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의 이야기...

2016.03.04 22:48

여은성 조회 수:908


 1.어제 외진 곳에 갔다가 거기 눌러앉아버려서 늦게 돌아왔어요. 잠들면서 골스 경기...정확히는 커리 경기 시간에 맞춰 일어날 수 있겠지 했는데 유감스럽게도 다 끝나 있었어요.


 사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날 방법이란 게 없어요. 자명종 시계도 없고 휴대폰의 알람 기능은 쓸줄 모르거든요. '그 시간엔 꼭 일어나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자면 이상하게 그 시간쯤 되었을 때 눈이 떠지곤 해요. 물론 상당히 긴장해 있고 꼭 일어나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 때만 그렇게 되지만요.


 오늘 이런 일을 겪고 나니 문득 예전의 '기상'에 관한 일화를 써볼까 하고 한번 써봐요.


 

 2.한때 잠깐 혼자 살아야 했던 때가 있었어요. 이 건물의 한 층 전체에 저 하나밖에 없던 상황이었죠. 그런데 그 상황이 되니 이상하게 밤마다 쿵 쿵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한밤중에 누군가가 계단을 다다다 올라가는 소리(옥상으로)같은 게 매일 들리는 거예요. 무서웠죠.


 사실 그런 소리들은 종종 들리곤 하는 소리예요. 다른 곳에서 산란된 소리거나 아무 의미 없이 울리곤 하는 그런 소리죠. 한데 그걸 알아도 무섭기는 여전한 거라 결국 혼자 사는 한두달 되는 기간동안 그냥 일찍 자기로 했어요. 괜히 어두운 밤에 깨있다가 흠칫흠칫 놀라는 것보단 나은 거 같아서요. 


 사실 도둑이 드는 것도 걱정되긴 했지만...그래도 현관문이 있고 또 안쪽의 철문은 자물쇠가 이중으로 되어있는데다 맨 윗층이고 지금까지 한번도 도둑이 든 적 없었으니 설마 여기까지 올라오진 않겠지 하는 마음으로 문단속만 잘 해두고 자고 그랬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근처의 보쌈집에 가서 런치정식을 먹거나 순두부집에 가서 비빔밥을 먹고요.


 이쯤에서 '그러던 어느날'이란 글귀가 나와야겠죠.


 그러던 어느날, 자다가 뭔가 이상한 소리를 들었어요.



 3.사실 그 소리는 잠자는 사람을 깨울 만큼의 큰 소리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일어나긴 했는데 정확히 뭔 소리 때문에 일어난 건지 알 수가 없을 정도의 소리였으니까요. 


 어쨌든 일어났고, 더이상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긴 했는데...이상하게 다시 잠드는 건 위험한 것 같은 기분이 스멀스멀 들었어요. 그렇게 몇 분 정도 가만히 있는데 느닷없이 울리는 '철컥'하는 소리에 온몸의 털이 쫙 곤두서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 '철컥'은 아마도 복도에 있는 누군가가 우리 집 현관을 열려고 시도하는 소리라고밖에는 생각되지 않는 소리였거든요. 물론 그 '철컥'이 그냥 바람이거나, 윤활유를 좀 달라고 문고리가 시위하는 소리일 수도 있겠죠. 보통이라면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가겠지만 지금 이 건물의 이 층에는 나 혼자밖에 없잖아요.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저 밖에 누군가가 있고, 그 누군가가 지금 이 집은 물론이고 이 층 전체에 나 혼자만 있다는 사실을 알고있는 중이라면? 만약 그런 거라면 분명 나를 무력화시킬 도구와 의지 또한 같이 가져왔겠구나 하는 상상이 들었어요. 상상의 나래가 이 정도쯤 펼쳐지자 잠이 완전히 안 깰 수가 없더군요.



 4.흠.



 5.일단 방을 나가 조용조용 마루를 걸어서 철문 앞까지 갔어요. 소리내지 않고 가느라 꽤 오랜 시간을 들여 살금살금 걸어갔는데 그 동안엔 아까 들은 '철컥'소리나 뭐 그런 게 안들렸어요. 그래서 이때쯤엔 별 것 아닌 거 가지고 이러는 중인 거라고 여겼어요. 그리고 철문을 열었어요. 


 철문 밖엔 복도가 있고 복도 쪽에 현관문이 있었죠. 현관문은 유리로 된 부분이 많았고요. 그런데 복도에 나서자 동작 감지기 센서 때문에 전등이 켜졌어요. 그러니 현관을 열어젖히지 않고선 현관 밖엔 뭐가 있는지 볼 수가 없는거예요. 이쪽은 밝고 저 너머는 어두우니까요. 그래서 그냥 현관 유리문 너머의 어둠을 멀뚱히 바라보면서 현관문을 한번 열어볼까 아니면 그냥 돌아갈까 하고 고민했어요.


