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알고 있다

2016.05.29 23:31

Kaffesaurus 조회 수:2557

스웨덴에서 여름이란, 달이 될 수도 있지만 며칠이 될 수도 있다. 이번 주가 덥다고 해서 다음 주도 날씨가 좋다는 보장은 없다.  낮 온도가 24도 까지 올라가던 날, 우리는 저녁에 바베큐를 해먹기로 점심 시간에 결정했다. 따갑던 햇살이 조금 누그러지고, 선선한 저녁 바람과 벌써 9시나 넘어서까지 환한 그런 푸르른 세상 한 구석에서 바베큐를 했다. 음식이 익는 걸 보면 더 빨리 익을 마냥 둘이 석탄 불 위에서 익어가는 닭, 새우, 파프리카를 보고 있을 때, 그는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전화번호는 여기 회사 거에요, 그러니까 타이완에 가면 안쓸거에요라고 말했다. 뭐 그런 당연한 걸 말하나 하고 있는데, 다시, 그러니까 메일로 이야기 해요. 메일로 보내야 내가 답할 수 있어요, 라고 어찌보면 또 당연한 말을 했다. 그가 이렇게 당연한 말을 하는 건, 나를 바보 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그건 그가 세심하게 생각하고, 나처럼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매번 안녕히 라는 말 뒤에 메시지 보내요 라는 말로 서로 인사했는 데, 이제 메시지 보낼 수 없는 날들이 온다.  

그는 떠난다. 

지난 1월 타이완에 다녀와서 회사에서 계획을 바꾼 거 같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계속 아파트를 알아보고 남아 있을 계획을 짜던 그가 4월 출장을 다녀와서는 가야하는 걸로 정해졌다고 말했다. 그의 검은 셔츠를 온갖 색깔로 물들이면서 울었던 나. 내가 밥을 못먹던 날들을 지나 보내자 그 다음에는 날짜가 확정되자 그가 밥을 먹지 못하는 나날들이 지나갔다. 서로 아무 말없이 기대고 앉아 있으면서, 우리는 그렇게 기쁨의 순간들을 나누었듯이 슬픔의 시간도 함께 했다. 그때, 그 슬픔의 한 가운데 있을 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 느끼는 슬픔과 괴로움 보다 사랑과 기쁨이 더 크고 오래갈 것이라는 걸.  우리가 가장 약했던 순간, 헛말을 하지 않는 그는, 나 당신한테 돌아올까요? 라고 말했고, 그에게 조르지 않기로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나는, 응 나에게 돌아와요 라고 말도 해 봤다. 

최후통첩에 응하는 것이 사랑의 증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가 간다고 해서, 내가 여기 남아 있는 다고 해서, 우리 사이에 있었던 시간들이 가짜가 되는 건 아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내가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테니 나를 선택하라는 말을 하기에는 너무 어른이 되어 버렸다. 


완벽한 여름 날이다. 놀이터에서 그네타는 아이들 웃음 소리를 뒤로, 정원에서 밥을 먹다가, 나는 우리가 함께 있을 때 늘 편안했다고 말했다. 서로 우리가 함께 할때 얼마나 모든게 쉽게 느껴졌는지, 편안했는 지, 우리가 얼마나 행복했던가 이야기 하다가 내 눈에 눈물이 고이자 그가, 아 슬퍼 말아요, 우리 또 볼거에요 라고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네 그럴 거에요 라고 답했다. 잠시 있다 다시 말했다, 그렇지만 지금과는 다를 거에요. 그도 내 눈을 보고 잠시 있다, 네 그때는 다를거에요, 라고 답했다. 


나는 정말 너를 잃는 구나.  그의 눈을 보면서 생각한다. 어찌 생각하면 나는 누군가를 잃은 적은 없다, 잃어서 울어본 적은 없다.  전에 속은 게 억울해서, 힘들어서, 나의 젊은 날들이 아쉬워서 울었지, 소중한 것을 잃어서 울지는 않았었다. 끝까지 진실된 모습을 보여준 너를 잃는 구나. 나는 지금 지나간 날들과 같은 너와 함께 할 미래를 잃어버려서 우는 구나. 이건 위안이면서 동시에 그래서 더 아프다. 


오는 주, 한 가운데, 우리의 마지막 날, 나와 그는 함께 케익을 구울것이다. 내가 구운 케익 중 제일 좋아하는 케익, 너무나 간단한 것이라 가르쳐주겠다고 했던 것. 우리는 마지막 날 함께 굽자고 계획했다. 그날이 지나고 나서, 정말 메시지 보낼 수 없는 날들의 첫날을 어떤 기분으로 일어나게 될까? 나의 아름다운 주말, 평안한 평일 저녁이었던 사람아, 정말 가는 구나. 하고 싶은 말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했던 말의 변주곡일 뿐이다. 내가 이전에 한말을 더 명대사로 한다고 해서 그가 지금 모르고 있는 걸 깨닫게 되는 건 아니다. 그는 이미 다 알고 있고 다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반복해서 말한다. 사랑해,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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