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05 13:42
뭐 의도야 이해가 가요.
탈남성지배 탈조선하는 배 위에서
환희와 유희, 비웃음으로서의 섹스.
그래서 그 망할 쌍방울을 조롱하는 건
알겠는데, 전 그래서 핥다가 집어던질 줄 알았거든요
그걸 굳이 여성의 몸 안에 집어넣는건
조롱이나 극복으로는 영 안 느껴진단 말이죠.
영화 내내 ㅈㅈ라는 단어를 조롱하고,
남자들의 폭력적 성의 역사가 담긴 콜렉션들을
수장시키고 나서 물위에서 다시 야설식의 섹스를 한다..
심지어 뱀대가리를 절단내기까지 했는데요.
게다가 히데코는 거짓 이름인 타마코를 처음으로
숙희라고 부를 때, 서로의 거짓과 사랑과 같은 목적을
확인하고 제대로 둘만의 탈주를 결행하고요.
옥자, 타마코는 버려야만 할 이름이죠.
아시다시피 타마는 구슬입니다.
2016.06.05 14:08
2016.06.05 14:27
고통과 억압의 도구가 쾌락과 해방의 도구로 바뀐다는 결말은 논리적으로 충분히 납득이 가기도 한데 어찌 보면 반드시 필요한 결말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남성의 폭력적인 성적인 욕망에 고통 받았다고 해서 성적 욕망 자체를 회피하거나 거부하는 걸로 끝나면 안 되니까요.
그래서 페미니즘 소설에서도 그런 설정은 흔하게 나오잖아요. 남성의 이기심 혹은 폭력성으로 인해서 성적으로 고통을 받았던 여자주인공이 성적 욕망을 거부하고 없는 것처럼 행동하다가 결국에 가서는 자신의 욕망을 다시 인정하고 과거의 고통에서 자유로워진다는... 뭐 그런 거요.
아가씨의 경우엔 원작의 결말과 맞아떨어지기도 하죠. 맨날 음란소설만 쓰고 읽으면서 학대받았던 모드가 택한 직업은 음란소설 작가잖아요. googs님의 말처럼 구슬을 버려야한다는 논리라면 원작 소설은 절대 그렇게 끝나면 안 되는 거죠. 아가씨보다 더 황당한 결말인 셈입니다.
하지만 원작에서 모드가 말하는 것처럼, 그 남자는 이미 죽었고 그 죽은 사람에 얽매여서 자신을 지나치게 동정할 필요도, 과거를 억지로 부정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현재 자기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아가면 되는 거죠.
2016.06.05 22:23
결국 의도하는 바는 같지만 약간 설정상의 차이가 있긴 한것 같아요. 방울들마다. 똑같은 방울이 아니었는듯.
이런 인터뷰가 있네요. (뭐 큰 의미가 변하는건 아니지만)
'방울과 비슷한 형태의 도구들이 등장하는 건 물론 의도적인 것이다. 처음 등장하는 방울 모양의 도구는 문진이다. 구리로 된 구슬이다. 이건 히데코를 훈육하는 폭력의 도구였다. 뒤에 정사에 사용되는 도구는 은으로 된 방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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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그 구슬의 용도는 노리개이지만, 이모부에 의해 입을 봉하고, 후려치는 고문도구로 이용되었던거죠.
그게 결국 두 사람 사이의 사랑도구로 이용되는게 딱히 부적절한 결말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냥 버려 지는 것으로 극복을 표현하는것보다, 영화처럼 용도가 뒤바뀌는게 더 구슬의 속박에서 해방된 매력적인 설정 같은데...
애초 용도가 변한 그 구슬을 버리는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게 아니라 회피하는것처럼 느껴질수도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