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진스의 New Jeans와 슈퍼 샤이를 듣고

2023.07.09 23:24

Sonny 조회 수:1056


뉴진스의 뉴진스를 듣고 혼란에 빠졌다. 이 노래는 노래 자체보다 앨범의 도입부로서만 기능하는 노래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초침 소리를 흉내낸 비트가 무언가를 기다리는 느낌을 더 강하게 전달한다. 물론 노래 자체만 따져도 이 노래는 상당히 좋다. 그렇다면 그 기다림은 무엇에 대한 기다림인가. 그 답은 당연히 작은 맥락에서는 뉴진스의 실질적인 타이틀곡 ETA이고 더 큰 맥락에서는 뉴진스의 방송 컴백일 것이다. 그러니까 뉴진스는 새 앨범의 프로모션을 위해 인트로 용도의 곡을 굳이 뮤직비디오를 만들어서 공개하고 있는 것이다. 지나친 야심이지 않을까.




그 의문은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조금 해소되었다. 민희진은 타이틀곡의 티저 영상을 뿌리는 것으로 뉴진스 2집의 홍보를 할 생각이 없다. 그것은 이 뮤직비디오의 컨셉이 "멀티버스"를 삼고 있다는 점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어텐션, 하잎보이, 디토의 3연속 메가히트를 내놓은 그룹을 다루면서 (OMG의 성공도 대단하긴 했다) 민희진은 뉴진스의 컴백을 단순히 인기많은 그룹의 귀환으로 치부하고 싶지 않아하는 것 같다. 뉴진스가 돌아오면서 이제 새로운 세계가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요새 히어로영화에서 허구헌날 써먹고 있는 이 멀티버스의 개념은 우리가 알고 있되 만나지 못하는 세계들이 서로 만난다는 이벤트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던가. 뉴진스가 없던 세계는 뉴진스가 등장하는, 혹은 존재하는 세계와 드디어 겹쳐지기 시작한다. 이것이 민희진이 의도하는 뉴진스의 멀티버스다. 이 세계가 아이돌 한 팀이 있냐 없냐에 따라 아예 세계가 분화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원대한 야심인가.

뉴진스의 뉴진스 뮤직비디오는 이미 OMG의 뮤직비디오에서부터 예고되었던 개념이다. 뉴진스의 각 멤버들은 정신병동에 입원한 과대망상증 환자들이자 자기만의 세계에 취해있던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단지 본인이 경험하는 멀티버스를 이 세계에 성공적으로 소환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뮤직비디오의 쿠키영상에서 뉴진스에 적대적인 멀티버스의 존재들을 소환하면서 영 어설픈 봉합으로 마무리되었다) 이제 뉴진스는 뉴진스로 돌아왔다. 그리고 우리들은 뉴진스가 존재하는 멀티버스와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덤으로 이 뮤직비디오는 모든 시청자들을 뉴진스의 열정적 팬인 "버니즈"로 호칭하며 뉴진스와 버니즈만 존재하는 세계인 것처럼 도취시키고 있다. (이번 컴백을 뉴진스의 Ditto와 연결시켜 들으면 이별에서부터 재회까지, 시간과 정신세계로 뉴진스가 없는 멀티버스를 각각 체험하다가 드디어 뉴진스를 다시 만난다는 느낌이 훨씬 더 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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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진스의 세계에서 뉴진스는 파워퍼프걸로 치환된다. 그리고 파워퍼프걸화된 이들은 2d의 게임 세계에서 3d의 게임세계로 날아다니다가 각자 문을 마주치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간다. 다른 세계로 들어간다는 "문"이라는 이 명백한 기표를 사용하면서 뉴진스는 본인들의 컴백이 멀티버스가 도래했다는 것을 알린다. 멀티버스의 스파이더맨들이 각기 다른 그림체와 색을 갖추고 있듯 파워퍼프걸화된 뉴진스들은 각기 다른 그림체와 기법으로 표현된다. 즉 이 뮤직비디오는 이 세계는 단히 현실의 아이돌 뉴진스의 세계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귀여움과 깜찍함으로"만" 뭉쳐져있는 뉴진스의 또 다른 내부 세계로 들어갈 수 있음을 암시한다. 아이돌의 컴백히 새로움을 표현하려고 곡의 컨셉과 스타일링의 변화를 강조하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아예 본인들의 또다른 세계를 구축한다.

