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어체로 씁니다.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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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 영화를 화두에 올리면 젊은 시절의 사카모토 류이치가 얼마나 풋풋했으며 연기가 어설펐는지, 혹은 젊음이 아직 가시지 않은 데이빗 보위가 얼마나 매혹적이었는지부터 이야기하려는 사람들이 분명 많을 것이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두 사람 다 아주 전문적인 영화배우는 아니고 음악계에서 한 획을 그은 거장들이며 그런 사람들이 영화 속 주연배우로 연기를 하는 것은 충분한 이야깃거리가 될 테니까. 그러나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두 음악가의 캐스팅에 대한 농담따먹기로 끝나는 건 좀 피하고 싶어진다. 120분짜리 영화를 보고서도 할 말이 그런 것밖에 없다면 그건 그것대로 반응하는 사람에게 피곤한 일이다. 캐스팅 비화야 이미 다들 아는 사실이니 넘어가도 될 것이고. 


최근에 영상자료원에서 이 영화를 상영하길래 피로를 무릅쓰고 굳이 보러 갔다. 가장 큰 동기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작고 소식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의 음악 세계를 잘 모르고 그가 만들었던 몇몇 영화 음악으로만 알 뿐이다. 피아노 학원에 다닐 때, 영화를 본 적도 없으면서도 나는 홀린 것처럼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의 피아노곡을 정신없이 연습했던 기억이 있다. 영화 속의 어떤 아름다움을 남겨준 그를 '작고 뉴스 읽음'으로만 끝내기는 뭔가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현실 속 최대한의 형식적 추모는 그가 주연을 하고 OST를 남겼던 영화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시네마"로서 관람하는 것이었다. 지금 곱씹어보니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건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과 은근히 비슷한 구석이 있다. 시각적으로 어둠(검은색)을 추구하는 공간에 가서, 고인의 살아 생전 아름다운 모습을 집단적으로 추억하며 그 자리를 조용히 지키고 앉아있다가 떠나는 것이니 말이다. 


이 영화를 사카모토 류이치 때문에 보러 갔으면서도 영화가 시작되자 나는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말았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해당 영화에 대한 외부정보를 최대한 차단한다는 평상시의 필터링이 무의식적으로 작동한 탓은 아닐까. 그래서 영화의 첫장면에서는 '이 영화에 기타노 다케시가 나오네?'라며 화들짝 놀랐고 사카모토 류이치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영어를 어느 정도 하는 저 일본남자는 누구지?'라고 반응했다. 영화 외적인 정보를 제대로 작동시킬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은 데이빗 보위였는데, 나는 맨 처음에는 데이빗 보위가 로렌스인줄 알고 있다가 나중에서야 그 오해를 바로잡았다. 제대로 알고 있던 게 하나도 없는 채로 영화를 본 셈이다. 차라리 그게 더 나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요노이 대위를 사카모토 류이치... 하면서 곱씹었다면 오히려 감상이 엉망진창이 되었을지도.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당혹스러움이 해소되지 않았다. 이것이 차라리 아마츄어 감독의 작품이라면 못찍은 결과이니 할텐데, 영화의 시점이 모호하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누구의 이야기인 것인가. 큰 줄거리 안에서 각자의 역할과 캐릭터는 분명히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가 싶으면 시점이 금새 이동한다. 이 영화의 시작과 끝을 보면 이건 로렌스가 바라본 하라 중위의 이야기, 즉 하라 중위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영화는 로렌스가 요노이 대위와 일대일 대면을 하는 장면들도 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관찰자 로렌스의 이야기인가. 요노이 대위와 잭 셀리어즈가 처음으로 대면하는 장면에서 로렌스는 없었다. 영화는 종종 로렌스 없이도 흘러간다. 각 인물을 돌아가며 보여준다기에는 그 시점의 균형이 딱히 맞지도 않다. 로렌스와 잭 셀리어스가 외부 감옥에 수감되었을 때 영화는 잭 셀리어스의 내면 앞으로 깊이 침투한다. 이것은 잭의 이야기를 듣는 로렌스의 시점일까. 아예 플래시백으로 시간대가 바뀌고 그 안에서 잭은 1인칭으로 그 당시의 상황을 재현한다. 로렌스의 관찰자 시점을 뛰어넘어서 영화는 직접 과거를 보여주는 것은 오로지 잭의 이 과거 뿐이다. 그렇지만 잭은 로렌스 혹은 요노이 대위의 시야 안에서만 서술될 수 있는 사람일 뿐이다. 영화는 누구에게 초점을 맞춰 어떻게 서술할지 종종 그 균형을 무너트린다. 


