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어렸을 땐 제 이름이 너무 흔해서 별로 안 좋아했어요.

아니, 10살 무렵 이름 바꿔달라고 했던 기억까지 있는 주제에 안 좋아했다는 너무 완곡한 표현이고 아주 싫어했습니다.

심심하면 한반에 같은 이름을 가진 애가 있고, 심지어 담임 교사랑 이름이 같던 적도 있고 이런 게 너무 짜증났어요.

그런데 제 이름이 명이 짧은 이름인지 나이가 들수록 주변에 이 이름을 가진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겁니다.


이유가 뭐가 됐든 주변의 다른 @@들이 사라지면서 제 이름에 대한 불만도 땡볕에 빨래 마르는 속도로 줄어들었습니다.

게다가 이름이 문자로 썼을 때 못생긴 것도 아니고, 불렀을 때 웃기지도 않고, 심지어 발음이 쉬워서 외국에서 쓰기도 좋을 것 같고(그럴 일이 없어서 유감이지만요)

이래저래 몇년 전부터는 제 이름에 상당한 애착이 생긴 편이에요.

전화영어하면서 영어이름 따로 만들겠냐는 선생님한테도 전 제 이름 좋아하고, 발음도 쉬우니까 그냥 이 이름 그대로 불러주세요! 라고 할 정도.


이런 관계로 이름 불리는 걸 상당히 좋아해요. 연애하던 시절에도 이름 불리는 게 참 좋았어요. 

늘 팔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어서 상대가 @@야, 라고 불러 준 건 진짜 손에 꼽을 정도지만요.

제가 서점에서 엉뚱한 코너에서 하루키의 에세이집을 찾고 있을 때나 영화관 매표소에서 호빗 예고편에 정신이 팔려 혼자 티비 앞에 가 있을 때 

뭐 이런 경우가 아니고서야 이름을 불릴 일이 없었지만 여튼 @@야, 라고 불리는 걸 꽤 즐겼어요. 으컁컁 이름 불러준다! 뭐 이런 기분이랄까요.


이런 성향 탓에 혹시나 만약에, 꿈에서도 만약에 결혼을 하게 되더라도 전 서로 이름을 부르겠다고 벼르고(?) 있는데

저번 주에 갔던 결혼식에선 주례가 결혼을 하면 호칭부터 똑바로 써야 된다면서 오빠/이름은 지양해야 한다더군요.

게다가 애가 생기면 누구아빠 누구엄마를 추천하는데 개인적으로 정체성이 말살되는 것 같아서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호칭이어서

괜히 혼자 막 빈정 상해서 흥 난 이름 부를테다 이러고 꽁해서 앉아있다 왔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름을 부르는 문화였으면 좋겠어요.

부르지도 않을 거면 이름은 도대체 왜 만든답니까. 공들여서 지어놨으면 많이 써줘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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