이 곡이 인트로의 목적을 갖추고 있다는 걸 상기해보자. 뉴진스의 뉴진스를 듣는 것은, 뉴진스가 각기 다른 그림체로, 2d와 3d를 넘나드는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여는 것이다.





뉴진스의 슈퍼 샤이 역시 듣자마자 아리송해졌다. 노래가 좋다 안좋다의 문제가 아니다. 이 노래는 단일한 노래가 아니라 세컨드 인트로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슈퍼 샤이의 화자와 청자는 누구인가. 슈퍼 샤이의 가사는 표면적으로 누군가를 만나기 전에 설레하는 여성화자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2집의 타이틀 곡을 공개하기 전의 뉴진스가 버니즈를 향해 고백하는 마음이다. 이미 자기소개는 뉴진스의 뉴진스에서 끝이 난 게 아니던가. 그런데 그 인트로를 한번 더 한다. 내가 돌아왔다고 노래를 한 곡 한 다음에 나 그런데 사실 너무 떨리다고 팬들한테 한번 더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곡을 공개한 규모와 타이밍의 맥락이 이미 이 노래를 뉴진스와 버니즈의 관계 말고 다른 맥락으로 해석하기 어렵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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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비디오는 이 노래가 뉴진스와 버니즈 사이에서 가장 크게 공명하는 팬송인지를 증명한다. 수줍음이란 감정에 대한 내용은 아무 것도 없다. 이 노래의 가사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뮤직비디오의 영상과 안무가 이어진다. 그렇다면 이 뮤직비디오는 뉴진스와 팬 사이의 무엇을 담고 있는가. 이 뮤직비디오는 "이세계"를 표현하는 것을 추구한다. 뮤직비디오는 다니엘이 자전거를 타고 이국적인 풍경을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풍경의 색감은 너무 쨍하고 맑기만 해서 현실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 비현실적인 질감을 먼저 접하면 그 다음에는 남은 뉴진스 멤버 4명이 기다리고 있는 다른 공원이 있다. 그리고 다니엘이 그 공원의 열린 "문"으로 들어가서 멤버들을 만난다. 다시 한번 문을 열고 들어가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뉴진스는 두번째 노래로 두번째 안내문을 던진다. 지금 당신이 뮤직비디오를 통해 목격하는 것은 뉴진스의 멀티버스라고. 그 다음에 뉴진스는 어디로 시선을 돌리는가. 어텐션을 듣고 함께 춤추고 있는 해외팬들이다. 그 다음에 뉴진스는 그 팬들 사이로 뛰어들어간다. 이 뮤직비디오는 뉴진스가 팬들을 만난다는 내용이 전부인 그런 영상이다.


