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간단하게 -

 

 

저희 어머니 아버지가 보시고 오셔서는 너무 재미없다고, 봉준호 감독이 너무 무리한 걸 만들었다고, 천만은 무슨 놈의 천만 들겠냐고 할 때 기대를 좀 접었습니다만. 기대치를 낮추고 가서인지는 몰랐어도 막상 직접 보니 너무나도 재미있어서 깜짝 놀라는 정도였습니다. 햇볕이 강한 오늘 선글라스를 끼고 도도하게 영화관에 들어가 조금은 냉소적으로, 동시에 호의적으로 봉준호 감독이라면 한 번 정도는 망작 정도 만들 때가 되었지라 생각했는데 저한테는 재미있더군요. 보통 평범한 잘 만든 영화보다는 조금 더 잘 만든, 뭐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봉준호 감독의 색깔이 없었다면 없었달까나 정도였습니다.

 

 

 

1. 우화 - 파수꾼과 촌장 그리고 산딸기

 

 

제가 어쩌다 보니 대한민국 소설이나 희곡을 잘 안 읽어도 애들 가르쳐준답시고 끄적끄적 가끔 한국 소설이나 희곡을 읽게 되는데, 이강백의 [파수꾼]이 봉준호의 설국열차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실 멸망한 인간 문명, 희망 없는 디스토피아에서 앞으로만 달려대는 기차라는 설정은 재미있게도 제가 일전에 한 번 게시판에 올렸었던 애니메이션 [다크 인사이드]와 흡사합니다. 물론 [다크 인사이드]쪽이 훨씬 암울하고 끔찍합니다만. 혹시 애니메이션 보시고 싶으시다면 여기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AEx4D26XqR0 개인적으로 저도 듀나님 리뷰 본 다음부터 너무 보고 싶어해서 찾았었는데 못 찾았었습니다만 ... 시간이 좀 지나니 유튜브에 전체 영상이 올라와져 있더군요. 어쨌거나, 무조건 달리는 열차, 앞칸에 존재하여 괴물 같은 열차의 동력을 생산하는 악마적인 엔진 운전자, 무기력한 승객이라는 그 설정이 아마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나 봅니다. 그러나 설정이 단지 [다크 인사이드]와 비슷하다면, 전체적인 핵심 내용, 무엇을 더 이야기하고 싶었는지에 관한 초점이 개인적인 감상으로서 가장 비슷했던 작품은 이강백의 [파수꾼]입니다.

 

뭐 대충 이강백의 [파수꾼]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희곡인데요, 보통 우의적 기법이 쓰인 희곡이라고 하죠. 희곡 자체는 70년대의 독재 상황과 무기력한 지식인을 돌려 까는 내용입니다.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해드리자면 이 희곡의 배경은 황야입니다. 망루가 있지요. 망루를 지키는, 망루에서 감시 임무를 수행하는 파수꾼들도 있습니다. 이들의 임무는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는 이리 떼를 감시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종종 이리떼가 올 때마다 양철북을 두드려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죠.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이 과정에서 다치기도 하고 심지어 죽기도 합니다. 파수꾼 '다'가 중심인물이라고 볼 수 있는데, 막 파수꾼 역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이 파수꾼 '다'는 알고 봤더니 이리의 진짜 정체는 단지 흰 구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파수꾼 '다'는 촌장에게 이를 알리기 위해 편지를 썼는데 이걸 본 우편배달부에 의해 마을 사람들도 상황을 알게 되지요. 촌장은 파수꾼 '다'를 찾아와 이리 떼에 대한 두려움이 이 마을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리 떼가 무섭기 때문에 사람들이 가지 못한 곳에는 먹음직스러운 산딸기 역시 가득하다고 말합니다. 은연 중에 산딸기 같은 특권을 파수꾼 '다'에게 제공할 것임을 암시하지요. 파수꾼 '다'에게 촌장은 갖은 설득과 회유를 다하고, 결국 파수꾼 '다'는 그의 말에 넘어가게 됩니다.

 

어때요, 상당히 비슷하지 않습니까? 가장 비슷하게 겹치는 부분은 촌장과 파수꾼 '다'의 대화입니다. 물론 그 결론은 영화를 보신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우리의 잘 생긴 캡틴 아메리카는 회유에 넘어갈 뻔 하다가 결국 정신을  차리지요. 지금은 조금 한 결 피상적인 부분에서 이야기를 하는 감이 있으니, 본론으로 더 들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2. 필연적 불만의 첫 번째  - 설국열차는 SF 영화가 아니다

 

제가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본 다음 가장 궁금했던 건 이거였습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설국열차에 실망을 한 것인가? 여러 가지로 요인을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몇몇 분들의 글을 읽고서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이지요. 우선 많은 분들이 지나치게 기대를 많이 하셨습니다. 가장 큰 이유이지요.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영화감독 봉준호, 우수한 그것도 매우 우수한 서양의 쟁쟁한 배우들이 대한민국 최고의 연기파 배우 송강호와 함께 스크린에서 400억짜리로 현현된다고? 맙소사 그건 대체 뭘까? 게다가 멸망한 세계 위의 달리는 열차라고? 이건 그냥 우리의 모든 기대를 충족시켜주고도 남을 작품이겠군?

