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9.03 16:30
1.
어제 비빔밥을 점심으로 먹었어요. 비빔밥 위에는 작은 김가루들이 잔뜩 얹어져 있었구요.
그런데 아주 작은 검정색의 무엇인가가 비빔밥을 비비는 도중에 비빔밥 위로 살포시 떨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첫 느낌은 "이것은 벌레인가?" 였지만 "아! 이건 김가루야!"라고 스스로에게 강하게 주장하며
벌레에 대한 생각을 분산시키기 위해 숟가락에 있는 힘껏 힘을 주어 그 검정 물질을 꾹꾹 짓이기고 비벼대며 그렇게 행동했어요.
그냥 그게 벌레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지쳐있는 상태였거든요. 게다가 깨끗한 음식점이어서 벌레라고 잘 생각되지도 않았구요.
그런데 막 맛있게 비빔밥을 반쯤 먹고 난 후에 제 밥그릇 주변에 날아다니는 작은 검정 날파리를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전 벌레를 비벼 먹었을지도 몰라요. 비위 상하지 않았었다고 생각해요. 작은 벌레니까요. 하지만 그 날파리를 본 순간 숟가락을 놓아야 했던 것은 사실이에요.
2.
제가 자주 가는 커피숍이 있어요. 다 좋은데 불만이 있다면요,
커피를 만드시는 분이 두 분이 계신데 한 분은 아이스 모카를 시키면 우유를 컵의 삼분의 이 가량 정확히 부어주시는데
다른 한 분은 컵의 중간에서 삼분의 이 사이의 중간 지점까지밖에 우유를 안 부어 주세요. 저 우유 좋아하거든요.
게다가 상식적인(2/3 가량의) 우유의 양은 아이스 모카 주문의 당위성과도 관련이 있어요 저에겐요.
그래서 그 조금밖에 우유를 넣어주지 않는 분이 저의 아이스 모카를 만들어 주시면 항상 우유를 넣으시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이렇게 외치곤 했어요. 그리고 매번 마음 아파했어요.
그런데 이젠 지쳤어요. 어제는 아이스 모카를 시키면서 그 우유 조금 넣어주시는 분이 우유를 넣으실 때
일부러 쳐다보지 않았어요. 네. 저는 현실로부터 도피한거예요.
도피해서 다다른 곳에 낙원은 없다고 하는데, 앞으로도 이런 행동 패턴을 보이게 될까봐 걱정이에요.
3.
아픈 진실에 잘 대면하시는 편이신가요?
저는 근본적으로는 잘 대면하지 못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그 아픈 진실을 왜곡하는 능력이 매우 발달했다고 생각해요.
특히 저는 스스로 왜곡하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왜곡도 사고 방식의 독특한 유형 중 하나야. 그 왜곡의 존재를 완전히 인정하고 있어, 난" 이라고 생각하며
대놓고 왜곡을 해요. 저같은 분 있으신가요? 네, 아마도 없는 게 정상일 거예요.
어쨌든 아픈 진실을 잘 대면하는 방법 같은 게 있으시면 공유 좀 해보았으면 좋겠어요.
2010.09.03 16:33
2010.09.03 16:58
2010.09.03 18:17
2010.09.03 2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