이것은 최근 걸그룹들의 뮤직비디오와 비교해봤을 때 조금 독특한 문법이다. 걸그룹인 우리는 이렇게 잘 나가며 인기가 많다, 는 나르시시즘이 케이팝 걸그룹 사이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동시대적인 화법이기 때문이다. 그 나르시시즘은 본인들을 둘러싼 수많은 청중이나 카메라를 도도하게, 혹은 고혹적으로 노려보는 시선으로 표현되곤 한다. 그리고 거기엔 종종 플렉스 문화도 추가된다. 뉴진스는 이 일반적인 화법들과는 거리가 먼 화법으로 뮤직비디오를 채우고 있다. 현실세계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듣는) 우리가 얼마나 잘나가는 사람인지를 그 초점을 집중시키는 게 아니라, 이 노래를 부르는(듣는) 우리끼리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다른 차원의 세계로 갈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뉴진스의 뉴진스가 인트로송으로 상상력을 펼쳐보였다면, 슈퍼 샤이는 그 세계관이 현실에서 어떻게 접목되고 발생하는지 그 효과를 본격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세계의 뉴진스가 아니라, 뉴진스가 있는 이異세계를 표현하면서 뉴진스의 멀티버스급 영향력을 표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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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샤이의 뮤직비디오에서 카메라는 이상할 정도로 시선을 뉴진스가 아닌 다른 엑스트라들에게 종종 돌린다. 뉴진스의 슈퍼 샤이가 울려퍼지고 (그 전까지는 어텐션이 울려퍼졌다) 팬들과 함께 어울리는 공간이 어떤 곳인지를 구석구석 보여주려는 것처럼 초점을 분산시킨다. 그리고 종종 이 엑스트라들은 뉴진스의 퍼포먼스를 가리거나 구석으로 밀어내면서까지 화면의 초점을 잡아먹는다. 보통 걸그룹의 뮤직비디오들이 걸그룹을 주인공으로 삼아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나머지 존재를 다 백업댄서 혹은 청중들의 개념으로 활용한다면, 뉴진스의 슈퍼 샤이는 그 세계 속에서 다른 사람들이 뉴진스와도 상관없이 존재하고 활동하는 것처럼 보여준다. 즉 이 곳은 뉴진스와 함께 갈 수 있는 세계이지만 뉴진스와 무관한 사람들도 있는 곳, 별도의 세계로 존재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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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샤이의 뮤직비디오에서 흥미로운 건, 이세계를 표현하기 위해서 언뜻 보면 불필요해보이는 갈등을 굳이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뉴진스를 태운 버스는 갑자기 꽃을 옮기던 어떤 사람과 충돌한다. 즉 교통사고가 났다. 교통사고 때문에 멈춘 버스에서 뉴진스는 내려서 다시 사람들과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리고 춤을 추는 이 와중에 어떤 남자는 무릎을 꿇고 여자에게 꽃을 주며 고백하지만 여자는 그 고백을 받지 않고 바로 뛰어가버린다. 사랑은 이뤄지지 않았다. 카메라는 뉴진스가 사람들과 함께 춤을 추고 있지만 교통사고가 나서 꽃과 마차가 쓰러진 흔적도 그대로 담고 있다. 이 불행을 숨기거나 표백하지 않는다. 뉴진스가 농구장에서 안무를 시연하는 장면에서는 서로 싸우는 커플을 보여준다.

이런 장면은 반대로 표현하는 게 훨씬 더 쉽고 일반적이다. 누가 차에 치일뻔했다가 안치였꺼나, 고백을 했는데 이뤄지거나, 서루 싸울 것 같지만 화해를 하는 장면이 더 그럴싸한 그림을 만들지도 모른다. 그런데 뮤직비디오는 누가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차이거나, 싸우는 장면들까지 일부러 보여주는 것일까. 이 뮤직비디오는 두시간짜리 영화가 아니고 4분 남짓한 시간은 뉴진스만 계속 보여줘도 모자란 시간인데.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서브 스토리의 주인공도 아니다. 만약 이 뮤직비디오가 뮤지컬의 효과를 노렸다면 이 사람들은 싸우다 말고, 차이다 말고 갑자기 함께 춤을 춰야하는데 그렇지도 않다. 그냥 쓰러져있거나 차이거나 싸울 뿐이다. 그 갈등은 해소되지 않는다.

이 장면들을 보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심즈'라는 게임이다. 이 게임은 주인공 한명을 선택해서 인생을 살아가는 게임이지만 여러 엔피시들과 엮이면서 종종 통제불능의 이벤트에 휘말린다. 비록 게임이지만 여러가지 퀘스트들이 발생하고 그 안에서 주인공은 자신과 타인의 여러가지 희노애락을 간접경험한다. 그것은 때로 내가 타고 가는 버스가 어떤 사람과 부딪혀버리는 교통사고일수도 있고, 누군가 고백에 실패하거나 연인과 싸우는 그런 괴로운 일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 뮤직비디오가 그런 희노애락을 담아내려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반대로, 그런 희노애락을 아무렇지 않게 노래와 춤속에서 흘려보낼만큼 슈퍼 샤이란 뮤직비디오가 하나의 절대적인 세계를 만들고 있다는 뜻이다.

