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작이구요. 런닝타임은 90분. 제목에도 적었듯이 '피그'가 아니라 '피기' 입니다. 장르는 아래 포스터 이미지를 보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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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 제목 텍스트 색깔까지... 아주 작정을 한 포스터로군요. ㅋㅋㅋ)



 - 스페인 영화니까 배경도 스페인. 주민들끼리 서로 다 알고 지내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 '사라'라는 소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고등학생인 듯 한데 학교 가는 건 안 나와요. 암튼 살이 많이 찐 체격 때문에 동네 또래들에게 돼지라고 놀림 받으며 사는 서러운 청춘입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살을 빼려는 의지를 보이거나 그런 건 아니고... 그냥저냥 자포자기 모드로 살아요. 그 와중에 원래는 절친이었던 친구마저도 자길 놀리고 괴롭히는 패거리들과 어울려 다닌다는 게 마음의 상처이긴 하네요.


 그러던 어느 날, 마을 수영장이 텅 빈 틈을 타서 홀로 한적하게 수영을 즐기고 싶었던 사라는 재수 없게 거기서 또래 패거리들을 딱! 마주치는 바람에 평소보다도 훠얼씬 격한, 경찰에 신고하면 감옥에라도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괴롭힘을 당하구요. 세상 무너지는 슬픔과 설움에 꺼이꺼이 통곡을 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수상한 밴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밴의 뒷유리로 방금 전에 자길 괴롭혔던 녀석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발버둥치는 모습이 보여요. 그리고 그 순간, 차를 운전하던 남자가 문을 열고서는 정말 뜻밖의 행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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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생 전 사라의 모습입니다. 머리는 실수로 들어간 게 아니라 입에 물고 씹는 버릇이 있는 듯.)



 - 확실히 스페인 사람들은 뭔가 과감하단 말입니다? 뚱뚱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는 거야 그걸 놀리려는 의도가 아닌 이상에야 아무 문제가 없겠습니다만. 그 영화의 제목을 '꿀돼지'라고 붙여 놓는 건 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은데요. ㅋㅋㅋ 스페인 국내용 포스터를 보면 더욱 과감합니다. 한국 극장에는 절대 못 붙여 놓을 포스터인데...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의도는 매우 선량한 의도이고 영화에서도 혹시라도 주인공의 몸을 웃음거리처럼 묘사하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합니다. 관심 끌려고 논란 될만한 독한 설정 밀고 나가는 영화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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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사람들이 사라의 몸을 갖고 놀려대는 장면들은 여러 번 나옵니다만. 그것도 초반에 몰아서 독하게 해치우고 넘어갑니다.)



 -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면 좀 애매한 기분이 드는 것이. 제목과 포스터를 저렇게 만들어 놓고 이야기 속에서도 그런 부분을 활용해서 사건을 만들어냅니다만. 또 막상 그 소재, 그러니까 비만인 여성에 대한 현실 사회의 시선이라든가... 를 그렇게 열심히 집중적으로 파지는 않아요. 말하자면 그냥 주인공에게 컴플렉스가 하나 있으면 되는 것이고, 그게 무엇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거죠. 우리 사라는 살이 엄청 찐 사람이지만 그냥 날씬한 몸에다가 심한 화상 흔적을 붙이든 거대한 반점을 붙이든 영화의 스토리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거에요. 


 그래서 다시 한 번, 그렇담 왜 굳이 이런 소재를 골랐지? 라고 생각하다가... 기본 정보를 검색해보니 감독님이 전에 만든 13분짜리 단편이 있었네요. 제목도 같고 배우도 같고 내용도 영화 속의 어떤 장면과 거의 컷 바이 컷 수준으로 똑같습니다. 그걸 보니 수수께끼가 좀 풀리는 기분. 그러니까 이게 원래 단편용 아이디어였고, 그걸 장편용으로 확장시키면서 '뚱뚱함'이라는 설정이 조금 덜 중요해진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만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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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에요. 감독님 왜 살 안 찌셨는데요. ㅋㅋㅋ)



 - 발상이 재밌습니다. 그러니까 사라의 동네 지인들('친구'는 아니니까!)을 잡아가는 무시무시한 아저씨는 당연히 사이코 연쇄 살인마입니다. 그런데 이 놈이 사라를 이해하고 지지해주는 유일한 사람인 거죠. 도입부 요약에서 '남자가 문을 열고서는...' 뭘 하냐면요, 그 개념과 인성을 상실한 나아쁜 놈들이 훔쳐간 사라의 가방과 옷을 돌려줍니다. 게다가 직접적으로 제시되진 않지만 애초에 이 아저씨가 그 놈들을 붙잡아다 죽이기로 작정한 것도 아마 사라를 놀려대는 걸 목격해서인 것 같구요.