그렇다면 이 시점 자체를 맞다고 가정하고 이유를 물을 수도 있겠다. 로렌스가 가까이 지내는 인물은 총 세명이지만, 일본에 저항하는 같은 연합군이자 서양인으로서 동질감을 느끼는 잭 셀리어스에게만 온전히 동질감을 느낄 수 있어서 영화가 플래시백을 동원할만큼 그의 이야기에 깊이 감화되는 것은 아닐까. 이 경우 로렌스는 요노이 대위와 하라 중위에게는 말은 통하지만 결국 끝끝내 관찰자로 남을 뿐이고 깊은 대화가 가능한 외부인은 잭 셀리어스 뿐이라고. 그렇다면 조금 위험한 결론이 나온다. 전쟁의 피아구분도, 인종도, 국가도 초월해서 인간 대 인간으로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영화의 결론은 로렌스와 잭의 특별한 대화에 의해 부정되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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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우 가장 결정적인 종교적 가치관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기독교라는 서구 세계의 가장 절대적이고 지배적인 그 세계관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만 영적 교류를 통해 그 플래시백의 세계를 공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할복자살을 명예라고 생각하는 "야만스러운 일본인"을 로렌스가 평생 이해할 수 없었다면, 그 이해불가의 근거에는 꼭 합리주의나 개인주의가 아니더라도 자살을 죄라고 생각하는 기도교적 가치관이 당연히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반대로 희생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기독교적 세계관의 과거를 로렌스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잭의 개인사는 단순한 개인사가 아니라 예수를 떠올리게 하는 기독교적 일화이다. 잭은 장애가 있는 어린 동생을 구해주지 못하고 따돌림을 당하도록 방치한 과거가 있다. 그는 이 과거를 극복하기 위해 (혹은 도망치기 위해) 수용소에서 몰래 식량을 나눠주고 로렌스를 구출해 탈출시도를 하는가 하면 요노이 대위가 힉슬리 중령을 죽이려는 것을 끝끝내 막는다. 그의 이 성스러운 모든 행위는 동생을 구하지 못했던 "원죄"에서 비롯된 대속 행위이며, 그가 결국 모래밭에 머리만 내놓고 파묻혀 죽는 것은 예수의 십자가형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결국 "주 예수의 위대함을 모르는 야만인들 사이에서 예수의 기적을 몸소 구현한 한 성자의 이야기"로 읽어도 되는 것일까.



잭 셀리어스의 결정적인 구원행위 이 전에 일본군 측의 두 번의 구원이 있다. 맨 처음 행해진 구원은 요노이 대위가 잭 셀리어스를 처형하는 척만 하고 수용소로 데리고 오는 행위다. 영화에는 명백한 이유가 나오지 않는다. 그저 요노이 대위의 야릇한 눈빛, 그리고 영화 초반부에 가네야마가 동성 강간으로 처형당하는 맥락을 볼 때 요노이 대위가 동성애적인 욕망을 품고 있었다고 혐의를 제기할 수는 있을 것이다. 영화 마지막까지도 요노이 대위가 동성애자인지는 명확하게 나오지는 않는다. 아무튼 그는 잭의 섹슈얼한 매력이든 인품이든 뭔가에 반해서 그를 수용소로 데려왔다. 어쩌면 이 행위를 '구원'이라고 부르는 것은 요노이 대위의 동기가 아니라 총살을 시행되었음에도 살아있는 잭의 상태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하마타면 죽을 뻔 했지만, 요노이 대위의 변덕인지 계획인지 모를 무언가에 따라 잭은 죽지 않았다. 결국 할복을 하고 죽은 가네야마나 옆에서 혀를 깨물고 쓰러진 디용(그는 이후로 언급이 없다) 과 비교해보았을 때 잭 셀리어스가 죽지 않은 것은 '죽음으로부터 구해졌다'고 말해도 충분할 것이다.


두번째는 하라 중위가 잭과 로렌스를 석방해준 행위다. 잔뜩 술에 취한 하라 중위는 파더 크리스마스를 계속 떠들면서 혼자서 기분이 좋았는지 어쨌는지 본인이 산타인 것처럼 잭과 로렌스를 석방해준다. 이 구원 역시도 정확하게 해석할 길은 없다. 하라 중위가 평소에 친분이 있던 로렌스를 구해주고 싶은 마음에 변덕을 부린 것인지, 아니면 크리스마스도 됐으니 그 명절의 당사자들인 양인들에게 한껏 기분을 내고 싶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라 중위의 이 석방이 조금 석연치 않은 점은, 그의 이 결정으로 인해 요노이 대위에게 근신 처분을 받았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이 벌을 받을 것을 알면서도 기어이 이 변덕을 부렸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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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사람을 땅에 심어서 죽여놓고 그 사람이 "씨를 뿌렸다"고 하는 건 뭔가 악취미적인 것 같기도 하다)


