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없어

2015.08.29 03:53

Vulpes 조회 수:943


 한때 세상은 두 부류로 나뉘어졌다. 입 속의 검은 잎, 을 아는 사람들과 그 외의 사람들. 그의 항렬은 내 아버지보다 높았지만 둘은 동창이었다. 한국을 떠나기 전 내 일상은 전자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갑자기 아무도 그를 모르는 세계로 나는 비행기를 타고 가서 일을 했고 생활을 했고 연애를 했다. 늑대는 캐나다 사람이고 하루키가 누구인지 모르고 해리 포터 이외에는 좋아해본 문학 작품이 없다고 한다. 늑대의 세상에서 러비쉬는 론만 쓰는 단어이다. 한때 나는 철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과는 대화하기 힘들어했었다.

 

 늑대는 미소 뒤로 도피하는 타입이다. 그 특징적인 미소는 어떤 타인의 호감이라도 살 수 있다. 늑대는 미소와 모험 뒤로 도망친다. 나는 간혹 홀로 남겨진다. 눈을 뜨면 늑대가 있다. Good morning baby. 네 미소와 키스가 아무 일도 없었듯 새로운 아침을 연다. 어쩌면 다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은 상황에 따라 변하니까. 나빠질 수가 있다면 좋아질 수도 있는 거고. 불안 때문에 주저앉기엔 내가 연애를 너무 많이 했다.

 

 현아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나는 진지하게 말하며 늑대를 끌어다 현아가 나오는 영상들을 연달아 튼다. 너무 예쁘지. 내일은 없어, 이 노래는 그해 나온 모든 한국 아이돌 곡 중 제일 좋았던 것 같아. 가사도 뮤직비디오도 마음에 들어. 하이네켄이랑 버드와이저가 너무 많이 나오고 좀 스킨스 같긴 하지만. 응 나 스킨스 좋아했지. 매사에 lovely 라고 대답하는 애.


 어제 늑대는 캘거리로부터 오퍼를 받았다. 우리는 당장 일요일 밤부터 얼마간 지내게 될 집을 찾아 인터넷을 뒤졌다. 이렇게 라스트 미닛에 구해보는 건 처음인 것 같아요, 이렇게 많이 옮겨다니는 것도. 베이비도 그렇죠? 6개월을 미니멈으로 원하는 곳이 대부분인데 우리는 월 단위로 혹은 길어야 3개월만 지내려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그래도 당장 일할 데가 생겨서 마음이 많이 놓인다고 그동안 생각이 많았다고 늑대는 혼자서 말한다. 그냥 여길 떠나게 되어서 행복하다고, 지금 있는 병원에서도 더 있어 달라고 했는데 거절했다고. 언제부턴가 한국어로 말해도 아기 같지가 않다.

 

 유약하고 충동적인 너를 알게 되고 미워하게 되다가도 네 얼굴과 몸의 움직임은, 공기에 내는 고집스럽고 날카로운 균열은 바라보면 매사 사랑스럽다. 나를 정면으로 향하며 가까워지는 네 눈빛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서 덜 예쁜 곳으로 숨으려 애쓴다. 발터 벤야민이 아샤 라치스에게 쓴 편지처럼. 사랑이 나를 움직이도록 내버려 둔다, 내일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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