 이걸로 끝이 아닙니다. 이후에도 이 사이코는 사라의 주위를 맴돌며 자꾸만 도움을 줘요. 보다 보면 결과론적으로 이 사이코는 사라에겐 최소 백마 탄 왕자님, 혹은 키다리 아저씨와 같은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게 또 연출자의 의도 그대로인 게 맞아요. 참 어처구니 없게 재밌는 상황이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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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지어 로맨틱합니.......)



 - 상황이 이러니 사라는 계속해서 고뇌의 바다를 헤엄쳐야 합니다. 일단 폭력은 나쁘고 납치도 정말 나쁘고 살인도 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 격하게 많이 나쁘죠. 하지만 방금 전에 정말로 아무런 이유 없이 자길 조롱하고 놀리다 수영장에서 익사 시킬 뻔 했던 재수 없는 녀석들보다 이 아저씨가 더 나쁠 건 뭐랍니까. 심지어 마을 사람들 모두가 무관심 하거나 조롱하고 괴롭히기만 하는 자신에게 상냥하게, 로맨틱하게 대해주기까지 하는 유일한 사람인데요.


 그래서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살인마나 유괴 같은 게 아니라 사라의 번뇌입니다. 처음에 고민고민하다 결국 경찰에 신고를 안 해 버림으로써 곤경에 빠지고. 그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뭔가를 열심히 하다가 마을 사람들에게 발각당할 위기에 빠지고, 그럴 때마다 칼타이밍으로 백마의 기사가 나타나서 구해주는데 그게 연쇄 살인마이니 사라가 번뇌를 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ㅋㅋ 실제로 영화의 클라이막스 장면을 장식하는 것도 액션보다 사라의 결단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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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코에게 끌리는 사라의 심정을 뒷받침해주기 위해 마을 사람들은 거의가 진상으로 묘사됩니다. 나아쁜 놈들!)



 - 여성 감독이 직접 쓰고 연출한 영화이고 이야기도 거의 여성 캐릭터들 위주로 흘러가구요. 거기에다가 여성의 외모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을 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여성 서사 호러들의 스타일과는 살짝 다른 느낌을 줍니다. 간단히 말하면 주제나 메시지보단 캐릭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영화에요.

 처음엔 메시지 생각을 하면서 보다 보니 '이런 장면은 왜 들어갈까', '요 설정은 좀 사족 아닌가'. 이런 생각이 자꾸 들었는데요. 다 보고 나서 생각을 가다듬어 보니 그렇더라구요. 메시지 전달의 측면에서 본다면 좀 쌩뚱맞은 구석이 있지만 캐릭터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전혀 쌩뚱맞지 않은 이야기였고 적절한 결말이었다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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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훈남 캐릭터도 그렇습니다. 어찌보면 잉여인데, 영화의 컨셉 자체가 사라 과몰입이라는 걸 생각하면 또 끄덕끄덕.)



 - 은근 이야기가 자유롭게 지 멋대로 흐르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코미디였다가, 10대들의 따돌림 & 괴롭힘을 소재로 하는 아주 살벌한 드라마였다가, 훈훈한 가족 드라마 느낌도 풍기고 그러다가 문득 호러로 흘러가기도 하구요. 근데 그 부분부분들이 썩 괜찮습니다. 웃길 땐 웃기고, 빡칠 땐 빡치고. 긴장해야할 땐 긴장감도 적절하게 잘 뽑아냈구요. 게다가 이런 식으로 분위기 전환이 이루어질 때마다 저절로 이야기에 집중을 하게 되기 때문에 어지간해선 심심하게 보기는 힘든 영화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재밌어요.


 그리고 주연 배우님이 참 좋습니다. 찾아보니 영화를 위해 조금 더 찌우긴 했을지는 몰라도 평소에도 비슷한 몸매로 살아가시는 분 같은데. 좋은 캐릭터를 훌륭한 연기로 잘 살려 주십니다. 어벙벙 갑갑할 때도 많은 캐릭터인데 영화 보다 보면 참 귀엽고 짠하고 정들어요. 어차피 캐릭터 스터디스런 컨셉의 영화이니 참 다행인 일이라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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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연 배우님 평상시(?) 모습 되시겠습니다.)



 - 대충 마무리를 하자면...

 짐작하시겠지만 호러가 강하진 않습니다. 도입부와 클라이막스를 제외하곤 딱히 호러라고 느낄만한 장면이 별로 없고요. 하지만 가끔 그런 게 나올 땐 또 잘 하는 편이었습니다.

 뭣보다 주인공 사라의 드라마가 꽤 공들여 만들어진 느낌으로 재밌는 가운데 배우님도 참 잘 해주셔서 몰입도 잘 되구요.

 게다가 감독님 성향이 그러신지, 배우의 몸매를 다루든 폭력을 다루든 간에 보기 힘들고 고통스러운 걸 직접적으로 막 보여주는 식의 연출이 거의 없어서 좋더라구요.

