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의 이야기...(뮤2)

2016.08.19 13:19

여은성 조회 수:759


 #.Q가 그 가엾은 의사아저씨를 우악스럽게 패대기치는 모습을 본 뒤로는 그 가게에 가도 사장을 잠깐 보고 싶다거나 시간 있으면 인사하러 들르라거나 하는 말도 하지 않게 됐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원가 100원도 안하는 믹스커피따위에 감동받는 사람이 될까봐 두려웠던 것 같아요. Q를 가까이하면 나도 그 의사처럼 될까봐서요. 물론 그 아저씨가 가엾은 사람이란 건 말 그대로는 아니예요. 나중에 이리저리 얘기를 들으니 엄청난 난봉꾼이었거든요. 그래도 어쨌든 그 순간만큼은 가엾었어요.



 1.이제 슬슬 가게의 분위기파악이 끝나서 방에서 놀게 된 시기였어요. 사실 나는 바의 음악을 매우 싫어하거든요. 바의 음악도 싫고 다른 사람의 말소리도 싫어요. 어쨌든 시끄러운 건 싫어요. 여기서 '그런데 왜 바에 룸이 있는거지?'라고 묻는다면...요즘은 다 그래요. Q의 가게에도 가라오케가 설치된 룸이 세개 있죠.


 어쨌든 가기 직전에 예약을 재확인하고 싶었는데 지명한 사람이 카톡도 전화도 받지 않아서 조금 이상했어요. 뭐 예약이 사라질 리는 없으니 갔어요.


 나는 혼자라서 조금 작인 편인 방을 예약해 놨었어요. 그래서 예약확인이나 안내받을 것 없이 바로 방으로 직행했는데 방엔 이미 불이 켜져 있었고 누군가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어요. Q였어요. 갈 만한 곳이 없어서 여기서 쉬고 있는건가 했는데 Q가 나를 보고 일어나서 인사했어요. 나도 인사하고 지명한 사람(이하 Y)은 어디있냐고 물을까 하다가 알아서 오겠지 싶어서 그냥 자리에 앉았어요. Q가 말했어요. 


 'Y는 어제 일하다가 전사했어요. 그래서 오늘 못 나왔습니다.'


 나는 잠깐 눈을 가늘게 떴어요. 지명한 사람이 술병나서 못 나온다고 카톡 한번 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 그리고 일단 가게에 오게만 만들면 매상을 올려주는 사람이라고 여겨진 건가?  싶어서 조금 짜증이 났어요. 택시비를 받아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덕분에 헛걸음했으니 강북으로 갈 택시비 2만원을 달라고 말하려는데 Q가 먼저 입을 열었어요.


 'Y대신 제가 서브봐드릴까 하는데 괜찮을지요?'


 

 2.이건 정말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어요. 다른 곳이라면 사장이 최소한 문 밖까지 배웅나오는 정도로 써도 Q는 인사 한번 안 왔었거든요. 웬 바람이 불었나 싶었지만...가만히 생각해보니 심드렁해졌어요. 어차피 이리저리 메뚜기 뛸 사람이랑 노는 건 싫으니 그냥 가겠다고 했어요. 그러자 Q는


 '오늘은 Y대신 나온 거니까 절 Y라고 생각하세요. 여기 계신다면 전 다른 데 안 갑니다.'    

 

 라고 대답했어요. 이 정도면 거절할 수가 없어서 알겠다고 했어요. 그러고보니 오늘 Q의 옷은 엄청나게 좋은 옷은 아니었어요. 멀리서 볼 때는 좋아보였는데 가까이서 보니 그냥저냥 단정하고 깔끔한 일반적인 원단의 옷이었어요. Q가 제대로 일할 준비를 하고 오긴 한 거구나...싶었어요.



 3.이런저런 걸 시키고 기다리는 동안 Q가 말했어요. 


 'Y가 어제 블루 한병 더 팔아 보겠다고 무리하게 술을 마시다가 탈이 났어요. 나 매상 올려 준다고요. 그게 너무 고마워요. Y에게 잘 좀 해 주세요.'


 이 말의 행간을 해석하자면, 그러니까 당신을 위해서 여기 나와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졸개가 기특해서 졸개의 면을 세워주기 위해 여기 나와있다는 뜻이었어요. 행성을 위해 항성이 출장을 나와준 격이었죠.


 휴.


