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말 감독의 <연인들>은 하룻밤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여자는 남편의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해 불행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어떤 남자를 만나요. 


처음에 여자와 남자는 서로에게 특별히 끌리는 것 같지도 않고 그저 잠깐 만났다 헤어질 사이로 보이는데 


어떤 사정으로 남자가 여자의 집에 하룻밤 손님으로 머물게 됩니다. 


그 밤에 여자는 답답한지 술 한 잔 들고 산책을 나가고, 역시 혼자서 술 한 잔 하고 있던 남자는 여자의 모습을 보고 따라나갑니다.  


(이하 내용에는 결말이 포함되어 있어서 마우스로 긁어야 보여요.) 


그들은 온밤을 함께 숲속을 걸어다니고 보트를 타고 하염없이 강물을 따라가며 서로를 만지고 쓰다듬고 마치 영원과 같은 하룻밤을 보냅니다. 


순식간에 열병 같은 사랑에 빠진 남자와 여자는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고 확신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집을 떠나죠. 


그런데 밝은 대낮에 자동차 옆에 있는 남자를 보며 여자는 벌써 자신의 감정을 의심합니다. 


남자도 자신의 감정을 확신하는 것 같진 않아요. 어둠이 걷히고 아침이 밝아올 때부터 남자의 얼굴에선 망설임이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끝나는 영화예요.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사랑이, 혹은 상대의 사랑이, 시간에 의해 보증되지 않는다면 진실한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하죠. 


순간의 욕망에 눈이 멀었던 거라고, 그 순간의 감정은 진짜가 아니었다고, 한순간 홀렸던 자신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내 감정의 배신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마치 상대방을 계속 사랑하는 것처럼 자신의 감정을 속이기도 하고 


상대방의 식어버린 마음을 보며 그 사람이 자신을 속였다고 미워하고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하는 자신을 학대하기도 합니다. 


영원 같았던 순간의 기억이 생생할수록 그것이 더 이상 사실이 아님을 깨닫는 순간의 고통은 클 수밖에 없죠. 


그런데 시간 속에서 지속되는 사랑만이 진실한 사랑일까, 아무 증인도 없고 상대방조차 부인하더라도, 어쩌면 나 자신조차


그 모든 감정을 부인하더라도, 그 순간 내가 느꼈고 상대방이 느낀다고 믿었던 그 감정이 진실일 수는 없을까 생각해 봅니다. 


여자와 남자가 함께 보낸 그 하룻밤에 대해 평가하는 주체는 이미 그 순간의 여자와 남자가 아닌 시간이 흐른 후의 여자와 남자입니다. 


몇 시간이 지난 후 여자와 남자는 그 지나간 시간 속의 자신의 감정과 상대의 감정을, 현재의 자신의 시각으로 해석합니다.  


현재의 시각으로 과거의 경험을, 감정을 해석할 수는 있겠지만 그 해석이 진실이라는 보장은 없죠. 


우리는 지나간 순간의 자신의 감정이, 혹은 상대의 감정이 진짜였는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확인하려 들지만 


자신의 긍정이나 부정도, 상대방의 긍정이나 부정도, 진실을 밝히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는 못합니다. 


여자와 남자, 그 자신들의 해석조차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 순간 자신이 느꼈던 감정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밝혀줄 수는 없어요. 


꿈결 같았던 순간이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슬프지만 지속되지 않기 때문에 그 순간의 감정을 거짓으로 단정하고 


자신을 책망하고 괴롭힐 필요도, 상대방을 원망하고 비난할 필요도 없죠. 


그저 자신이 저지른 행동과 그 행동이 야기한 결과를 감당하며 살면 됩니다. (아래는 역시 마우스로 긁어야...) 


여자는 버리고 온 아이를 아마 다시 만나기 힘들겠지요. 다시 만나도 아마 그 아이와의 관계를 회복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삶의 순간 순간 자신이 진실이라고 믿은 것에 충실하게 행동했다면, 그 진실이 시간이 흘러 스스로에게 혹은 상대방에게, 


혹은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거짓으로 해석되더라도 그 누구의 해석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지나간 그 순간을 거짓으로 만들 수는 없어요. 


다만 그 순간의 감정을 거짓으로 기억시킬 수 있을 뿐입니다.  


시간 속에서 지속되지 않은 그 감정을, 적어도 그 순간에는 진실하고 아름다웠던 것으로 기억하느냐, 스스로와 상대를 기만했던 


나약하고 어리석었던 것으로 기억하느냐는 각자의 해석과 가치관에 따른 것이겠죠. 


누구도 그 감정의 진실을 밝힐 수는 없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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