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2.24 13:19
“환대와 예의바름은 비슷한 어감과는 달리 실제로 매우 다른 행동이다. 환대는 친한 사람을 적당히 대접해서 돌려보내는 것이 아니다.
환대는 낯선 이를 친구로 만드는 적극적인 과정이다. 환대하는 이는 낯선 이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의 경험을 인생의 조언과 충고로 귀하게 여긴다.
반면 이 시대의 예의바름이란 낯선 이를 친구로 만드는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낯선 이가 내 삶에 다가서지 말고 낯선 이로 물러나 있을 것을 요구한다.
나 또한 남에게 관여하지 않고 거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에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다른 이의 삶에 조언과 충고를 보태는 것은 사생활을 침범하는 무례하고 공격적인 일로 여겨진다.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것 자체가 개인을 공격하는 예의 없는 행동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중략)
이것이 이 시대에 우리가 처한 관계의 딜레마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삶에 관여하지 않는 것을 넘어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자기 삶을 제어해야 한다.
즉 예의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절대 남이 부담스러워할 만한 꺼내서는 안 된다.
나아가 인터넷 커뮤니티든 아파트단지든 간에 우리의 일상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정당성에 대해 고뇌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는 순간,
즉 예의바름의 기준을 넘어서는 순간 그것은 상대방에게 모독이 되어버린다.”
제가 요즘 가장 환대하고 있는(또는 싶은) 엄기호씨의 <단속사회>라는 책을 최근에 읽게 되었습니다.
거의 모든 내용이 좋았지만 그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구절을 발췌해봤습니다.
저는 평소 나이나 직급에 상관없이 반말을 싫어하고 상호 간의 예의와 독립성을 아주 중시하는 사람입니다.
이 책에 의하면 예의바름은 다른 존재의 노동과 활동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자기 안으로 쪼그라든 ‘파편화되고 고립된 개인’만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 지점을 던져줍니다.
처음에는 정말 그런가 아니지, 나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환대도 하고 예의도 차리고 있을 뿐이야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니 나이가 들어갈수록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도 줄어들고 할 이야기도 없고, 정보가 필요하면 지인에게 묻기보다 인터넷 검색을 하고(지인보다 인터넷을 조금 더 신뢰한다는 얘기겠지요),
새로운 관계 맺기는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지 않나 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듀게에서의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듀게가 ‘PC’로 널리 알려진 사이트이지만 어쨌든 이 댓글이 예의를 넘어서는 것은 아닐까, 이런 얘기는 부담스러운 것은 아닐까.
이런 식의 검열을 항상 하고 있더군요. 예의 자체는 정말 중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다른 사람을 그저 타자로 만들어버리는 예의를 내가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하지만 막상 환대한다고 낯선 이의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고 감정을 쏟다보면 그 낯선 이가 내게 상처를 주거나 적의를 품게 되면 내 손해가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듭니다.
점심시간이 남아서 오랜만에 글을 쓰고 있는데 어느새 다시 근무시간이네요. 얼른 책 뒷부분을 들쳐봅니다.
경청은 적극적인 말 걸기이며 ‘남’을 ‘너’로 만드는 과정이다. 그리하여 나와 너라는 우리가 될 수 있다 라는 내용이 보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저 남이 아닌 적어도 '너' 가 되고 싶다면 그저 형식적인 예의가 아닌 아주 조금이라도 환대의 마음을 가져봐야겠다는 아주 영혼없는 다짐을 하게 되네요. ^^;
아무튼 이 글을 읽은 모든 분들이 부디 맛있는 점심식사를 하셨기를 바라봅니다.
2015.02.24 15:06
2015.02.24 15:15
환대를 위해 무플방지?
예의바르게 무플?
환대 쪽을 선택하고 잉여댓글 추가요 ( . . . )
2015.02.24 15:21
예의 바름을 넘어 환대하며 관여한다는건 희생이랄만큼 힘들고
상대가 거절할 땐 완전한 관여가 되기도 하고요.
2015.02.24 16:20
2015.02.24 17:19
2015.02.25 00:41
본문에 공감하고, 이 댓글에 동감합니다. 언제부터 우리가 그렇게 쿨하고 건조한 도회적(?) 인간관계가 보편화 되었던가요? 저도 못지않게 지독한 개인주의자입니다만, '싫은 소리도 참을 깜냥을 키우는 대신에 싫은소리를 하는 사람을 억압하는 식으로 발전하는게 요즘사회인데 사실..깜냥을 키우고 배짱이 두둑해지는게 올바른 발전이 아닌가 하는 생각많이듭니다. 간섭은 사람을 힘들게하긴하지만 아무도 간섭하지않을때야말로 진짜 외로울거같은데요.' 이 문장에 적극 공감합니다. 그러나 그 간섭의 경계는 여전히 '내가 원할때만 조언해달라 내가 원할때만 관심가져달라' 의 장벽 앞에 갈피를 잡지 못한다는데 있겠죠.
2015.02.25 06:07
사람과의 관계에서 항상 이사람은 나와 다를뿐이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라는것을 기본 바탕으로 깔려고 노력합니다.
때로는 정말 이사람은 나와는 생각하는게 틀리구나, 이사람의 이런 행동은 이해 할 수가 없다 라는 생각이 들때도 있지만 그래도 이사람은 나와 다른 사람일뿐이라고 생각하려고 노력합니다.
어떻게 보면 아주 차가운것이긴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의 가치관에서 올바르지 않은 행동을 하더라도 그건 그사람이 나와는 다르게 생각하는것일뿐이라며 머리속에서 정리해버리기 때문이죠. 사람이 다른 사람이 바르지 않은 선택을 할때면 어떻게던 도와주고 바른 방향으로 끌어주는게 인지상정이겠지만 이젠 그마저도 나와는 다를뿐이라며 무관심으로 지나쳐버릴때도 많이 있었으니 말이죠.
본문으로 본다면 예의바름을 빙자한 무관심으로 흐르는게 요즘의 새로운 예절이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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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을 서로 다르게 구분하고 있을 때 힘들게 되는 것 같아요
예전에 읽은 글이 생각나네요.
미국인에 관한 글이지만, 회사 탕비실에서 "오늘 날씨가 참 궂어요"하며 예의바르게 미소짓는 동료가 이상하게 차갑게 느껴졌던 날 떠오른 글귀였습니다.
'친절한 상투어들, 온정의 외적 표현들, 특히 미소들, 그러나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미소, 애정도 감정도 없는 미소, 그저 미소만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지, 갈등을 사전에 차단하고자 하는 의지만 의미할 뿐인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