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3년작이니까 27년 묵은 영화네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당시 홍콩 인기작들을 물리치고 이 영화가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다는 게 신기하지만, 암튼 스포일러는 없게 적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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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제목은 적각'소자'였나봅니다. 뭐 영어 제목도 베어풋 '키드'이긴 해요)



 - 배경은 '옛날 중국'입니다. 구체적인 시기나 배경은 없었던 것 같구요. 사실 그런 게 중요한 이야기도 아니구요.

 암튼 영화가 시작되면 동글동글 강아지 같은 인상의 곽부성이 이마에 '나는 천진난만한 어린이와 같다!!!'고 써붙이고 다니며 여기저기 쿵쿵 부딪히면서 몸개그를 선사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연히 장만옥도 만나고 오천련도 만나고... 하다가 최종적으로 적룡을 만나죠. 

 곽부성은 군인이었다가 비참한 말로를 맞은 아버지에게서 시골에 처박혀 무술만 배운, 자기 이름도 못 쓰지만 겁나게 싸움 잘 하면서 정신연령은 초딩이고 마음은 참 순수하다... 는 일본 만화 주인공 같은 스펙의 주인공이구요. 아버지가 자기가 죽으면 자신의 옛 동료였던 적룡에게 찾아가 도와달라 그러라고 했었나봐요. 그리고 그 적룡은 과거를 숨긴 채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비법 염료로 잘 나가는 직물 공장 주인 장만옥을 도우며 살고 있구요. 우연히 마주쳤던 오천련은 그 동네 최고 지식인이자 마을 훈장 노릇을 하고 있는 아저씨네 딸이자 본인도 서당(?) 선생입니다. 

 그런데 이 동네를 장악하고 있는 포악한 조폭 집단 하나가 장만옥네 직물 공장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게 문제이고. 싸움만 잘 했지 그 외엔 그냥 멍충멍충 어린이 수준인 우리의 주인공 곽부성군이 자꾸만 본의가 아니게 사고를 치면서 이야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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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똘망똘망 귀여운 곽부성씨! '사실상 바보' 연기가 의외로 되게 잘 어울립니다. ㅋㅋㅋ)



 - 런닝타임이 무려 80분대(!!)입니다. 한 시간 반도 안 되는 거죠.

 근데 다 보고 나면 한 두 시간짜리 영화를 본 듯한 기분입니다. 지루한 게 아니라, 전개가 엄청 빨라서요. 다다다다 계속해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인물들이 변하고 상황이 변하고 그러는데 그 와중에 할 건 다 하고 리듬을 적절하게 맞춰내는 게 신기할 정도. 아니 보통 영화들이 끝나기 한 20분 전에는 이제 그냥 클라이막스 제시 & 마무리 모드 아닙니까? 근데 이 영환 그 후에도 참 일이 많이도 일어나요. 보다가 남은 시간 확인하고 신기했던. ㅋㅋㅋ



 - 그리고 살짝 잡탕 영화입니다. 코믹한 소년 활극처럼 시작했다가 멜로로 갔다가, 어두컴컴한 스릴러 요소도 가볍지 않게 녹아 있고 막판엔 비장미 좔좔 흐르는 정통 무협물로 가죠. 두기봉에 대한 평들을 보면 '건조한 느와르물로 유명하지만 원래는 아무거나 되는대로 다 만들면서 다 잘 만들던 사람'이란 얘기들이 많은데, 이 영화로 대충 증명이 됩니다. 80분이라는 시간의 한계상 이 장르 저 장르가 조금씩 조금씩 들어가 섞여 있는데 각 부분부분이 다 생각보다 탄탄하고 괜찮아요. 게다가 그게 또 자연스럽게 이어 붙여져 있구요. 물론 90년대 홍콩영화스럽게 나이브하고 천진난만한 전개가 많긴 합니다만, 이게 93년 홍콩 영화이니 그게 흠은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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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청련이냐 오천련이냐!! 예쁘냐 안 예쁘냐!! 등등 숱한 논란(?)의 주인공이었던 오천련씨. 풋풋합니다! ㅋㅋ)


 

 - 근데 사실 이게 막 되게 훌륭한 영화냐... 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애매하네요.