 사실 Q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별로 없었어요. '얼마나 잘나가길래 손님을 소 닭 보듯이 하는 거냐'정도를 빼면요. 그래서 질문을 약간 돌려서 여기 말고도 가게를 더 가지고 있느냐고 물어봤어요. Q는 이 가게가 메인이라고만 대답하고 다른 가게가 더 있다는 건지 아닌지는 확실히 말해주지 않았어요. 


 

 4.휴.



 5.Q와 별로 쓰잘데기도 없는 취향 얘기와 과거 얘기,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들에 대한 얘기나 좀 하다 보니 술이 다 떨어졌어요. 거의 3시간은 지나 있어서 바틀 하나로 오래도 버텼구나 싶었어요. Q는 의외로 다각적인 질문을 해왔는데, 오히려 그래서 대화가 지루하게 흘러갔어요. 가치관보다는 가쉽거리들을 즐겁게 이야기하는 편이거든요.


 나는 가치관에 대한 질문에 있어선 상대가 뭘 물어봐도 1-인간은 하찮음. 2-노력도 하찮음 3-늙기 전에 반드시 자살. 이 대답으로 모든 질문을 커버해내요. 이건 어쩔 수 없는 거예요. 우리가 뭘 중요하게 여기든간에 신은 그것을 비웃을 거란 걸 잘 아니까요. 어쨌든 뭘 물어봐도 저 세가지 대답 중 하나가 나오는 걸 3시간 중에 2시간 정도 한 것 같았어요. 그런 대답을 2시간동안 하는 사람을 상대로 계속 웃어주는 Q가 평소답지 않긴 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의 Q는 나를 상대로 인내심을 꽤나 발휘해 준 걸 거예요. 당시엔 전혀 친하지 않았으니까요. 


 Q가 이제 갈 거냐고 물어봤는데 시계를 보니 어딘가 다른 데로 가기도 뭐한 시간대여서 그냥 여기 끝까지 있기로 하고 같은 걸로 달라고 했어요. 그러자 Q는 고개를 저으며 샴페인을 먹고 싶다고 했어요. 계산기를 굴려보니 샴페인이 소진되는 속도와 남은 시간을 감안해 보면 샴페인 한병으로는 무리일 거 같았어요. 이 녀석이 내게 샴페인 두병을 까게 만들 설계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기서 싫다고 하면 물러서는 것 같은 기분이 들 것 같아 그냥 샴페인을 시켰어요. 


 

 6.술과 전용잔이 나오고 Q는 '조명 좀 어둡게 할까요'하고는 멋대로 조명을 줄였어요. 자리로 돌아와 뭔가 망설이는 듯 하더니 결국 입을 열었어요. 사실, 이미 들었어야 할 질문이었지만 아무도 내게 하지 않은 질문이었어요.


 '이런 곳엔 왜 오는 거예요?'


 언젠가 썼듯이...이런 곳에 사람들이 올 때는 정말로 놀 작정을 하고 와요. 아니면 시끄럽게 떠들거나...바닥까지 슬퍼하거나 모모에게 하듯이 비밀 얘기를 털어놓거나 하다못해 자신이 좋아하는 직원에게 얼굴도장을 뻔질나게 찍으러 오거나 뭐 그래요. 목적이 없이 오지는 않는 거죠. 게다가 내가 한번도 다른 사람과 온 적이 없다는 걸 Q는 직원들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술집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굉장히 쓸데없는 짓을 너무 자주 하고 있는 거죠. 하지만 장사하는 사람들 중 누가 이걸 대놓고 물어보겠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질문은 나에게 한 질문이었어요. 지나가던 구매자가 아니라요. 하지만 그 순간엔 건방지게 느껴져서 삐딱하게 대답했어요. 


 '그럴 돈이 있으니까.'


 Q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럴 돈이면 저 밖에서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 만날 수 있을텐데.'


 라고 말했어요. 대체 왜 이런 개소리를 하나 싶어서(그 때는) 내가 여기 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은 거면 오지 말라고 얘기하면 된다고 말했어요. 그러자 Q는 생긋 웃으며


 '저는 은성씨가 오셔도 안 오셔도 상관없어요.'


 라고 말했어요. 이런 건방짐은 조금 전의 건방짐보다는 훨씬 기분이 좋은 것이어서 나는 약간 크게 웃었어요. Q가 가만히 나를 바라보다가 '제가 거슬리세요?'라고 물어왔어요. 고개를 저어주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어요.


