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5.20 12:26
몇년 전 한창 취업전선에 뛰어들 때의 얘깁니다.
소위 열정테스트라는 미명하에 행해지는 압박면접들을 치루면서
종종, 자주, 너무도 노골적이고, 불쾌한 질문들을 맞이했지만
당시 구직자인 저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어쨌든 급선무는 취업이었으니까요.
사회가 어떻고, 이렇게 된 게 내책임이 아니라 누구탓이고 뭐, 어쨌건 간에 취업은 해야 했으니까요.
고등학생, 대학생 때 까지는 사회의 불합리함에 분노했다면 졸업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들면서는 사회의 불합리함에 길들여지게 됐달까요?
'아, 나는 세상을 바꾸기엔 너무나 나약하구나.' '투표로 정말 세상이 바뀌긴 하는건가?' 처럼
이 사회의 불합리함 보다는, 그 속에 속한 나 자신의 나약함이 더 먼저 눈에 들어오게 되더라구요.
근데 이걸 내가 당하고, 내가 참는건 그래도 괜찮은데, 다른 사람들, 특히 동생, 후배, 자식(자식은 아직 없지만)에게
선배로서 이런걸 팁이랍시고 알려줘야 할때는 정말 그 기분이 괴롭습니다.
"형 회사 면접에서 노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본다는데 뭐라고 해야돼?" 라는 동생의 질문에,
"뭐? 그런걸 요즘도 묻는단 말이야? 무슨 미리 반동분자 걸러내자는 것도 아니고. 그런 회사 가지마!!!" 라고 할 순 없었어요.
생산직에 일도 힘들고 위험하지만, 그래도 대기업이고, 돈도 많이주고... 아무튼 동생한텐 좋은 기회였으니까요.
결국 제가 준 팁은 (기업 입장에서) 가장 중도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 대답이었습니다.
다음 날 걸려온 전화는 진짜 그 질문이 나왔으며,(-_-) 면접엔 붙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물론, 제 팁 때문에 붙은건 아니었겠죠. 그래서 고맙다고 하길래, 그거는 정말 별거아니다.
너가 준비를 잘해서 붙은거다 라고 축하해주는데도 왠지 그 기분이 썩 좋지는 않더군요.
한 켠에는 '혹시 그 질문에 다른 대답을 했어도 붙었을까?' 하는 찜찜함이 분명 있었기도 하고요.
내가 불합리함을 순응하는 것 까진 괜찮았는데,
남들에게 순응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해야하는건 쫌 괴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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