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콩과 고지라의 인연?

2024.04.17 14:05

돌도끼 조회 수:446

1933년 [킹콩]이 나왔습니다.
실재로 존재할 수 없는 거대한 괴물이 도시를 때려부수는 이 영화는 세계인에게 충격을 주었고, 그중에서도 특히 일본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줬던 모양입니다.

[킹콩]을 보고 충격받은 일본사람들 중에 젊은 촬영감독 츠부라야 에이지가 있었습니다. 평소부터 이상한짓실험적인 시도를 잘하는 또라이로 알려져 있던 츠부라야는 영화속에서 자기 눈을 믿을 수 없는 광경들이 연속되는 걸 보고 저걸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을까 하고 고심하게 되었고, 그걸 계기로 아예 특수촬영 전문가로 전업하게 됩니다. 글구 평생 소원이 자기손으로 킹콩을 만들어보는 거였답니다.

약 20년 후인 1954년, 츠부라야는 [고지라]를 만들었습니다. 스톱모션으로 만들어진 킹콩과 달리 고지라는 사람이 고무옷을 뒤집어쓰고 뒤뚱거리며 연기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고무옷 괴물도, 스톱모션에 비하면 로우테크이긴 하지만, 나름의 흥취와 장점이 있어 독자적인 일가를 이루게 되고 수많은 팬들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1956년에 [고지라]는 미국에 상륙하게 되는데 공교롭게도 이때 RKO가 미국에 [킹콩]을 재개봉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킹콩과 고지라가 나란히 극장에 걸리기도 했었습니다. 아마도 킹콩과 고지라의 첫 대결이었다고 할 수 있을듯...ㅎㅎ

1962년, 츠부라야는 그렇게 소망하던 킹콩 영화를 드디어 만들게 됩니다. [고지라] 제작사인 토호가 어찌어찌 우연찮게도 당시 (오리지날 [킹콩]의 창조자인) 윌리스 오브라이언이 진행중이던 킹콩 영화의 기획을 사들인 거였습니다.(이 일과 관련해 좋지 않은 소문이 있지만...) 오브라이언의 원래 이야기는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든 거대 괴물과 킹콩이 싸운다는 거였는데, 토호는 여기서 킹콩의 상대역을 고지라로 바꾸고 [킹콩 대 고지라]를 만들었습니다.

동서양 괴수왕의 대결! 일본 관객들이 흥분하지 않을 수 없는 이벤트였죠. 자신들이 자랑하는 괴수인 고지라와 오래전부터 세계인이 다 알고있던 원조괴수왕이 붙습니다. 천만이 훌쩍넘는 관객을 동원해 21세기가 될때까지도 관객동원수로는 고지라 영화들 중 짱먹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 영화는 고지라 시리즈로 치면 3편이었는데, 영화가 미친 흥행을 한 덕에 고지라는 확실하게 시리즈물로 안착할 수 있었고, 토호의 괴수영화 제작방향도 고지라와 이런 저런 괴수들이 치고받고 레슬링을 하는 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킹콩 대 고지라]는 스토리상으로는 킹콩 위주의 이야기-오리지날 [킹콩]의 리메이크-였고, 여기에 난데없이 고지라가 난입하는 형태입니다(그러니까 요즘 나오고 있는 영화들과 작법이 비슷하죠ㅎㅎ) 하지만 여기 나오는 킹콩은, 츠부라야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을텐데도 불구하고, 그다지 폼나보이지는 않습니다. 미국 관객들은 이 킹콩을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한 모양이고요. 킹콩 영화의 계보상으로는 인정을 못받았습니다.


킹콩 영화를 더 만들수 있는 권리가 남아있던 토호는 킹콩이 에비라라는 괴수와 싸우는 영화를 기획했지만 이런저런 사정상 킹콩 대신 고지라가 나오는 걸로 변경되었고, 66년에 [고지라, 모스라,에비라 남해의 대결투]가 공개되었습니다.


60년대에 랜킨/배스 프로덕션(당시엔 이름이 달랐지만)이 킹콩 TV 만화영화 시리즈를 만들었습니다. 랜킨/배스가 기획제작하고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작업을 하청받아 만드는 형태로, 이때부터 랜킨/배스는 일본과의 오~랜 하청주문관계를 시작했고, 시리즈의 극장판 실사 영화까지 일본에 하청일본과 합작으로 만듭니다.  랜킨/배스와 아직 킹콩 권리가 남아있던 토호가 협력해 67년, [킹콩의 역습]이 나왔습니다. 만화영화 시리즈에 나왔던 로봇 킹콩이 이 영화판에도 등장했고, 이 로봇 킹콩에 영향을 받아 나중에 로봇 고지라-메카고지라가 나오게됩니다.

