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듀게에 새로이 가입하고 나서 '아이를 왜 낳는걸까요'라는 글을 첫번째던가 두번째로 올렸던 기억이 나는데,

그 글이 무색하게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생겼고,

임신 초기 우울증을 거쳐 어느새 8개월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임신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 생생합니다.

제가 그 때 얼마나 우울이 깊었던가 하면,

그때에는 외국에 살고 있었는데 전철 안이나 거리에서 아기들을 마주쳐도

전혀 예뻐보이지가 않는 거였어요.

원래 저는 아기들을 귀여워하는 편인데도 말이죠.

게다가 외국 아기들이 또 인형처럼 예쁘죠. 그런데도 그 애들이 하나도 안 예뻤어요.

작은 일에도 울며 보채고, 돌봐줘야 할 사람(부모)의 무한책임을 요구하는 하나의 생명체로 보일 뿐이었습니다.

물끄러미 아기들을 응시하면서 '저런 생명을 나도 키워야 한다는 말인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화로 친구에게 울면서 말한 적도 있어요. 어떡하냐고, 나 이제 길거리의 아기조차 예뻐보이지 않는다고.

 

이런 상태가 영영갈 줄 알았는데,

다행히 임신 8개월이 된 지금은 아기들이 다 예뻐보입니다. 저의 정상적인 시각(?)을 회복한 듯 싶어요.

듀게의 귀여운 아기들을 보아도 웃음이 나오고, 바탕화면에 예쁜 아기 사진을 깔아놓고 이 아기 닮은 아이가 나왔으면, 하고 바라기도 합니다.

천만다행한 일이지요.

아마도 출산을 대비해 한국으로 돌아와, 신체적으로 한결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는 덕을 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그럼에도 저는 무조건적으로 아이를 위해서 희생한다, 잘 되지 않는 육아방법도 부모 자신과 아이 양 쪽 다 괴롭히면서까지

시행해야 한다는 육아법에는 아직도 회의가 있습니다.

특히 엄마라면 모성애는 필수, 라고 생각하는 분위기에는 절로 반항하는 마음마저 듭니다.

모성애라는 것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고, 아이를 기르면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육아실용서보다는 육아심리학에 관한 책을 더 많이 읽게 됩니다.

그 중에 하나가 EBS에서 다큐멘터리로도 방영했던 <마더쇼크>인데요,

 

 

이제껏 해본 적 없는 육아에 짓눌리면서도 아내로서 집안일까지 요구받는 상황에서 엄마가 얼마나 힘들어질 수 있나를 보여주는

챕터가 있었습니다.

그에 대한 치유의 방법으로 엄마, 아빠(남편), 아기의 장점 50가지를 적어보는 것도 있었는데요.

사실 '자기 자신의 장점 적어보기'는 이밖에도 여러 곳에서 마음치유의 한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는 듯합니다.

아기야 아직 태어나지 않았고, 나중에 아기 키우느라 정신없을 때 나 자신의 장점은 물론이고 남편의 장점이 생각이나 날까(...)싶어서

미리 여유있을 때 적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혹시 이 비슷한 일을 해보신 분들도 느끼셨을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나의 장점'(자뻑)이라고는 하나 10개도 아니고 50개를 적는 것은 고역이더군요.

장점을 뭉뚱그리지 않고 샅샅이 헤쳐서 하나하나 적어보는데도

20개를 넘기니 '이제 뭘 쓰나' 란 생각이 절로 듭니다.

게다가 나 자신을 칭찬하는 일보다는 질책하는 일에 익숙한 부정적 인간이라서인지,

장점을 쓰는 동안에도 '난 고집이 세잖아' '대신 난 게으르잖아' 등 저의 단점도 잇따라 떠오르더군요.

 

저의 장점 중에는 이런 것들이 있었습니다.

 

11. 작은 것에도 주목하여 그만의 고유가치를 찾아낸다. (그런데 이런 장점은 듀게의 많은 분들도 가지고 계실 듯해요)

...

30.아이에게 놀이도구를 직접 만들어 줄 수 있다 (그럼에도 저의 고질적인 단점, '게으르다' 와 맞물려

인형 만들 재료도 다 준비해 놓고 하나도 만들지 않고 있습니다)

...

34.길눈이 밝다( 현실에서는 별로 큰 쓰임이 없는 장점인데, 이거 하나는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

37.무탈이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기고, 그에 감사할 줄 안다.

(이건 장점이자 단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남들이 다 누리는 일상의 평온함도 하나하나 다 허들처럼 생각되더군요.

실제로 그 허들을 뜻하지 않게 넘지 못하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도 주위에 많으니까요.

그래서인지 무슨 일이든 하나하나 지나치게 걱정하고, 잘 되어가면 무한 감사해 합니다.

일상에 감사할 줄 아는 건 좋은데, 제 자신이 너무 피곤합니다. 매번 모든 일마다 걱정을 곁들이는 저를 보고 남편도 가족들도 조금은 지쳐하더군요.)

 

 

자기 자신의 장점을 쓰기도 이렇게 힘들거늘

남편의 장점을 50개 채우는 일이야말로 고역입니다.

나 자신의 장점은 소위 '자뻑' 심리로라도 꾸역꾸역 쓰겠는데...

그래도 10개나 쓸 수 있을까-_-;라고 생각한 처음과는 달리, 쓰려니까 제법 쓸 거리가 있더군요.

이런 것들까지 장점으로 끌어들이니 제법 쓸 게 생겼습니다.

 

1.섹시하다 ( 뷁 대뜸 1번부터)

...

5.취미가 단순하다(TV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사람입니다. 같이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편합니다. TV만 틀어주어도 되니까.)

...

 

20. 마음먹으면 글씨도 잘 쓴다.(저는 글씨 잘 쓰는 사람, 특히 글씨 잘 쓰는 남자에 약합니다.

심지어 글씨 잘 쓰고 그림 잘 그린다는 이유만으로 정준하가 순식간에 좋아졌습니다.)

 

21.큰 볼일을 잘 보며, 나보다 비위가 강하다.

(저보고 X도 못싸는 여자라고 놀립니다-_-; 저는 이상하게 남편과 함께 있는 주말에는 큰볼일을 잘 못봅니다. 꼭 부끄러워서가 아니고요, 뭔가 거북함을 타나봐요.

그에 비해 남편은 규칙적으로 부드럽게(...) 참 잘 내보냅니다.)

 

 

23. 가구를 조립할 줄 안다(쓰다 보니 이런것도...)

...

26.임신한 아내와 외식할 때는 음식을 양보하려고 한다.

(이거 외국에서 살 때는 꽤 중요합니다. 외식비가 엄청 비싼 곳에서 살았거든요. 게다가 남편은 엄청 잘 먹는 사람이고요.

자기 먹을 것을 저에게 양보하며 "이것밖에 내가 해 줄게 없다" 라고 말할 때, 저는 오랫만에 사랑받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아직까지 제 장점은 40개밖에(아니 40개 '씩이나' 일지도), 남편의 장점은 30개밖에 채우지 못했습니다.

여러분도 자기 자신의 장점을 한번 써보세요,50개까지 쓰려면 내 장점 쓰는 건데도 점점 힘들어지는 걸 느끼실겁니다.

(아니, 의외로 50개쯤이야! 가뜬히 채우는 분들도 많으실지도 :-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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