 

글쎄요, 그렇진 않았죠. 저도 매우 재미있게 보았다고 이야기드립니다만 분명 그건 아니었습니다. 이 영화는 사실 뭐랄까요 네 그냥 우화에요.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소위 사회의 기능적 역할들 뭐 제가 사회학과를 전공한 사람은 아닙니다만,  뒤르껨의 기능론이라고 거 있잖아요. 기능론 보면 인간들은 각자의 타고난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는 말이 요지 아닙니까. 그 기능론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인간의 더러운 탐욕? 독재적 야망? 본성?에 대해 '대한민국 학교 다 ~까라 그래'같이 부정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걸 부드럽게 아름답게 재미있게 표현한 영화에 불과할 뿐입니다. 물론 우리는 근데 왜 설국열차로 그걸 이야기한 거냐? 라고 봉준호 감독에게 항의 메일을 보낼 수 있을 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건 사실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저희의 역할은 아니고 400억을 투자해준 투자자들, CJ 담당자 직원들이 할 이야기라고 봅니다. 감독님 왜 돈을 많이 쓰셨습니까? 400억이나 쓰실 필요가 있었습니까?

 

네, 설국열차는 SF 영화가 아니에요. 그냥 설국의 열차가 필요했던 풍자적 우화이죠. 에드 해리스가 나와서 이강백의 [파수꾼]에 나오는 촌장 역할을 제대로 한 번 해주신 것입니다. 게다가 제가 보기에는 에드 해리스가 연기한 촌장은 정말 간악한 혓바닥이나 마찬가지에요. 설국열차라는 이 교화적인 우화에서 나오는 윌포드는 아주 전형적인 독재자, 혹은 프로그램 제작자입니다. 그는 정당화와 합리화의 달인이지요. 자신은 우연히 생성된 상황 위에서 유리한 자리에 배치된 기능공이라는 주장은 맨 앞칸을 스테이크 냄새로 짓이기면서 한때 살육자였던 회개한 꼬리칸의 선두자를 매혹시킵니다. 아주 그의 마음을 부드러운 혀로 달금질하며 자위할 시간과 여자와 섹스할 기회와 위대한 지배자가 될 기회를 주는 윌포드 앞에 크리스 에반스가 폭풍 울면서 무릎을 꿇을 만하지 않겠어요? 오죽하면 길리엄이 분명히 말하지 않았겠습니까.  "그의 말을 듣지 말라. 혀를 자르는 한이 있더라도." : 사실 뭐, 캡틴 아메리카 (아 모르시는 분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크리스 에반스가 전에 어밴저스에서 맡았던 역할입니다)가 팔을 희생하지 못했던 심약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자신의 귀를 자르는 게 더 현명했을 것 같네요. 네 뭐 이죽거리는 말입니다. 결국 팔 하나 바치는 걸 보면 정신 차렸다고 볼 수 있겠지만 말이에요.

 

제가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설국열차는 SF 영화가 아니에요. SF 팬들은 모두 분노할 지어다!!! 감히 설정도 제대로 안 챙기고 그냥 이야기를 늘어놓다니!!! 봉준호 네가 무슨 여우골에서 이야기보따리 들고 나타난 할망구더냐!!! 그래 오냐 사백억짜리 이야기 한 번 잘 듣고 가겠다!! 이런 마음으로 그냥 봐주시면 좋을 영화인 듯 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보고 봤더니, 그냥 설정따위 그랬구나~그랬구나~ 정신으로 넘기면서 보면 딱 우화라서 어느 순간부터는 신경도 안 쓰여요. 애초에 그런 식으로 따지면 말도 안 되는 게 뭐 한 두 가지가 아닌 영화입니다. 디워도 봐줬는데 이 정도야 뭐 애교죠. 그래도 말 안 되는 게 할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보다는 낫더라고요. 너무 관대했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사실 제가 준호 봉 아저씨한테 관대합니다. 변태라서 좋아해요. 저번에 무슨 인터뷰 보니까 프로이트의 화신 같던데.

 

 

 

3. 필연적 불만의 두 번째 - 순진한 소리 하지 마 유치하니까

 

 

저희 집 부모님이 이거 보고 싫어하신 이유가 이거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뭐 기능론에 동조하는 사회의 인간들로서 이러한 영화를 보면 도저히 유치해서 못 봐주는 거죠. 기능론적 사회에 대해 네가 뭘 얼마나 아는데 이러한 영웅 괴담 같은 소리를 지껄이냐 라는 심리 아닐까요? 뭐 조금 더 섬세하고 친절하고 예의를 갖춰서 대변해보자면, "기능론적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이에 대해 하는 이야기가 기존의 순진한 대학생들이나 할 법한 이야기 같다."라고 할 수 있을가요? 전혀 더 섬세하고 친절하지 않은 느낌이 들지만 한 번 넘어가보도록 합시다. 그런데 뭐 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지만 저는 아니였어요.