 한데, 동작 감지기 센서는 현관문 너머의 복도에도 있거든요. 누군가 저곳에서 움찔거리고 있거나, 몇 초 전까지 움찔거리고 있었다면 반대쪽의 전등 또한 켜져 있어야 했어요. 지금 복도의 불이 안 켜져 있다는 건 아마 '철컥'소리는 누군가 문을 열려고 한 소리는 아니겠구나 싶어서 그냥 들어가려고 했어요.


 그때.


 현관문 유리 바로 앞에 사람 윤곽 같은 게 거의 분명히 보였어요. 



 6.그곳은 아주 어두웠지만 그래도 어쨌든 사람 윤곽 같은 게 보였어요. 옆모습도 아니고 앞모습이요. 이쯤에서 누군가 이럴 수도 있겠죠. 


 '윤곽일 뿐이라면서? 그럼 그게 앞모습이 아니라 뒷모습일 수도 있는 거잖아?' 라고요.


 ...하지만 말이죠, 현관문 앞에 누군가가 서 있다면? 놈이 현관문을 등지고 서 있는 중이라면 그건 싸이코예요. 적어도 현관문 앞에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 '비교적'안심이 되잖아요. 싸이코보다는 도둑이 나으니까요. 물론 둘 다 나쁜거지만 그래도 굳이 하나 꼽으라면요. 


 아주 잠깐 몸이 굳어버렸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봤어요. 지금 살짝 보인 윤곽이 어쩌면 이상하게 반사된 그림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요. 그래서 몸을 한번 살짝 틀어 봤어요.


 매우 유감스럽게도, 나는 움직였는데 그 그림자는 움직이지 않았어요.



 7.솔직이 한가지 사실이 좀 무서웠어요. 뭐가 무서웠냐면, 저 너머에 있는 것 같은 놈이 냉정하고 침착하다는 거요. 복도에 있는 동작 감지기는 어깨만 움찔해도 불이 들어오거든요. 그런데 이 상황에서 미동도 안하고 동작 감지기에 잡히지 않고 있다는 거요. 


 생각해 보세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도둑이라면? 도둑질하려고 현관문을 열어 보려고 하는데 누가 나온다 싶으면 앗싸리 등을 돌려서 빨리 계단을 뛰어내려가서 도망치지 않겠어요? 누가 나와서 현관까지 열어보기라도 하면 집주인과 마주쳐버리는 거잖아요. 설령 그렇게 도망쳐서 복도의 동작 감지기가 켜져서 '누가 있긴 있었구나'하고 단서를 남긴다고 해도 말이죠.


 그런데 이녀석은 도망치지도 않고, 그냥 미동도 안하고 복도에 서있는 거예요. 이 사실을 감안했을 때, 내 손으로 현관문을 열어버리는 건 꽤나 바보짓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8.자 이제 어떻게 할까? 하고 생각해 봤어요. 꽤나 길게 묘사하고 있지만 인간의 사고속도는 위기상황에선 빨라지니까요. 여기까지 긴 시간이 지나간 건 아니예요. 그냥 들어갈까...아니면 복도에 서있는 놈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호통을 칠까 고민해봤어요. 그런데 둘 다 좋은 선택 같진 않았어요. 그냥 들어가면 또다시 침입을 시도할 수도 있고, 그렇다고 복도에 누가 서 있다는 걸 알아냈다고 말해버리면 무슨 짓을 할 지 모르겠어서요. 그래서 이렇게 했어요.


 '아 씨발 형! 아무도 없잖아! 지가 귀찮다고 사람 오라가라 하고 지랄이야!'


 하고 소리쳤죠. 그런데 생각해 보니 방금 한 애드립에는 허점이 너무 많았어요. 이건 완전히 '지금 집에 나 말고도 건장한 형이 있어. 제발 좀 믿어줘'하고 구걸하는 듯한 대사잖아요. 그렇다고 이 상황에 '컷! NG!'라고 외칠 수도 없으니 '아오 씨발, 쒸발.'하고 씩씩거리는 척하며 철문을 닫았어요.


 흠.


 프로듀스 101이 시작하려고 하네요. 이 이후엔 별 일 없었어요. 그래도 이야기가 완전히 마무리되진 않았으니 어쨌든 후기 겸 해서 다음에 나홀로집에 시리즈를 또 올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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