 아마 이 영화의 첫 10분과 끝 10분을 이어서 본다면 그냥 아예 다른 영화로 보일 거에요. 그만큼 톤이 급격하게 오락가락하는데, 그걸 자연스럽게 붙여 놓은 감독의 역량은 인정해야겠지만 끝까지 재밌게 보고 나서 전 좀 사기 당한 기분(?)이 들었거든요. 아니 이런 식으로 끝낼 거면 시작은 왜 그런 식으로 한 거야. 정신 없이 마구 달려대는 통에 속아버렸네... 이런 기분. ㅋㅋ 

 재미가 없었단 얘기가 아닙니다. 캐릭터나 스토리가 개연성이 없다는 것도 아니구요. 그저 정말로 예상을 못한 방식의 결말이어서... 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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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분을 보고 '추룡'이란 이름을 먼저 떠올리신다면 저보다 더한 탑골 멤버...)



 - 암튼 뭐 더 길게 얘기할만한 건 없네요.

 두기봉의 필모그래피에서 특별히 대단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 일은 영원히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그 양반의 능력에 대한 증빙 자료는 될 수 있을 영화입니다. 액션은 화려하고 멋지고 캐릭터들도 매력이 있고, 어두컴컴하고 비열 음침한 분위기부터 천진난만한 코미디물, 애틋한 멜로, 비장한 무협 영웅들의 이야기까지 다양한 톤의 소재들을 모두 고퀄로 구현해서 80여분 동안 내던져대니 그 시절 홍콩 영화들 많이 본 분들이라면 누구나 재밌게 보실 거에요.

 덤으로 추억의 홍콩 스타들이 다들 뽀송뽀송하고 풋풋한 모습으로 나와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니 뭐. 탑골 회원 분들이라면 한 번 시도해보실만 합니다.

 아주 재밌게 봤어요.




 + 주인공들 중 장만옥의 사진을 아직 안 올린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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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로 찬양하기 위함이었습니다. ㅋㅋㅋㅋ 조금 더 나이 먹고 원숙해진 후의 아름다움도 멋졌지만 이렇게 젊고 풋풋하던 시절도 참으로 아름다우신.

 당시에 친구들과 '홍콩은 그 작은 나라에 왜 그렇게 예쁜 여자랑 잘 생긴 남자가 많을까?' 같은 대화를 쓸 데 없이 진지하게 하던 기억이 떠올랐네요.

 연기도 좋았어요. 흔한 '무술은 못하지만 당차고 강한' 조연 여성 캐릭터였는데 존재감이 워낙 강해서 있어 보이더라구요.



 ++ 두기봉이 미장센도 참 잘 꾸미는 사람이다... 는 생각은 전부터 해왔지만 지금껏 제가 봐 온 팍팍한 도시 느와르물과 전혀 다른 풍의 영화를 보니 또 다르게 와닿더군요. 장만옥과 적룡의 데이트 장면 같은 건 정말 화사하면서도 차분하고 슬프게 예쁘더라구요 화면이.



 +++ 오천련과 곽부성의 투샷을 보면서 ? 하고 찾아봤더니... 오천련 키가 168, 곽부성 키가 172네요. 오천련이 그렇게 큰 줄 몰랐고 곽부성 키가 그만큼인 줄도 몰랐습니다. ㅋㅋ 특히 곽부성은 비율이 좋아서 그런지 당연히 180 넘을 줄 알았는데, 영화에서 둘이 키가 비슷해 보이더라구요.



 ++++ 두기봉은 맥거핀스런 소재를 활용하는 전개를 좋아하나 봅니다. 초반에 의미 깊고 중요하게 폼 잡으며 등장하는 소재(이자 주인공들의 목표물)가 후반에 가면 별 의미 없어지는 식의 전개가 많아요. 의도적으로 관객들의 주의를 다른 데로 끌려고 하는 것 같지는 않고, 걍 언제나 '목표 달성'보다는 그저 주인공들, 특히 주인공 집단들간의 상호 작용과 드라마 쪽에 중점을 두고 목적이나 결과 자체는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생각해보면 이 영화도 흐릿하게나마 요즘 두기봉의 이야기 스타일이 들어 있습니다. 반목하는 집단이 나오고, 인물들, 집단들간의 관계가 수시로 변화하구요. 스포일러는 빼고 얘기하자면... '아버지가 남긴 물건'이 막판에 아무 의미 없는 것도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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