이 두 일본인의 행위에는 공통적으로 법, 질서에 대한 저항이 포함되어있다. 처형이 예정되어있던 잭 셀리어스를 굳이 수용소로 데려간 요시이 대위나 원칙에 맞지 않게 잭과 로렌스를 석방시켜버린 하라 중위나, 당시 일본 국가의 결정에 저항하는 맥락이 있다. 이들의 숨은 동기가 어떻고 어떤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지간에, 이들의 마음 속에서 "저 사람을 이렇게 죽이기는 싫다"는 뭔가가 작동한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 아닐까. 어쩌면 이런 해석조차 전범국에 대한 감상주의적 해석이 될 수는 있겠다. 그럼에도 모든 인간이 언제나 괴물인 것은 아니며, 로렌스의 입장에서는 어찌됐든 "죽이지 않은 선택"을 한 이 사람들을 미워할 수만은 없는 이유가 있다. 그건 단순히 "나는 안죽인 사람들"이라며 택도 없는 은혜를 곱씹기 정도의 감상일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것은 힉슬리를 죽이려 하던 요노이 대위 앞에 잭 샐리어스가 몸을 던져 그 살인을 막은 것으로도 다시 한번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잭이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있다. 영화가 이미 구구절절 이 사람의 죄책감을 보여주었으니까. 요노이가 왜 끝내 힉슬리를 죽일 수 없었는지, 그 질문을 하게 된다. 그 순간 잭을 치우고 힉슬리를 벨 수도 있었을 것이고 아니면 잭과 힉슬리를 둘 다 죽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때 이미 요노이 대위는 반쯤 돌아있었고 자신의 관용과 원칙론은 이미 바닥을 드러내보였다. 왜 그는 잭을 베어서 죽일 수 없었는가. 자기가 반한 사람이라서? 그건 좀 불충분한 대답이 아닌가? 병자들도 다 끌고 나오라고 흥분해서 날뛰고 있었을 때에도 그의 무엇이 잭에게 반응했냐는 것이다. 다른 일본군 장교가 요노이 대위의 전출을 알리며 "나는 요노이처럼 마음 약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을 때, 그 약함-센티멘털리즘의 정체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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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연합군의 승리 이후 로렌스가 하라 중위를 재회하는 장면은 쓸쓸하다. 어떤 면에서 잭 셀리어스의 희생은 그가 늘 품어왔던 희생을 실천한 것이기에 아예 초인의 행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자신의 행위에 흔들림이 없고 언제 어디서든 그렇게 자신의 최후를 앞당겼을 것 같다. 그러나 나머지 세 사람은 누굴 죽이거나 자신이 죽는 그 선택의 기로에서 어쩌지 못하고 자신에게 강요되는 "율법"을 어기면서 자신과 타인의 목숨  앞에서 초연해지지 못한다. 그다지 명석해보이지 않는 하라 중위가 개심해서 자신의 사형 하루 전날에 그 죽음을 기어이 받아들이게 되는 장면은, 빚을 갚지 못하는 것 같아 가슴이 무겁다. 잭 셀리어스의 그 희생적 행위가 정말로 씨를 뿌린 거라면 로렌스도 그 씨를 받아서 구원의 꽃을 피웠어야 하지 않을까. 분명히 자신을 포로로 취급했던 적이지만 그 전장의 논리만으로 대하기에는 어느 크리스마스날 그가 어줍잖게 산타 흉내를 냈던 것이 기억이 나고 만다. 한편으로는 이 영화를 찍은 오시마 나기사의 입장에서, 우리 일본인들은 그렇게 죽음을 동경하고 살인을 실천하면서도 자신 안의 본성을 뒤늦게야 깨닫는 어리석은 존재들이라고 내뱉는 한탄 같기도 하다. 국가의 승리라는 이념에의 순종, 죽음을 통한 명예와 희생, 누군가를 죽일 수 있을 때의 선택권... 누군가를 죽여야 하거나 죽일 수 있는 상황 속에서도 어떤 인간성은 드러나고 만다면 그것은 비극일까 희망일까.


그 의문을 품은 채로 피아노 버젼이 아닌 OST로 들었던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는 이상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 해맑고 고요한 멜로디는 죽음을 막 앞둔 하라 중위의 마음처럼도 느껴져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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