수=호통' '하하=어린애' '정준하=눈치없는 바보형' 이런 식의 단순한 도식이던 시절보다 더 복잡해졌거든요.

이번회는 토론이라 초반 20분 빼면 전부가 멤버들이 주고받는 토크로 채워졌는데, 그냥 그 멘트 자체가 재밌는건 아닙니다.

이 상황에선 이 연기자가 저 연기자를 향해 이러저러한 말을 하고, 그 말을 들은 저 연기자는 이러저러한 반응을 하는데 주변의 다른 멤버들은 와 하면서 이러저러한 반응을 한다

그 자체는 (무도를 처음 보는 사람이라고 가정할때) 솔직히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그냥 난잡하고 시끄러울 뿐이죠.

1박2일을 강호동 하차이후 한참을 안봐서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여튼 그 시절 1박2일은 이미 그때도 무도보다 더 대중적(?)이고 쉬웠어요.

연기자들의 캐릭터의 도식이 무도 초창기처럼 단순한 형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거든요. 여행가면서 이런저런 게임을 하고 경치놓은데서 하룻밤 자고 온다, 라는 포맷을 끌고 간것도 있겠지만

그냥 그 한편을 보더라도 아하하 쟤들 하는 짓이 웃기다 하고 볼 수가 있는거죠.

무도는 지난 몇년간 그랬고 또 갈수록 더욱, 연기자들이 자기들이 축적해온 스토리 내지 맥락을 자기 몸에 익혀서 그게 앉은뱅이 토크든 잠시 지나가는 잡담이든 심지어 각잡고 하는 도전이든 언제 어디에서든 그 안에서 말하고 행동합니다. 근데 거기에 무도를 봐온 시청자들도 적응을 해버려서 (적어도 이 안에서는) 서로 불편을 못느끼는거에요. '저기서 유재석이 왜 저 멘트를 하지?' '왜 저기서 정형돈이 뚱한 표정을 짓지?' 이런걸 설명할 필요가 없는거죠. 만약 '저 장면은 말이야 XX회에서 이런 일이 있었는데...'라는 설명이 필요하다면 이미 그건 재미를 느끼는데 실패한 거에요.

아예 작정하고 몇회를 레슬링이니 조정이니 하는걸로 채워버리면 좀 나아집니다. 무포맷이 포맷이라는 무도에서 일정한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는 꽤 뚜렷한 그림이 잡히니까요.

헌데 (아마도)저같은 충성파들이 오히려 그런 대기획보다 더 선호하고 즐거워하는 멤버들끼리 투닥투닥 잡담하는 장면들에선 그렇지가 않죠. 사실 무도코드를 아는 사람들은 일곱명이 한줄로 죽 서 있거나 둥글게 앉은 전경이 화면에 뜨는 순간 이미 반쯤은 웃기 시작하고 어떤 기대감을 갖고 시작합니다. 굉장히 오랜 시간동안 축적된 음..뭐랄까 공유하는 코드? 맥락이 있으니 어떤 말을 해도 그 자리에서 만담이나 꽁트가 되는거죠. 물론 연기자들과 그걸 이해하는 시청자들 사이에서만 통하는. 재료는 풍부하게 준비되있으니 그걸 쓰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무도의 독특한 점이라면 아무래도 한때 예능프로그램으로 30% 시청률까지 찍는 정점을 누렸고 또 장수프로그램이며 매우 2030 취향의 감각적인 프로그램이다보니, 매니악해서 도태된다 의 길을 가긴 커녕 충성도 높은 시청자수가 많아서 오히려 계속 존속할 수 있었다..라는 것이겠죠.

이게 옳다 그르다 말하는건 어불성설인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무도가 바뀔 수도 없어요. 그러러면 연기자를 바꿔야 합니다. 그럼 그건 이미 무도가 아니게되죠. 스타킹에서 MC가 강호동이 아니어도 (프로그램의 재미가 떨어질지언정) 스타킹이 스타킹이 아니게 되는건 아니죠. 그건 심지어 1박2일에서도 마찬가지일겁니다. 그런데 무도는 딜레마에요. 한두명이 드나들수는 있겠지만, 연기자들까지 프로그램 안에서 결합이 되어버렸거든요. 지금의 연기자 진용을 포기할 수 없으면 지금의 컨셉도 바꿀수가 없어요. 그냥 계속 이대로 가는 수밖에요.(물론 저는 전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무도같은 프로그램이 계속 있어줘서 나쁠게 없다, 있어서 참 좋다 라는 쪽입니다. 뭐 '그딴게 뭐가 재밌냐'라는 (꼭 악질 안티가 아니더라도) 순수한 의문을 제기하는 분도 많지만, 이미 이 프로가 갖는 의미가 너무 커져버린 시청자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정확히 무슨 수업인지는 기억이 안나는데 여튼 법학부 수업에서 강의하는 교수님이 (그때 한창 파업중) '무도를 몇주째 못봤더니 우울증 걸리겠어'라고 했던게 기억이 납니다. 뭐 막상 지난해 그 파업때는 몇주는 커녕 몇달을 못봐도 막상 견딜만 하다는걸 깨닫긴 했지만...-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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