 

 7.내 생각과는 다르게 Q는 천천히 초콜릿 모듬과 샴페인을 마시며 남은 시간을 보냈어요. 그걸 보며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데 아니나다를까, 아직 끝나려면 30분정도 남은 시간에 Q는 그만 일어나자고 했어요. 다른 사람들은 다 가고 나만 남았으니 가게를 일찍 정리하고 싶다고요.


 나는 도저히 지금은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그냥 한병을 더 까고 30분만 영업을 연장하자고 했어요. 그러자 Q가 의외의 말을 했어요.


 '우리 고기 먹어야죠.'


 이게 무슨 소린가...콧대가 하늘같은 Q가 고작 2바틀 팔아준 사람에게 고기를 사다니? 갸웃거리고 있는데 Q는 오늘은 자신이 Y대신이라고 하지 않았냐며, Y가 영업 끝나고 사주기로 약속한 고기를 자기가 사주는 게 도리가 아니겠냐고 했어요. 


 도리...Q가 도리따위를 신경쓰는 인간으로 보이지는 않는데...라고 갸웃거리다가 이건 나와의 도리를 지키려는 게 아니라 자신의 부하와의 의리를 지키는 거라고 생각하니 이해가 됐어요. Q는 옷을 갈아입어야 하니 밖에 나가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어요.


 

 8.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사람들의 외모에 관대한 편이예요. 하지만 하이엔드급 외모를 품평할 때는 나름대로 깐깐해요. 그리고 이미 여러번 본 외모에 다시 놀라는 일 같은 건 정말 없어요. 몇년간 듀게에 꽤나 글을 썼지만 누군가의 외모에 대해 이렇게 많이 언급한 적은 없었잖아요. 아마 앞으로도 없을 거예요.


 가게를 마무리하고 Q가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나왔어요. 반 노튼 자켓이었던 것 같아요. 뭔가 기분이 좋은 듯 개구장이같은 얼굴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차키를 토스하고 있었어요. 밖에서 보자 다시금 '이런 얼굴과 이런 몸매가 있긴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어요. 한번더 말하지만 저는 남들의 외모를 칭찬하는 일은 있어도 놀라는 일 따윈 정말 없어요. 어쨌든... 


 순간 혹시 'Q가 다른 졸개들과 같이 데리고 가서 고기를 사주려는 건가? 회식에 낑겨넣는 걸 식사 대접하는 거랑 퉁치려는 건가?' 하는 걱정이 잠깐 들었지만 기우였어요. Q의 뒤엔 아무도 따라오고 있지 않았어요. Q와 고기를 둘이서 먹는다고 해서 뭔가 좋은 일이 더 생기진 않겠지만 그래도 둘이서 먹고 싶었거든요.  


 Q가 말했어요. 'Y랑 고기만 먹고 헤어지는 건 아니죠?'라고요. 이상한 생각 하지 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그것까지는 못 해 주니까 딴 맘 품지 마셔'라고 말하며 호탕하게 웃었어요. 깔깔거리는 Q를 보고 이 녀석은 가게에서는 정말 조신한 연기를 잘하는 거였다는 걸 알게 됐어요. 



 9.Q에게 그래도 사장님이신데 무XX에 가서 고기를 사줄 수 있겠느냐고 하자 지금 거기 말고 어디를 가려고 한 거냐고 호통치듯이 말하더니 또 깔깔거렸어요. 그러고보니 차가 확실히 이미 그쪽을 향하는 중이었어요. 네비가 찍혀있지 않아서 '새벽집도 있잖아요.'라고 하자 Q는 '무XX이 깔끔하지.'라고 말했어요. 이거 하나는 나와 생각이 같았어요.


 이쯤되면 Q를 의심하지 말아야 했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해두고 싶어서 '꽃등심 사주는 거 맞죠?'라고 물어봤어요. 내가 의심이 좀 많잖아요. Q가 대답했어요.


 '은성이는 무XX에 된장찌개 먹으러 가?'


 그 타이밍은 정말로 신급 타이밍이었어요. 누가 반말을 하면 대체로 나는 신경질을 부리거든요. 그런데 딱 그 순간이 반말을 들어도 신경질이 나지 않는 순간이었어요. 그건 Q의 외모와는 별개인, 타이밍의 문제였어요.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