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로우] 관람후기. 스포 한 가득

2015.04.11 03:45

죠스바 조회 수:2171

이렇게 뒷끝작렬하는 공포영화 본 지 오랫만이라 넘흐 기쁩니다. 옆에서 소리는 못내고 연신 꿈틀꿈틀하는 겁 많은 일행이랑 봐서 더 재미지기도 했구요. 대개는 공포물 편히 보는 편이라, 영화 시작 전에는 우리 빼고 아무도 없었으면 좋겠다 이러고 있다가, 카메라 회전과 음악으로 때려잡는 오프닝부터 '노란 옷 입은 여자애' 얘기 나올 즈음엔 극장 안에 다른 관객이 있다는 사실에 슬며시 고마움을 느꼈어요. 꺽다리 입장씬같은 건 예고편에서 몇 번 봤는데도 으으윽 하는 짐승같은 신음소리가 저절로 터져나와 스스로 깜놀. 

공포효과 대부분이 놀래키지 않고 긴장감으로 바짝 말려준다는 점에서 옛날영화 혼팅을 봤을 때랑 비슷한 느낌도 들었구요. 입원실에서 혼자 깨어있는 무방비 상태의 주인공같은 장면은 당장은 아무 일 일어나지 않아도 지금 주인공을 갉아먹는 불안이 어느 정도인지 관객들도 직접 체험하게 해주는데, 이런 밑밥 때문인지 그네타기나 자동차 엔진뚜껑 위에서 취침처럼 다른 영화에서라면 마땅히 복장터져야 할 장면들이 오히려 제이의 반 자포자기 상태를 이해하게 해주더라구요. 호숫가씬에선 마음같아서는 마구 박수를 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저 뒤에서 걸어오는 게 야라가 아닌 건 분명한데, 그럼 진짜 야라는 어떻게 등장하나 궁금한 찰나, 왼쪽에서 유유히 튜브타고 들어오는데 어찌나 신이 나던지요. 죠스 저리가라였음. 이에 비해 마지막 액션이 벌어지는 수영장씬은 앞에서 쌓아놓은 게 조큼 아깝다싶게 긴장감이 깎이더군요. 제 보기에 영화가 유일하게 리듬을 잃은 부분. 소형가전으로 감전시킨다는 계획은 소박한게 그 또래들이 할 법한 발상이라 좋았거든요. 헌데 작전실패로 판명나는 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버려서 치솟으려던 아드레날린이 슬그머니 사그러져드는게 문제였어요. 그래도 최종보스가 아빠라는 점과 초반의 데이트씬에서 차 안의 제이가 나레이션하는 컷과 수미쌍관되는 핏물 장면, 이어지는 제이와 폴의 우정어린 섹스씬, 담담해서 더 암담한 엔딩컷으로 충분히 만회가 되긴 했습니다.

분위기 끝내주게 잡은 영화라는데에 (적어도 이 영화를 재밌게 본 관객들이라면) 모두 동의할텐데, 특히 미군방송에서 주구장창 내보내던 7, 80년대 싸구려 공포영화 보면서 자란 사람이라면 더 친숙할 거 같아요. 저를 가장 겁나게 했던 공포효과가 바로 그 뭉개진 시간대였어요. 구식 티비나 조가비폰도 그렇지만, 현대와 교묘히 섞여있는 70년대식 옷과 머리스타일 보면서 계속 움찔하게 되더라구요. 특히 안경 쓴 야라가 제이 방에서 잘 준비하려고 비스듬하게 누워있는 모습이나, 부엌에서 등장한 세번째 그것, 입원실에서 졸고있는 제이 엄마와 동생의 모습, 그리고 제이네 가족사진 같은 건 완전 그 시절 영화 속 장면이 갑툭튀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얼마나 소름이 돋던지 말예요. 여기에 애들의 그 분위기요. 듀나님이 리뷰에 애들이 착하다고 쓰셨는데 저도 동의하긴 하지만서도, 거기에 플러스 알파로 뭔가 묘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저와 비슷한 인상을 받은 분들 있으신지요? 안정제 먹은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오락성 마약에 흐느적이 아니라 시간에 맞춰 약 잘 먹는 착한 애들? 아 역시 착한 걸로 귀결되네요. 딱 뭐라고 설명하기가 힘든데, 행잉록의 소풍에 나오는 애들 생각도 나구요. 기묘한 수동성이랄까요.

그리고 또 하나 영화의 분위기를 독보적으로 하는 데 알게모르게 기여한 것이 디트로이트를 중심으로 한 촬영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중에서도 버려져 폐허가 된 곳들. 페허탐험(urbex)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바로 알아보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어디서 봤더라 가물가물해서 찾아보니 맞더라구요. 제이와 휴의 섹스씬에서 배경으로 서 있는 스산한 건물은 2003년 문을 닫은 노스빌 정신병원 (Northville Psychiatric Hospital). 52년 개원해서 한때는 약물에만 의존하지 않는 놀이미술음악 등의 치료요법으로 선구적인 곳이었지만, 80년대부터 본격화된 예산삭감으로 2배가 넘는 수용인원 초과와 환자방치, 학대로 뉴스에 오르내렸다고 해요. 병원 말년엔 인근 주민들이 마을 여기저기서 배회하는 탈출한 환자들을 목격하는 게 익숙한 일이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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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제이를 기절시켜 데리고 들어간 곳은 패카드 자동차 공장 (Packard Plant). 버려진 지 오래되었고 워낙 유명한 곳이라 유튜브에 관련 동영상도 많네요. 감독의 전작인 The Myth of the American Sleepover의 예고편을 보니까 그 영화에서도 여기 내부가 나와요. 이 지역 부근에 사는 십대들이 한 번 쯤은 놀러가는 곳이 아닐까 추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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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와 친구들이 휴를 찾으러 간 곳이나, 나중에 차를 타고 이동할 때 창 밖으로 버려진 교외 동네들이 나옵니다. 디트로이트와 그 주변에 그런 곳이 많겠죠. 주택가라 그런지 유난히 더 무력감이 강하게 느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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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회전과 배경에서 걸어들어오는 엑스트라와 홈웨어 패션이 이렇게 무서울 수 있다, 이런 교훈을 주는 영화지만 뭐니뭐니 해도 이 영화에서 음악을 빼놓을 수가 없을 거 같아요. <할로윈>의 영향이 가장 많이 언급되던데 저는 정확하게 기억이 안나서 비교를 못하겠네요. 이런 류의 음악을 칩튠음악이라고 하나봐요. 전 그저 신디사이저 음악, 전자음악으로 퉁쳐서만 부르고 있었음. 작곡자는 FEZ라는 인디게임 음악으로 유명한데 감독이 게임의 팬이기도 하고해서 이래저래 부탁했다고. 이 링크에서 전곡 들을 수 있고 구매도 가능합니다. 

http://music.disasterpeace.com/album/it-follows


PS. 이 감독이 왠지 브래드 앤더슨을 떠오르게 하는데요. 유명해진 작품은 공포영화이고 그 전작은 드라마/코메디물이라는 점, 인물들이 현실적이고 착하다는 점, 둘 다 자기만의 분위기가 확고하다는 점 등 때문에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아니면 그냥 제가 좋아하는 류라서 뭉뚱그리는 거 같기도 합니다. 암튼 둘 다 생판 모르는 남인데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공통점이네요. 그나저나 앤더슨의 스톤허스트 요양원을 봐야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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