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담...(허상)

2015.11.18 14:45

여은성 조회 수:674


  1.휴...덥네요. 10월에는 선풍기를 안틀었던거 같은데 11월이 되니 밤마다 선풍기를 거의 매일 틀고 있어요. 


 

 2.어제는 특히 그랬어요. 빌어먹을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 이런저런 잡담을 쓰려다가 자전거를 타고 왔거든요. 40도 술을 먹거나 자전거를 타고 오거나 둘 중 하나만 해도 몸에서 열이 나는데, 두가지를 동시에 하니 당장 남극에 가도 2시간쯤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죠. 그리고 들어와서 이런저런 잡담을 쓰려다...자버렸어요.



 3.겨울날 평일 한밤, 한강 자전거도로에 자전거를 타고 가면 갑자기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와 현실의 중간 지점 정도 되는 판타지 세계 말이죠. 


 여름 밤에는 그래도 걷는 사람도 있고 여러 대의 자전거들이 스크럼을 짜고 도로를 점거하며 달리기도 하는데 새벽 3시가 넘어서 가보면 완전히 혼자가 될 수 있고, 그러면 거긴 원초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것들로 가득해요.


 사람은 아예 없고 먼 도로에서 자동차들이 내달리는 소리만이 메아리처럼 울려와요. 일상에서는 절대로 느낄 일 없는 고독감이 느껴지죠. 갈대 하나하나가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흠칫 놀라게 되고 혼자서 밤의 오솔길을 걸어갈 때처럼 뒤에서 뭔가가 따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돼요. 


 휴.


 그렇게 한밤중의 자전거도로를 달리고 있으면...나의 일상은 현실에 덧씌워진 허상이 아닐까 싶어요. 진짜 위험이 없는 곳이요.


 자전거도로에는 아무도 없기 때문에 웃는 표정을 짓거나 슬픈 표정을 짓거나 할 필요도 없거든요. 허상의 일상에서는 사실 진짜로 기쁜 일도 진짜로 슬플 일도 없으니까요. 모든 말과 행동은 긴장감에 관한거예요. 사람들이 너무 긴장하지 않고 있는 것 같으면 그들을 긴장시키는 언행을 하고 사람들이 너무 긴장하고 있는 것 같으면 그들을 이완시키는 언행을 할 뿐이죠. 그 과정에서 진짜로 신나지 않아도 신난 척하고 진짜로 우울하지 않아도 우울한 척 하는거죠. 



 4.휴.



 5.저 갈대밭 안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오지 않을까? 뒤에서 누가 따라오는 것 같은데 페달을 더 빨리 밟아야 하나? 여기까지 왔는데 자전거가 고장나면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까? 하며 한참 달리다 보면 문득 깨닫게 돼요. 지난1시간동안만큼은 밖에서 하는 걱정...허상들을 걱정하는 건 하지 않았다는 거죠. 솔직이 이 세상에선 걱정거리라고 할 만한 게 없어요. 지나친 안온함이 인내의 역치를 낮아지게 만들고 신경질적인 면을 극도로 증폭시켜서 걱정을 위한 걱정거리를 미친듯이 만들어내는 거죠. 그것이 20년동안 진행되면 정말 쓸데없는 걱정거리까지도 스스로 만들어내게 돼요. 운동 갈 때 회전문 안에 반드시 혼자 들어가기, 엘리베이터 버튼에 지문을 남기지 않기, 다른 사람의 체온이 남은 의자에는 앉지 않기 같은 규칙들을 만들어내고 그러는거죠. 


 가능한 빠른 것, 가능한 깨끗한 것, 가능한 편리한 것 다 좋지만 기준을 점점 올리다가 일정 선을 넘어서부터는 그것은 편리함이란 족쇄가 되어버리는 것 같아요. 우리가 누구인지 상기시키는 건 위험이라고 여기거든요. 위험의 부재는 우리가 누구인지 잊어버리게 하고 그만 모든걸 통제할 수 있다는 망상이 들도록 만들죠.



6.이전에 말했던 것 같은데, 위의 느낌을 느껴보고 싶어서 오히려 추운 겨울 평일 새벽을 좋아해요. 특히 칼바람이 부는 날이요. 그런 날은 진짜 자전거도로를 달리면서 사람 한번 구경하기 힘들거든요. 특히 한강을 낀 도로 옆을 달리면 칼바람이 훨씬 심해지는데 그게 너무 좋아요. 아무도 도와주러 오지 않는 추운 사막을 지나가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말하자면...한밤중에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자전거도로를 달리는 게 그나마 가장 위험을 느낄 수 있는 일이예요. 그 느낌을 증폭시키기 위해 자전거를 타러 갈 때는 카드도 전화기도 안 가지고 가요. 


 이 곳에서 어떤 나쁜 일이 일어나더라도 아무도...그 누구도 나를 도울 수 없도록요. 카드도 전화기도 아무것도 없이 맨몸으로 나가면 불안함을 느낄 수 있고, 그 진짜 불안함은 허상의 불안함을 사라지게 해 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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