이쯤해서 게임이라는 것이 실생활에서 가장 가깝고 자주 벌어지는 멀티버스라는 개념을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게임 안에서 우리는 다른 아이디를 가지고, 아바타라는 다른 육체와 기능을 가지고 저마다 목적을 수행한다. 슈퍼 샤이 이전에 뉴진스라는 노래의 뮤직비디오에서 뉴진스가 주인공으로서 단순히 파워퍼프걸이 되었던 게 아니라 그들이 "게임 세계"로 들어갔다는 것을 떠올려보자. 2d의 게임세계에서 3d의 게임세계로 들어갔던 뉴진스는 이제 사람들과 함께, 그들 자신의 육체로 표현되는 아바타를 가지고 훨씬 정교한 게임 세계로 들어간 것이다. 그 전의 파워퍼프걸 게임이 버니로 표현되는 적의 공격을 피하면서 쓰러트리는 슈팅게임이었다면 지금 이들은 뉴진스로서 팬들과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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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라는 멀티버스는 우리에게 어떤 감각을 재현하는가. 격투게임에서 내가 플레이하는 캐릭터가 두들겨맞는다고 내가 통증을 느끼진 않는다. 내가 플레이하는 캐릭터가 죽거나 다친다해도 마찬가지로 그저 실패가 아쉬울 뿐 그 희노애락의 감정은 한없이 옅어진다. 뉴진스가 심즈 세계같은 뮤직비디오 세계로 들어가면서 "감정과 멀어지는" 효과가 발생한다. 이 뮤직비디오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초현실적이다. 뉴진스는 그저 웃거나 즐거워할 뿐이고 사람들은 누가 춤추든 말든 청소를 하고 물건을 장사한다. 게임스럽게 비현실적인 이 세계를 보고 있으면 감정과 멀어진다. 그러면 남는 것은 무엇인가. 신나고, 상큼하고, 흥겹고, 뭔가 귀엽다는 "감각"만 남는다. 우리는 게임을 하면서 승리를 하거나 퀘스트를 완수할 때 어떤 감각을 충족시키지 감정을 충족시키진 않는다. 뉴진스는 지금 게임을 하는 감각처럼 이 음악을 들어주길 바라고 있다.

얼핏 보면 이것은 이상한 접근법이다. 본디 걸그룹이란 팬들의 선망과 동경을 체화한, 속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도 저렇게 노래를 잘하고 춤을 잘 추고 얼굴도 작고 키도 크고 날씬하고 다리도 길고 피부도 하얗고 모든 이가 우러러볼만한 조건을 갖춘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 열망을 대리체험시켜주는 꿈의 존재다. 그러나 뉴진스는 어떠한가. 귀여워지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은 있어도, 파워퍼프걸이 되고 싶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아이돌처럼 이뻐지고 싶다고는 말해도, 아이돌들이 노래하는 몽상적 세계로 가고 싶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뉴진스는 그 속된 욕망의 반대 방향으로 간다. 팬이 어떤 욕망을 지향하든 상관이 없다. 게임을 하면 게임 속 세계에 몰입하듯이 뉴진스의 노래를 들으면 뉴진스와 게임을 하는 이세계로 갈 수 있는 것처럼 아예 초탈하는 감각을 끌어올리려는 것이다.

이것은 뉴진스가(민희진이) 선포하는 아이돌이란 존재의 새로운 정의다. 명품 로고가 대문짝하게 박혀있는 옷들이 구리게 느껴지는 것처럼, 아이돌은 이제 계급적 성공의 증표가 아니라 보다 미적이고 세련된 것이어야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뉴진스는 돈, 미모, 노래와 춤 실력 같은 현실평가의 총합으로 남기를 거부한다. 로리타적인 여동생이나 도도한 여자친구의 매력을 보이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그 현실적인 욕망의 투영대상으로 남는 것과 반대방향으로 뉴진스는 이세계적이면서 보다 순수한 미적기호로 남고 싶어한다. 그렇다고 뉴진스가 완전히 탈자본주의적이고 자유로운 걸그룹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브랜딩 방법이 여태까지 당연하게 여겨져왔던 "잘나가는 여자"되기가 아니라 보다 미술적인 것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 파격은 걸그룹의 이미지 투쟁 속에서 매우 신선하고, 독점적이다.


@ 이수만이 그렇게나 하고 싶었던 멀티버스를 통한 스타와 팬의 유대형성을 민희진이 이렇게 성공적으로 하고 있다는 게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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