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친구 없어 고민이라는 분 글 보고 생각났어요.

저도 친구가 별로 없거든요.

사실 친구가 없지는 않아요- 한때는, 많았던 것 같아요.

 

유전적 성향이 내향이다 외향이다를 따지기 전에

전 어릴 때 친구 사귀는 게 정말 어려웠어요.

여차저차한 이유가 있었는데, 이 글에서는 중요하지 않으니 다 접어 두고

어쨌든 어릴 때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자연스럽게 습득하지 못했어요.

 

잠시 다른 얘기를 해볼게요.

전 어릴 때 피아노를 시작했어요.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보니 일종의 성실성인데

어쨌든 5살때부터 19살때까지 레슨을 받았어요. 개인레슨. 연습도 많이 했지요.

 

지금은 거의 피아노를 치지 않지만,

연습을 좀 하면 예전처럼 손가락은 빠르게 움직여요.

어릴 때 배워서 그런지, 몸으로 배워서 그런지 쉬어도 잊혀지지 않아요.

 

그런 것들이 몇 가지 있어요-

 

그런데 친구 사귀는 것,

인간관계를 해나가는 것-

 

이 중요한 것들을

어릴 때 몸으로 습득하지 못했어요. 어려웠고, 어려워서 그런지 자꾸 다른 것들로 도망갔어요.

 

스무 살이 넘어서야 문제를 깨달았고

저의 이십대는 대부분-

이 인간관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쳐졌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친해지는구나.

이렇게 말하는구나.

어떻게 해야겠다.

 

저도 이론으로는 알아요.

타인에게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대하는 것.

그리하면 싸가지없는(?) 행동조차 진짜 친구가 되는 길이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런데 저한테 인간관계라는 건

피아노처럼 자연스럽게, 몸으로 익힌 게 아니거든요.

늘 자의식이 들어가 있었고,

음, 인간관계에서 참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친구 많았어요.

이십대에는요.

 

어느 순간 돌이켜보니

친구도 많고 아는 사람도 꽤 많고

필요할 때 도와줄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도 되어있었고.

주변에 사람이 많구나. 행복해지기도 했고.

 

그런데 막상 나는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연애를 하게 되고,

내밀한 관계를 갖게 되고,

억지로 뭔가를 하지 않게 되고,

온전히 내가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하게 되고...

 

그러면서

무리한 것들을 그만두기 시작했어요.

연락을 먼저 하지 않고,

억지로 웃지 않고,

나의 까칠한 기준을 포기하지 않고...

 

그래서 누군가는 그랬어요. 안경이가 연애를 하더니 변했어!!!라고...

결과론적으로는 사실인데, 친구보다 애인이 중요해서 그랬던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뭐 어쨌든 그게 사실이죠 뭐. ^^

 

그래서 지금은

친구가 많이 없어졌어요.

 

몇명만. 남은것. 같아요.

 

그래서 가끔은... 이게 아닌데, 내가 뭘 잘못했을까

내가 무리해야만 친구가 생기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해요.

 

어릴 때 배워놓지 않아서

어른 되어 배우니 내내 낯설고 어색한 학습 과목 같은 느낌.

 

배워서, 생각해서 하니까 더 안되는 건가 -_-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요.

 

하지만 지금은 그냥 생각해요.

무리하지 않고,

내가 무리하지 않아도 되는 몇 명의 친구들을 소중하게 여기겠다고요.

그리고 그 몇 명의 친구들은,

저처럼 친구 사귀는 데 서툰 사람들이에요.

 

그저 서로의 서툶을 알아보고

서툴게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과의 관계가 마음이 편해요.

 

친구 사귀는 게 어려우면 어때요.

서툴면 어때요.

그 서툶을 서로 예쁘게 봐줄 수 있는 사람들끼리

예쁘게 친구가 될 수 있는 걸요.

 

(주의 - 진짜 친해지는 데까지 몇년 걸릴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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