 그러니 평소와 다른 맛의 호러/스릴러 영화가 땡기시거나, 혹은 좀 독특한 여성 서사 드라마를 보고픈 분들이라면 한 번 봐도 큰 실망은 안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재밌게 잘 봤어요.




 + 원작이 되는 단편 영화가 유튜브에 고화질로 올라와 있더라구요.



 한글 자막은 없지만 영어 자막이 나오니 자막 켜고 보셔도 되고. 사실 대사 못 알아들어도 내용 이해에 별 지장은 없습니다. 



 ++ 근데 우리 주인공 배우님 나이를 찾아보니 만 36세... 고등학생 역이었는데!!! ㅋㅋㅋㅋㅋ



 +++ 사라 엄마로 나온 분이 참 익숙하고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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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본 스페인 영화들에 굉장히 높은 확률로 출동하세요. ㅋㅋ 찾아보니 출연작이 70여편을 훌쩍 넘기는 경력자시니 그럴 만도 하네요.

 올해로 환갑 되셨습니다.



 ++++ 스포일러 구간입니다.


 사라가 처음 밴에 잡혀가는 친구(?)들을 발견했을 땐 아저씨가 무서워서, 게다가 상냥하게 해주니 그냥 넘어갔죠. 그러고 집에 가선 생각하면 할 수록 그 놈들이 자신에게 한 짓이 용서가 안 돼서 바로 신고를 안 했구요. 그러다 엉겹결에 경찰에게 다그침을 당하고 거짓말을 해 버리면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리고 내내 노심초사 합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은 물론 부모까지도 사라에게 별 보탬이 안 되는 존재라는 게 조금씩 풀려나오고 그 와중에 사이코님은 참 낭만적이다 싶을 정도로 사라에게 집착을 하며 접근해요. 그러다 난데 없이 잡혀간 아이들 중 한 명의 남자 친구가 사라와 살짝 '잘 되려나!!?' 싶은 분위기의 사건을 벌입니다만 잠시 후 본인이 위험해지니 바로 사라를 팔아 버리는 찌질한 녀석... ㅠㅜ 하지만 본인이 얘기한대로 자기 아빠에게 신나게 얻어 터진 얼굴로 지나가며 슬퍼하는 걸 보니 악의는 없었던 것 같구요. 


 암튼 그렇게 사라가 번뇌를 이어가던 와중에 드디어 사이코가 집으로 쳐들어 와서 아빠랑 엄마를 반죽음을 만들어 놓고 사라를 잡아갑니다. 하지만 사라도 그렇게 싫지는 않은 듯한 분위기로 따라가는데, 어찌저찌 하다가 교통 사고가 나서 기절했던 사라가 정신을 차린 곳은 외딴 곳의 창고. 사이코님께선 사라를 묶지도 않고 고이 소중하게 눕혀 놓은 채로 뭔가 볼 일을 해결하러 밖에 나간 상태이고, 창고를 둘러보던 사라는 자기를 가장 괴롭히던 나쁜 x & 예전 절친이 그곳에 결박되어 있는 걸 발견합니다. 그리고 얘네를 풀어주려고 분주히 애를 쓰지만 금방 사이코가 들이닥치고. 이후는 뭐 대략 전형적인 스릴러 클라이막스에요. 한참 찐하게 술래잡기, 격투를 벌이고 결론은 사라 win.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이코가 죽어 버렸네요. 본인이 한 짓이지만 막상 죽어 버린 사이코를 보니 또 서러워진 사라는 절규하며 살아 있는 그 나쁜 x들을 향해 총을 한 방씩 갈깁니다.


 그러고 포스터의 장면이 나와요. 사이코의 피로 목욕을 한 상태로 넋 놓고 도로 위를 타박타박 걸어 귀가하는 사라. 저 멀리서 나타난 오토바이에는 아까 그 착한 찌질남이 타고 있었고 사라를 발견한 그 녀석은 엄청 걱정하고 달래주며 오토바이 뒤에 태웁니다. 둘이 탄 오토바이가 마을을 향하는 모습을 원경으로 조그맣게, 한참 비춰주면서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 창고에 묶여 있던 두 녀석, 안 죽었습니다. ㅋㅋ 그 장면에선 마치 갸들에게 총을 쏜 것처럼 연출하고 직접적으론 안 보여줬거든요. 오토바이 마주치는 장면에서 교차 편집으로 보여주는데, 사라가 쏜 건 이 녀석들을 묶고 있던 밧줄이었습니다. 참 보살이 따로 없죠. 이 녀석들 사라가 자기들 밧줄 풀어주려 할 때도 조급해지니 사라에게 막말하고 그랬거든요. 뭐 결국 둘 중 한 놈은 사이코님께서 칼침 한 번 맞았고, 다른 한 놈은 오발된 총알에 맞아 손모가지가 날아갔으니 그걸로 된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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