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많은 것들에 별 흥미가 없어요. (제가 잘하는 말이긴 합니다..) 흥미없이 지내는 날들이라서 극장에 간지도 꽤 되었죠. 보고 싶은 영화도 별로 없고 별로인 영화를 보러 시간을 소비하기도 싫고. 그래도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퍼스널 쇼퍼'가 동네극장에 개봉했길래 모처럼 주말에 보러 갔습니다. 간만에 보고 싶은 영화였죠. 아무 정보는 없이 크리스틴 스튜어트 주연에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영화라는 것 정도만 알았죠. 영화 '클린'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냥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이라면 구미가 좀 당기죠.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영화였습니다. 우디 앨런의 '까페 소사이어티'에서보다 살을 뺀 크리스틴 스튜어트 얼굴은 또 달라보이더군요. 다른 매력이 있었습니다. 영화의 '모호함'이 흥미롭긴 했는데 기대했던 이야기도 아니었고 기대에도 미치지 못했어요. 영화가 형편없었다는 건 아니고 흥미롭긴 했지만 그냥 그 정도였고 보다가 지루할 때도 있었단 소리죠. 그래도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호텔방에 들어가서 영화가 끝날 때까지는 재미있었어요.


그 주에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를 봤어요. 여기에도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나오는데 이 영화에선 제법 살을 찌웠더군요. 연이어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보다보니 체중 변화가 얼마나 사람 얼굴을 달라보이게 하는지 눈여겨보게 되더군요. 뭘 어떻게 해도 예쁘긴 예뻐요. 안경을 쓰고 비서역할을 하는데 제법 잘 어울렸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퍼스널쇼퍼'보다 더 재미있었습니다. 젊은 시절, 자신에게 성공을 안겨줬던 그 배역의 나이든 상대배역을 이제 나이 들어 해야 하는 줄리엣 비노쉬가 생전 처음 눈이 갔습니다. 고통이 밴 나이든 눈이 아주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전에는 아름답다고 느낀 적이 없어서요. 물론 영화의 분위기는 그렇게까지 진지하진 않고 좀 투덜투덜, 가볍기도 했습니다만.


영화를 보다가 잠깐 화장실에 가는데 문득 '내가 어디에 있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공간에 대해서라면 아주 잘 알겠는데, 시간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 우스운게 어렸을 때는 어디에 있는지가 거의 장소와 관련된 문제였는데 이제는 거의 시간에 관련된 문제가 되었더군요. 그리고 항상 제가 어디쯤에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안다고 생각했을 때도 몰랐고 모른다고 생각했을 때는 정말 깜깜했다가 지금은 그런 걸 아는게 가능한가 싶기까지 합니다. 내 나이를 안다고 내가 어디쯤 있는지 아는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아무튼 그런 생각이 문득 든 것은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를 봤기 때문이겠죠. 실스마리아의 구름, 말로야의 스네이크라는 구름을 보는게 좋더군요. 자연풍경과 대기현상은 늘 신비롭고 구름을 보는 일은 지겹지가 않은데 말로야의 스네이크는 보통 구름이 아니긴 하더군요.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얼마 전의 어떤 순간이 떠올랐어요. 점심 먹고 잡담 하던 때였는데 직장에서 은퇴가 몇 년 남지 않은 상사 분은 문득 종교가 필요해지는 시점이 당신 나이 즈음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저 나름대로 아 나이 먹으니 나한테도 흥미가 없고 남한테도 흥미가 없어지고 얼굴은 전만 못하고 손에 쥔 건 아무것도 없는데 나이는 먹었고 나와 동류를 찾기도 힘들고 여러 모로 삶이 어려워지는 시점인데 갈 길은 멀다 등등으로 투덜투덜대는 상태인데 그냥 고개가 수그려지더군요. 아이 키우며 시어른 모시고 가정 건사에 직장 생활하며 젊은 시절을 보내고 나이 든 여자 어른의 마음이란 제가 아직 알지 못하는 마음이니까요. '악 얼굴도 전만 못하고 가끔 우울해요' 식의 제 투정에 그 분은 제 맘 안다고 하던데 저는 그 분 맘을 다 모르니...


수다 떠는 기분으로 글을 쓰다 보니 너무 늦었네요. 그래서 이만 씁니다.


안개가 걷히는가 싶으면 다시 안개 같은 느낌, 구름은 그 나름대로 형상을 만들며 그 때 그 때 흘러가죠. 그런 걸 보여주고 싶었던 영화라고 보니까 재미있었어요. 그 때마다 고통스럽고, 고통의 빛이 달라지긴 하겠지만, 아마도 그런 거겠구나, 하고... 요즘의 제가 보기 좋았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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