 

학문적으로 다루어지는 기능론이 우선 그 과정에서 당연히 인간을 부속품화하고 착취화하는 것을 당연시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학문적 이야기는 집어치우고 실제적으로 작품 안에서 어떤 일이 이루어졌느냐 보면, 에드 해리스라는 인간은 자기가 마치 어쩔 수 없이 이러한 일들을 해야 하는 위치에 선 사람처럼 구는데 잘 들어보면 그것은 개 같은 거짓말이죠. 개 같은 이라는 말을 싫어하실지 모르겠지만 비속어로 쓴 것이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강아지 멍멍이 아니면 고양이 같다고 해볼까요? 고양이 같은 거짓말입니다. 천 명을 몰아넣고 학살이 자행된 것에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죠. 하- 뭐 더 길게 쓰려고 했습니다만 영화 보신 분들 모두 아실 겁니다. 그 인간은 그냥 거짓말쟁이라는 거.

 

그리고 작품 안에서 은근슬쩍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지만 길리엄에 대해서도 거짓말을 치더군요. 길리엄 할아방탱이가 물론 타협적이고, 온건주의라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과연, 정말 과연 윌포드의 친구였을지는 의문이 듭니다. 친구였고, 이 모든 게 같은 작전이었다면 과연 길리엄이 "그의 말을 듣지 말라"라는 말을 했을까요? 그리고 예카테리나 다리 위로 더 올라가는 것을 막지 않은 것, 메이슨을 붙여준 것 등의 문맥을 보면 길리엄은 물론 피해를 보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싹이 보이는 자의 반란을 막으려고 할 정도로 윌포드와 친한 인간은 아닙니다. 저는 뭐 인터넷 용어로서 적절한 표현이 있긴 합니다만, 입이 아닌 손으로 쓰는 것이 저어되어 조금 순화시켜서 표현해보자면, 죽은 자를 자기 이익을 얻기 위해 거짓말로 사람을 농락하는 그 모습이 완전 비호감이었달까요?

 

뭐 하긴 그러한 비호감 인물들, 그리고 데려온 애기들을 어떻게 멋대로 착취시켜버리는지에 관한 설명따윈 일언반구도 없는 그러한 인간들의 존재를 긍정하면서 사회의 단물을 향해 쪽쪽 빨아먹어나가는 우리네 인간의 비극적인 습성과 역사를 보았을 때 이러한 것들을 마치 팬케이크 뒤집듯 결국 뒤집어내며, 정의감에 불타 결국 정신을 차린다는 결말이 유치할 수도 있긴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유치하고 중2병 같고 비현실적이다, 라는 말들 역시 어떤 관점으로 보았을 때는 그저 "타협적"인 시선으로 해석될 수 있겠죠. 그러나 순진한 우화, 유치한 이야기라는 이야기는 결국 봉 감독이 감당해 내야할 몫입니다. 그가 하고자 했던 말은 언제나 그러한 말을 듣게 되는 것이 운명이니까요.

 

 

 

4. 재미있게 본 나의 불만 두 가지 - 대체 슬로우 모션은 왜 넣는 건데? 송강호는 왜 나온 건데?

 

하, 그런데 재미있게 보긴 했지만 슬로우 모션을 대체 왜 액션에 넣은 건지 그건 좀 이해가 안 되네요. 쳐져요. 봉준호 감독이 액션 찍는 건 그렇게 잘 하시지 않나? 박찬욱의 올드보이 유명한 복도씬만큼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할 만한 걸 기대하진 못했지만. 액션씬에 대해서 조금 제가 뭐 불만을 제기하거나 그러는 것이 부당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냥 저는 마음에 안 들더라고요. 별로였고 구렸어요. 뭐 다른 표현을 붙일 수도 없을 것 같군요. 저는 액션이 축축 반감기처럼 쳐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요. 게다가 요즘 날씨도 너무 더워서 더 별로였어요. 게다가 그레이인가 그 사람의 그 동양무술은 대체 어디서 온 거야? 좀 생뚱 맞다는 느낌 있긴 했습니다.

 

그리고 송강호는 대체 왜 나온 건가요? 아마 CJ에서 대한민국 배우 넣어서 끼워 팔아먹으려고 했던 것 같네요. 바퀴벌레 양갱이랑 비슷한 프로모션의 일환? 차라리 영어 되는 한국 배우 써서 통역기를 없애버렸으면 훨씬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뭔가 정서가 약간 부딪친다는 느낌 있었어요. 그게 신선한 느낌, 거창하게 오바해서 말해보자면 세계화의 느낌도 주긴 했습니다만 이질감, 그 이질감은 어떻게 사라지진 않더군요. 그런데 그냥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이질감은 전 신선함으로 받아들일 순 있었는데 영어 못하는 강호 아저씨가 굳이 나오셔서 굳이 또 그렇게 막 하실 필요가 있긴 했나 싶었습니다.

 

 

 

 

5. 틸다 스윈튼 언니 - 그대는 나의 사랑, 빛, 소금, 윌포드 인더스트리입니다

 

 

연기 너무 잘 해요. 다른 배우들도 충실히 아주 "기능"적으로 잘 움직여주었습니다. 그런데 틸다 언니가 가장 잘 한 듯 합니다. 언니의 틀니도 난 될 수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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