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의심

2013.01.26 23:24

에아렌딜 조회 수:1930

언제나 그렇듯 우울함 반의 사소한 일상 이야기입니다.

싫으신 분은 스킵을 부탁드려요.



1.

안녕하세요.

오늘 이곳엔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제가 태어나 살던 도시는 눈이 거의 안 오는 곳이었어요. 

그래서 여기 와서 눈바람이 몰아치는 걸 보고 살다살다 이런 걸 다 보는  날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주 고운 입자의 눈이 바람에 휩쓸리면서 우쭐우쭐 춤추는 걸 보고 있자니 꼭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여럿 군무를 추는 것 같았습니다.


눈이 와서 많이 춥네요.......





2.

지금 몸이 좀 아픕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마법에 걸렸기 때문이죠. 


옛날에는 배만 아팠는데 지금은 이 시기만 되면 한달치 피로가 몽땅 닥쳐오는 것처럼 온몸이 쑤시고 저리고 힘이 안 들어갑니다.

마치 누군가가 온몸을 걸레 비틀어 짜듯 힘이 쭈우욱 빠져나가는 느낌이죠. 이럴  때면 정말 꼼짝을 하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미묘하게 짜증이 나기 시작하죠. 평상시였으면 그냥 들어넘길 말도 하나하나 신경을 건드려요.


몸이 아프지만 직장에 일손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그냥 쉬지 않기로 했습니다. 

물론 쉰다고 해서 들어줬을지는 의문이지만...

아플 때면 온갖 생각이 다 나죠. 

무엇보다 아플 때 자기 자신은 혼자란 것을 절감해요.

누구도 신경써주지 않고, 걱정해주지 않는 순간만큼 자기 자신이 혼자란 것을 뼈저리게 자각할 때가 있을까요.

사실 제 인생의 대부분은 죽 그런 상태지만... 아플 때조차도 누가 신경써주는 일이 없다는 것이 왜 그렇게 힘이 드는지 모르겠어요.

오랜 시간 외로움에 시달려왔고 이제 그 외로움에 길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여전히 아프네요. 



괜히 자꾸 속만 상합니다.

어느 분께 '생리통 때문에 아프다'고 했더니 '생리통은 병이 아니야'라는 말이 돌아와서 울컥하고... 

자꾸만 화가 나려 해요.


무엇보다 괴로운 건 의심이죠.

내가 이곳 사람들을 좋게 생각하는 건, 그냥 내가 이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믿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은 이곳 사람들도 별로 좋은 사람이 아닌데 내가 그냥 좋게 생각하려고만 하니까 그런 것이고...실제로는 내가 지금껏 보아온 날 경멸하고 내가 혐오했던 사람들과 다른 게 없는 게 아닐까...

사실은 이곳 사람들도 날 싫어하고 있지만 겉으론 전혀 내색하지 않고 웃는 얼굴을 꾸미고 있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면 또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하죠.


뭐가 진짜인지 모르겠어요.

내게 진짜를 구분할 힘이 없는지도 모르죠.

진실을 안다고 꼭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가끔 내 주변의 모든 게 다 내가 보길 원한 허상이었고 모든 게 거짓이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찢어질 것 같습니다.


미치도록 울고 또 울던 시간이 생각나요..


그럴 때면 애써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하죠.

하지만 생각하지 않는다고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닐텐데, 난 정말 잘하고 있는 걸까요.....?





3.

월급이 나왔지만 한국돈 백만원도 안 됩니다....

갑자기 또 울컥하네요.

월급은 줄었는데 일은 더 늘어났고, 하루 10시간 넘게 일할 때도 있지만 추가수당은 커녕 매일매일 욕만 푸지게 먹고.

이러면서 꼭 이 직장을 다녀야 하나 하는 회의감이 들어요. 


이곳에 오기 전부터 각오는 했었어요.

일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힘들 것이고, 급여는 쥐꼬리만하겠지만 그래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단 나을 거라고 자신을 추스리곤 했었죠.

힘들고 슬펐을 때, 그래도 자기 자신으로써 버텨나가기 위해 살아가기 위해, 무엇이라도 도전해보자고 마음을 먹고 떠나온 타향이었어요.


하지만... 정말이지 매일매일 감정 상하는 일의 반복이니, 정말 견디기가 힘이 드네요.

대체 왜 하루가 멀다하고 욕을 처먹고 기분나쁜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4.

지나간 글에 자기 자신을 아끼는 법에 대한 게 있었죠.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도 자기 자신에 대해선 단점도 혐오스런 부분도 너무나 잘 알죠. 만약 저와 똑닮은 타인이 나타난다면 굉장히 혐오할 거에요 분명.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더 이상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기로 한 건...

내가 외톨이이기 때문이죠.

세상 모두가 등 돌린 것 같은 외로운 땅에 혼자 서 있는 자신을,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 매일 누군가의 비난을 받으며 사는 것 같은 자신을.... 다른 사람은 모두가 욕하더라도 나만은 나 자신을 지켜주기로 타협을 했어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죠.

죄책감이나 자괴감은 아직도 남아있지만... 적어도 지금은 자기 자신을 향해 화를 내기보다는, 무덤덤한 시선으로 나를 용서해줄 수 있을 만큼 뻔뻔해졌기 때문일까요.






피곤해서 무슨 말을 쓰고 있는지 헷갈리네요.....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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