70년대, 이탈리아의 명제작자 디노 데 라우렌티스가 미국으로 거점을 옮기게 되면서, 미국에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한 대작으로 (파라마운트와 손잡고) [킹콩]의 리메이크를 시도합니다. 그런데 그때 유니버설도 자기네가 킹콩 권리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고 나서서, 두 영화사가 대판 싸우게 되었습니다. 안그래도 킹콩을 리메이크한다는 소문만으로도 화제가 되었을 텐데, 두 영화사의 대결까지 벌어지니 사람들의 관심이 더욱 집중됩니다.
이렇게 영화 나오기 한참전부터 화제가 되어서, 이런 분위기면 영화가 확실히 대박나고 괴수붐이 불거라는 기대감에 잠깐동안 괴수영화 혹은 그 비슷한 것들의 개봉러시가 있었습니다. 싸움결과 76년, 라우렌티스와 파라마운트의 [킹콩]이 세상에 나왔고, 유니버설은 다음기회를 노리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고지라 대 메가로]가 미국에 개봉되었고, 이 영화는 라우렌티스의 [킹콩]이 조성해 놓은 분위기를 잘 이용한 덕에 미국에서 제일 유명한 고지라 영화가 되었습니다. 고지라팬들은 고지라 영화들중 최악이라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영화지만 이 영화로 미국의 아동들에게 고지라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그 아동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었을 무렵에 미국에서도 고지라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이야기가 본격화되게 됩니다. 실제로 영화가 나오기까지는 시간 좀 걸렸지만요.

유니버설은 90년대에 뉴질랜드 출신 괴짜 피터 잭슨에게 킹콩 리메이크 프로젝트를 맡깁니다. 당시 잭슨은 이미 영국의 오래된 환타지 소설을 영화화하는 작업에 들어가 있었지만... 킹콩이란 말입니다. 잭슨이 어린시절에 보고 충격을 받아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마음을 먹게 만든 영화입니다. 잭슨은 하던 일 중단하고 킹콩 프로젝트에 매달립니다.
하지만, 1년도 안되서 유니버설은 진행중이던 킹콩 프로젝트를 중단시켜버립니다. 이유는, 그때 [인디펜던스 데이]를 세계적으로 대히트시킨 감독이 미국판 고지라 영화를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킹콩과 고지라가 붙게되면 자기네가 불리할거라는 판단 때문이었답니다. 뭐... 잭슨의 미국진출작 흥행이 시원치 않았기땜에... 잭슨에 대한 믿음이 흔들렸던 거겠죠. 정작 [인디펜던스 데이] 감독의 [고질라] 영화는 뚜껑 열어놓고 보니 예상기대치보다는 힘을 못썼습니다만...

피터 잭슨은 다시 원래 하던 일 계속했고, 그 환타지 영화들이 대성공을 거두자 유니버설은 다시 잭슨에게 킹콩을 제안합니다. 그렇게해서 2005년에, 디노 데 라우렌티스 버전에 이은 피터 잭슨판 리메이크 [킹콩]이 나왔습니다.
잭슨은 영화만 만든게 아니라 킹콩이 사는 해골섬에 관련한 방대한 설정을 짰고 그걸 이용해 [스컬 아일랜드]라는 제목으로 프리퀄을 만들 계획까지 세웠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영화가 만들어지지는 못했습니다.

2010년대에, 레전더리에서 고지라 판권을 얻어 새 고지라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레전더리는 괴수영화 비슷한 건 함 다 만들어보자 했는지 유니버설의 [쥬라기 공원] 속편에도 참여합니다. 유니버설과 합작해 [쥬라기 월드]를 만들고 있는 동안에 레전더리는 유니버설한테서 [스컬 아일랜드]를 넘겨받습니다.
그렇게 해서 레전더리는 킹콩과 고지라의 제작권리를 동시에 가지게 되었고, 그럼 당연히 둘을 싸움 붙여야겠죠?
그렇게 몬스터버스가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둘이 싸우던 시절도 이미 지났고 이제 한가족이 되어 훈훈한 시트컴을 찍게되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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