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희는 말다툼을 좀 했습니다.

저는 저녁에 회식이 있어서 중국집엘 갔어요. 

공금으로 회식이라 평소와는 달리 제법 여러 접시가 순차로 나오는 음식을 먹었겠지요.

다른 분은 회사에서 야근을 하다가 잠깐 쉬면서 전화를 했습니다.

저녁은 뭐 먹었어? 하는데 짜장면 짬뽕 먹은 게 아니니 대답하기가 애매해서 우물쭈물하고 있으려니

왜 대답을 안 해? 하고 재차 묻습니다. 

얼른 그냥 중국집 갔다 했으면 간단했을 것을, 말을 못 하고 우물거리고 있으니 저쪽에서는 계속 답답해 하고

저는 별 일 아닌 게 괜히 어떤 거창한 것이 되어버린 느낌에 더 우물쭈물하게 되었지요.

어쩐지 중국집이란 단어가 목구멍으로 나오질 않더라고요. 

중국집이 뭐에요. 중국집이. 그럼 일본집도 있고 미국집도 있어야죠!! 

그랬더니 바쁜 중에 잠깐 짬 내서 전화했는데 답답하게 그런다고 언성이 높아지는데

나는 나대로 전화해가지고는 윽박지르기만 하고, 그럴 거면 뭐하러 전화했냐 싶어서 억울하고 분하고

뭐 그랬단 말입니다. 


밤에 만나서 그 이야기를 다시 나누는데

이야기의 결론인 즉, 저는 비속어는 물론이고 유희어 종류도, 입밖으로 꺼내어 말하는 걸 굉장히 꺼리는 사람입니다.

사전이나 책(어른들이 그런 책 보지 마라 하실 만화책/가벼운 소설 제외한 진지한 텍스트)에 나오지 않는 말을 글로 쓸 수는 있어도

직접 말로 하는 건 너무 어려운 거에요.

어렸을 때 책 보느라 또래 친구들이랑 어울려 논 경험이 적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어원도 불분명하고 뜻도 없는 유희어들 있잖아요. 고무줄 놀이 하면서 부르는 정체불명의 노래들

각종 동요에 개사해서 부르는 비속어 섞인 노래라든지

손 내밀어 편가르기 할 때, 둘씩 짝 이뤄 노래 맞춰서 율동하는 '쎄쎄쎄' 같은 거

혹은 당시 유행하던 CF나 개그프로그램에 나오는 유행어, 만화영화 주제가

이런 거 어린 마음에 너무 유치하고 싫었거든요. 


만난지 얼마 안 되어서 아직 서로에게 지금처럼 익숙해지지 않았을 때

'묵찌빠' 놀이를 안 해준다고 되게 삐친 적이 있어요. 

손동작 까지는 흉내내서 할 수 있는데

'묵, 찌, 빠' 이 세 단어가 입밖으로 도저히 안 뱉어지는 걸 어떻게 해요.

지금은 아 원래 그런 여자구나 하고 이해해줘서 다행히, 절대 안 시키더라고요. 가끔 놀릴 때 빼고

그치만 그때는 그런 걸 못 하는 사람이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해본 적 없대요.

어떻게 그렇게 좋아한다고 매달리면서 이거 하나를 못 해주나 싶어서 너무 서러웠대요.

근데 그런 거 못 하는 사람도 있다고요. 진심으로


또 하필 이분은 그런 유치한 온갖 것에 굉장히 긍정적인 사람이에요. 

그냥 그런 것도 있지 정도가 아니라 유치함의 가치를 굉장히 긍정해요. 

어제 들은 말 중에는 뭐 '본능적이고 직설적인 표현?'이라나? 

하기야 샤이니나 fx 노래 가사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분이시니 -_-;

제 기준에서는 그게 더 이상한 거지만, 또 그냥 내가 이런 것처럼 저 사람은 저런다 하고 말지요.


웃긴 게 스무살 넘어 인터넷에 빠지고는 인터넷 용어는 곧잘 써요. 

특히 제가 속한 특정 집단의 언어는 입밖으로 꺼내기가 어렵지 않죠.

그냥 어렸을 때의 습관에 아직도 영향을 받는 가봐요. 

어떤 심리로 이런 건지 모르겠어요. 

가끔은 가게 이름이나 브랜드 명 같은 걸 말하기가 어려워서 누가 그때 거기 이름이 뭐였지? 하면

이름은 잘 모르는데 어디어디 있는 곳이야 라고 대답해요.

주로 민망하고 낯부끄러운 종류의 감정인데

사실 제가 붙인 이름도 아니고 그게 저한테 민망함을 안겨줄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도 그런 기분이 들어요.


그분은 저보고 허영심이래요. 그럴싸해보이는 말만 하려고 하는 허영심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보통 기준으로 보기에 제가 이상한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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